K-미식을 즐기는 '전통주' 관광 투어
선유화 기자
cnc02@hnf.or.kr | 2026-07-31 15:01:01
지역 농산물, 향토음식 등을 연결해 농촌 활성화
K-미식여정 2탄, 권역별 대표「찾아가는 양조장」지도
사진 = 농림축산식품부[Cook&Chef = 선유화 기자] 정부가 ‘K-미식 여정’의 두 번째 정책을 공개했다. 첫 번째가 닭고기 소비와 생산지를 연결한 ‘K-치킨벨트’였다면, 이번의 중심은 전통주 양조장이다.
이는 단순 주류 홍보 정책을 넘어선다. 정부는 전통주를 지역 농업과 문화, 관광을 잇는 핵심 콘텐츠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설정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29일 공개한 ‘찾아가는 양조장’ 중심의 권역별 미식관광 투어코스는 이 전략의 구체적인 청사진이다.
전국의 우수 양조장을 거점으로 삼아 지역 농산물, 향토음식, 역사, 문화를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통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시도는 변화하는 주류 소비 패러다임과 정확히 맞물린다.
과거 ‘취하기 위해’ 마시던 소비 행태는 축소되고 있다. 특히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술에 담긴 이야기, 생산지의 철학, 그리고 맛보는 ‘경험’ 자체를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 중이다. 전통주가 재조명받는 배경이다. 이번 정책은 이러한 시장 변화를 포착하고, 전통주를 매개로 농촌 관광을 활성화하여 지역 경제에 새로운 동력을 공급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분석된다.
지도가 아닌 ‘경험의 길잡이’이번에 공개된 투어코스의 핵심은 ‘연결’이다. 농식품부는 전국 69개 ‘찾아가는 양조장’ 중 권역별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는 40개소를 엄선했다. 경기권 6곳, 강원권 5곳, 충청권 11곳, 전라권 5곳, 경상권 11곳, 제주권 2곳이 대상이다.
유재형 농식품부 식품외식산업과장은 “이번 코스는 양조장 위치를 소개하는 관광지 목록이 아니다”라며 “양조장을 거점으로 지역 농산물과 향토음식, 역사와 문화를 함께 체험하는 여행 콘텐츠”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이는 양조장 위치 나열이 아닌, 소비자의 실제 방문과 지역 소비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가이드’라는 의미다.
코스 선정 과정은 다각적 평가를 거쳤다. 전통주 및 관광 분야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전통주 업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평가 기준은 ▲지역 대표성 ▲양조장 체험 프로그램 우수성 ▲지역 농산물·향토음식 연계성 ▲교통 접근성 등이었다. 방문객이 양조장에서 지역 농산물로 빚은 술을 체험하고, 해당 지역의 식문화와 서사를 깊이 있게 경험하도록 동선을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충청권 코스는 예산 사과를 활용하는 ‘예산사과와인’, 당진 해나루쌀과 연잎으로 술을 빚는 ‘신평양조장’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방문객은 양조장 투어와 함께 예산 추사고택이나 당진 관광 명소를 방문하고, 지역 특산물인 사과와 쌀로 만든 음식을 소비할 수 있다. 전라권에서는 전통 누룩 명인의 기술이 담긴 정읍 ‘한영석발효연구소’가, 제주권에서는 제주 좁쌀로 술을 빚는 ‘제주고소리술익는집’이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
달라진 술 소비, ‘이야기’를 찾는 소비자들정부가 전통주를 농촌관광의 핵심 동력으로 판단한 배경에는 급변하는 주류 소비 트렌드가 있다. 농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전통주 출고량은 2018년 9,700KL에서 2024년 22,900KL로 6년 만에 136%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제조면허 수는 1,037개에서 1,957개로 약 88.7% 늘었고, 수출액 역시 1,700만 달러에서 2,300만 달러로 35.2% 증가했다.
이러한 성장의 중심에는 젊은 소비층이 있다. 정제민 예산사과와인 대표는 “젊은 세대는 과거 세대처럼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술을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술의 도수나 브랜드보다 그 안에 담긴 고유한 이야기, 원료가 자란 지역의 특색, 양조가의 철학에 가치를 두고 소비한다.
이러한 수요는 온라인 구매를 넘어 양조장을 직접 방문하는 체험형 관광으로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술을 마시는 행위를 넘어, 제조 과정을 보고 양조사와 소통하며 그 술이 탄생한 지역의 환경을 느끼는 것 자체가 중요한 소비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은 이 트렌드를 정밀하게 겨냥한다.
