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물가 안 잡는 할당관세…소비자 체감 ‘제로’, 농민 피해 ‘심화’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06-25 11:50:03
국회예산정책처 “유통구조 개선·사후 평가체계 강화 시급”
[Cook&Chef = 이경엽 기자] 정부가 물가 안정을 목표로 주요 농축산물에 적용한 할당관세가 실효성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수입가 인하에도 소비자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고, 유통구조에서 가격 인하 효과가 대부분 소멸되며, 국내 농가에 대한 피해만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4일 발표한 「할당관세 운용 현황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정부는 2024년 한 해 동안 총 1조 4,301억 원 규모의 세수를 감면하며 할당관세를 운영했다. 이 중 약 66%는 물가·수급 안정을 목적으로 했으나, 주요 농축산물의 소비자가격에는 거의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수입가격이 1% 하락할 때 소비자가격은 돼지고기 0.51%, 닭고기 0.28%, 소고기 0.12% 인하에 불과했다. 가격 반영까지는 평균 7개월에서 최대 1년이 소요됐다. 2024년에도 유사한 추세가 반복됐으며, 특히 설탕, 당근, 닭고기 등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소비자 가격 하락이 나타나지 않았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수입가 하락 시 도매가는 일정 수준 떨어졌지만, 소매가격 하락은 도매가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유통단계에서 가격 하락 효과가 대부분 상쇄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기대한 ‘수입가 인하 → 국내 출고가 인하 → 소비자물가 안정’이라는 전가 경로가 실제로는 유통마진, 가격 담합, 공급량 조절 등 복합적 요인에 막혀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는 소고기 할당관세의 약 88% 혜택이 수입유통업체에 귀속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와 같은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할당관세 적용 품목 수는 확대되고 있다. 2024년에는 총 125개 품목에 할당관세가 적용됐으며, 이 중 긴급할당관세 품목은 48개로, 2020년(2개) 대비 24배 증가했다. 농산물 품목 수도 2020년 20개에서 2024년 72개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국내 농축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수입물가 인하로 인한 국내산 가격 하락은 생산비 증가와 맞물려 농가 경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양계, 낙농, 과수 등 일부 업계에서는 수익성 악화와 수급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지속 제기되고 있다.
실효관세율(관세 징수액/수입금액)은 2020년 1.3%에서 2024년 0.8%로 하락하며 관세 수입 감소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미국, 일본, EU, 중국, 호주 등 주요 교역국 모두 실효관세율이 하락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수입이 늘었음에도 세수는 감소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문제는 사전 품목 선정과 사후 관리가 모두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긴급할당관세의 경우, 의견 수렴 없이 기획재정부와 부처 간 협의로 결정되며, 효과 분석 결과도 요약본 수준으로만 국회에 제출되고 있어 검증이 어렵다. 2024년 5~9월 시행된 김류 할당관세의 실제 수입량은 배정 물량의 10~25%에 불과해 제도의 현실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유통구조를 함께 개선하지 않으면 할당관세의 소비자 체감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물가안정 기여도에 기반한 평가체계를 마련하고, 효과가 낮은 품목은 다음 연도 감면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세율을 조정하는 환류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연간 1조 원을 초과하는 세수 감면 규모를 ‘조세지출예산서’에 포함해 국세감면액 총액 내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현재 할당관세는 예산 구조 내 통제 없이 시행되고 있어 조세 형평성과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는 판단이다.
향후 국회에서는 물가 안정과 농민 보호, 소비자 체감의 균형을 잡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기 국정감사 및 예산심사 과정에서 할당관세 제도의 목적, 운용 구조, 평가 방식 등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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