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열의 '음식잡설(雜說)'] (10) ‘투뿔’의 환호
신상열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9-14 15:01:00
좋은 소는 과연 누구에게 좋은 소일까
[Cook&Chef = 신상열 칼럼니스트] 오늘 식탁에 한우 ‘투뿔’이 올라왔다.
한우 정육식당을 운영했던 때가 떠오른다.
손님들이 가장 먼저 묻는 말은 대개 비슷했다.
“이거 몇 등급이에요?”
1등급보다 1+, 1+보다 1++.
우리는 그것을 ‘투뿔’이라고 부른다.
고기를 잘라 단면을 보여주면 하얀 지방이 촘촘하게 박힌 고기일수록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마블링 좋네요.”
좋은 투뿔 고기를 구해 손님에게 내놓았다. 그게 우리 식당의 경쟁력이자 좋은 고기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마블링이 아름답게 퍼진 고기는 더 비쌌고, 잘 팔렸다.
시간이 지났다. 마이클 샌델의 <완벽에 대한 반론>책을 펼치며 드는 생각이다.
우리가 말하는 ‘좋은 소’는 과연 소에게도 좋은 소일까.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서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을 이야기하면서 단순히 기술이 위험하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샌델이 던지는 질문은 더 근본적이다.
인간이 생명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끊임없이 설계하고 개선하려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샌델이 경계하는 것은 인간의 ‘완벽을 향한 통제의 욕망’이다.
아이의 키와 지능, 운동능력을 유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할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를 고치는 것과 더 뛰어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고르는 것은 같은 일일까.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옳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샌델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설계하는 능력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삶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the giftedness of life)’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것(여기는 유전적 요인인지 알 수 없는 후천적 능력도 포함)’을 선물로 여기지 않으면 자만과 오만에 빠지기 쉽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더 좋은 소를 만들려고 했다.
더 빨리 자라는 소.
고기가 많이 나오는 소.
지방이 잘 끼는 소.
사료효율이 좋은 소.
질병에 강한 소.
좋은 형질을 가진 개체를 선발하고 교배하고, 우수한 정액과 수정란을 이용하고, 유전체 정보까지 활용한다.
농업도 비슷하다.
더 크고, 더 달고, 더 많이 열리고, 병충해에 강하고, 유통기간이 긴 종자를 만든다.
좋은 종자를 선발하고 개량하고 다시 번식시킨다.
이 과정 자체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류는 품종개량 덕분에 더 많은 식량을 생산했고 기아와 질병에 대응해왔다.
문제는 ‘더 좋은 것’의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이다.
더 크면 좋은가.
더 빨리 자라면 좋은가.
더 많은 고기가 나오면 좋은가.
마블링이 많으면 무조건 좋은 소인가.
그 기준의 끝에는 대부분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 인간 뒤에는 시장이 있다.
소고기의 마블링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마블링이 많은 고기를 찾는다.
유통업자는 높은 등급의 고기를 원한다.
농가는 높은 등급을 받아야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사육 방식도 그 기준을 향해 움직인다.
내가 정육식당에서 투뿔을 팔던 시절에도 그랬다.
손님에게 “좋은 고기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보여준 것은 대부분 마블링이었다.
하얀 지방이 촘촘하면 좋은 고기.
투뿔이면 최고급.
가격도 그만큼 올라갔다.
손님도 만족했고 나도 만족했다.
소만 빼고 말이다.
샌델은 과학기술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자연을 이해하려는 것과 자연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것은 다르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인간이 원하는 형질만 골라 ‘완벽한 생명’을 만들어내려는 것도 다르다.
우리가 생명을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생명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목적을 위한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는 자연을 전혀 손대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명을 바꿀 수 있다면, 과연 어디에서 멈춰야 할까.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갖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감정과 성찰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완벽하게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충분함을 아는 마음이다.
투뿔 한우 한 점을 앞에 두고 생각이 너무 멀리 갔다.
마블링에서 시작해 유전자와 인공지능, 인간의 욕망까지 왔다.
한우를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오늘은 맛있게 먹자.
인간의 욕망에 대한 성찰은, 고기 먹고 나서 다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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