2013년 2곳으로 시작한 ‘찾아가는 양조장’은 2024년 69곳으로 확대됐다. 정부는 이들 양조장에 환경 개선, 체험 프로그램 개발, 홍보 콘텐츠 제작 등을 지원하며 복합 문화공간으로의 성장을 유도했다. 이번 투어코스 발표는 개별 양조장에 대한 점 단위 지원을 넘어, 이들을 권역별로 연결해 선과 면 단위의 관광 자원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명확히 한다.
양조장 하나가 그리는 경제적 파급효과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이번 행사가 열린 충남 예산의 ‘예산사과와인’ 사례에서 확인된다. 2014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된 이곳은 지역 농업, 전통주, 관광이 결합된 모델의 시너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곳은 연간 약 2만 5,000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지역의 대표 명소다. 방문객들은 사과 수확, 와이너리 투어, 애플파이 만들기, 주류 시음 등 프로그램을 통해 예산 사과가 와인과 브랜디로 변모하는 전 과정을 체험한다.
더 중요한 지표는 지역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이다. 예산사과와인은 연간 예산군 내 110여 개 농가로부터 약 500톤의 사과를 수매한다. 이는 예산 전체 사과 생산량의 약 3%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제민 대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 연간 30톤에 불과했던 사과 소비량은 증류주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는 “500㎖ 용량의 50도 애플브랜디 한 병에 평균 6kg 이상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현재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양조장 한 곳이 지역 핵심 농산물의 안정적 판로를 제공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수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거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주가 단순 1차 가공품을 넘어 6차 산업의 핵심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정부가 그리는 ‘K-미식 여정’의 지향점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 접점 확대를 위한 다각적 접근농식품부는 양조장 관광 활성화와 함께 전통주의 유통 및 판매 채널 다각화를 병행한다. 우수한 체험형 관광 상품을 개발하더라도, 소비자가 일상에서 전통주를 쉽게 접하고 구매할 수 없다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각적 판로 확대 전략을 추진한다. 우선 유동인구가 많은 철도역을 새로운 유통 거점으로 활용한다. 올해 하반기 대전역에서 충청권 ‘찾아가는 양조장’들이 순환 입점하는 팝업스토어를 시범 운영하고, 성과 분석 후 전국 주요 철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코레일유통이 운영하는 편의점 ‘스토리웨이’에도 우리술품평회 수상작 등 우수 전통주 입점을 늘리고 시음 행사를 지원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접점도 강화한다. 서울 동대문 두타몰에 개관한 ‘전통주갤러리 2호점’은 MZ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우리 술의 매력을 알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이번에 발표된 권역별 투어코스 상세 정보는 전통주 포털 ‘더술닷컴’을 비롯해 ‘K-치킨벨트’ 공식 홈페이지, 농촌관광 포털 ‘웰촌’ 등 다수 온라인 채널에 동시 공개해 접근성을 높였다.
해외 시장 공략도 병행한다. 재외공관 30개소를 대상으로 오피니언 리더 초청 행사 시 우리 술을 건배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전통주 건배주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또한 대한항공 기내 면세점 판매와 기내 홍보를 통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전통주를 각인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는 생산, 체험, 유통, 홍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산업 생태계 구축 시도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과제‘찾아가는 양조장’ 중심의 미식관광 모델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K-푸드 콘텐츠 다변화 측면에서 명확한 잠재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 정책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첫째, 품질의 일관성 확보다. 전국 69개 양조장이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방문객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품질, 위생, 서비스 기준을 갖추도록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 일부 양조장의 미흡한 운영은 사업 전체의 신뢰도를 저해할 수 있는 위험 요소다.
둘째, 지역 단위의 협력 체계 구축이다. 양조장 단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지방정부는 양조장과 지역 내 음식점, 숙박시설, 관광지를 연계하는 실질적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교통 인프라를 개선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역 축제나 미식 행사와 투어코스를 연계하는 것도 효율적인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콘텐츠의 지속적인 혁신이다. 소비자의 취향은 빠르게 변화한다. 단순히 술 빚기 체험이나 시음에 머무르지 않고, 각 양조장이 보유한 고유한 스토리와 철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이는 정부 지원만큼이나 각 양조장 운영 주체의 창의성과 노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전통주는 이제 단순한 술이 아닌, 지역의 농업과 문화, 양조인의 이야기가 담긴 복합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그 가치를 어떻게 연계해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여정’으로 제시하느냐가 K-미식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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