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리수, 한 상자에 담긴 타이완의 행운

정수연 기자

cnc02@hnf.or.kr | 2026-07-31 15:00:12

파인애플 산업과 선물 문화가 만나 탄생한 대표 간식 출처 : 위키피디아

[Cook&Chef = 정수연 기자] 타이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의 손에는 네모난 과자 상자가 자주 들려 있다. 버터 향이 은은한 반죽 안에 새콤달콤한 과일 필링을 채운 펑리수다. 휴대와 보관이 편해 대표적인 여행 기념품으로 알려졌지만, 타이완에서 이 과자는 좋은 일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전하는 선물로 통한다.

그 의미는 파인애플을 부르는 타이완의 말에서 출발한다. 파인애플을 뜻하는 ‘옹라이’가 ‘번영이 찾아온다’는 뜻의 왕라이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결혼식과 명절, 축제와 방문 자리에서 파인애플이나 펑리수를 주고받는 문화도 이러한 언어적 상징을 바탕으로 이어져 왔다.

오늘날의 작은 과자 안에는 파인애플을 재배해온 섬의 역사와 통조림 산업의 흥망, 지역 농산물을 새로운 상품으로 바꾼 제과 문화가 겹쳐 있다. 펑리수 한 상자를 따라가다 보면 타이완이 파인애플에 부여해온 의미와 이 과자가 대표 선물로 성장한 과정이 함께 드러난다.


봉황의 배, 번영을 부르는 과일

펑리(鳳梨)는 파인애플을 뜻한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봉황의 배’가 된다. 낯선 열대과일을 귀하고 특별하게 여겼던 옛사람들의 인식이 이름에 남은 것이다.

타이완에서는 파인애플을 옹라이라고도 부른다. 이 발음은 민난어에서 ‘번영이 온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왕라이와 닮았다. 파인애플은 이러한 언어유희를 거치며 장사가 잘되고 집안이 번성하며 좋은 일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상징으로 발전했다.

결혼식과 축제의 상에 파인애플을 올리고, 방문할 때 펑리수를 건네는 풍습도 같은 의미에서 이어졌다. 과자 한 상자를 선물하는 행동에는 맛있는 간식을 나누는 마음과 함께 상대의 앞날이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뜻이 실린다.


바다를 건너 타이완에 뿌리내리다

파인애플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이다.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에 전해졌으며, 재배와 운송이 어려웠던 시기에는 부와 환대를 드러내는 귀한 과일로 대접받았다.

타이완에는 유럽의 해상무역망을 통해 파인애플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뜻한 기후와 재배 환경은 파인애플이 자라기에 알맞았고, 이 과일은 오랜 시간을 거쳐 섬의 주요 농산물로 성장했다.

산업 규모가 크게 확대된 시기는 일본 통치기였다. 새로운 품종이 도입되고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통조림 공장이 들어서면서 재배 면적도 넓어졌다. 당시에는 신선한 파인애플을 먼 지역까지 운송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익은 과일을 통조림으로 가공해 일본과 해외 시장에 판매했다.

가오슝 다수 지역은 철도와 항구를 바탕으로 파인애플 재배와 가공의 중심지가 되었다. 밭에서 수확한 과일은 공장을 거쳐 통조림으로 만들어졌고, 타이완은 한때 세계적인 파인애플 수출지로 이름을 알렸다. 훗날 펑리수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시기 축적된 재배 기술과 가공 경험이 놓여 있었다.


통조림의 시대를 지나 과자로 

타이완의 파인애플 산업은 1970~80년대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생산비가 오르고 동남아시아산 제품과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출 중심의 구조가 흔들렸다. 대량으로 생산한 파인애플을 국내에서 소비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진 시점이었다.

파인애플은 이후 잼과 음료, 제과류로 쓰임을 넓혔다. 펑리수 역시 이러한 산업 전환 속에서 대표 상품으로 성장했다. 파인애플의 향과 길상적 의미를 작은 과자 안에 담을 수 있었고, 상자에 넣어 운반하거나 선물하기에도 알맞은 형태였다.

펑리수의 기원을 둘러싼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전한다. 삼국시대의 혼례 음식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으며, 전통 결혼식에 쓰이던 용봉병이 작아지면서 현재의 형태로 발전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파인애플의 판로를 넓히기 위해 제과업자들이 상품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익숙한 네모난 펑리수는 하나의 전설에서 곧바로 탄생한 음식이라기보다 타이완의 파인애플 산업과 근대 제과 기술, 선물 문화가 오랜 시간 만나 형성된 결과에 가깝다. 오래된 길상 의미 위에 시대에 맞는 맛과 형태가 더해졌고, 펑리수는 마침내 타이완을 대표하는 과자로 자리매김했다.


펑리수 속에는 무엇이 들어갈까

펑리수는 부드럽게 부서지는 반죽 안에 점성이 있는 과일 필링을 채워 굽는다. 겉에서는 버터의 고소한 향이 퍼지고, 속에서는 새콤달콤한 맛이 이어진다.

대중적으로 판매되는 펑리수의 필링에는 파인애플과 함께 동아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맛이 순한 동아를 설탕과 함께 조리하면 부드럽고 매끈한 질감이 생기며, 파인애플의 강한 산미와 거친 섬유질도 한결 온화해진다.

파인애플 함량을 높인 제품은 토펑리수(土鳳梨酥)라고 부른다. 일반 펑리수가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지녔다면, 토펑리수에서는 파인애플 섬유질이 씹히고 신맛과 향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두 종류는 대중적인 단맛과 과일 본연의 풍미라는 서로 다른 취향을 보여준다.

버터와 설탕, 과일 필링이 어우러진 펑리수는 따뜻한 우롱차와도 잘 맞는다. 차의 떫은맛과 향이 반죽의 묵직한 풍미를 정리하고, 파인애플의 산미를 입안에 길게 남겨준다.


여행 가방에 담긴 타이완의 마음

펑리수가 타이완의 대표 기념품이 된 배경에는 상징성과 실용성이 함께 작용했다. 크기가 작고 형태가 단단해 이동하기 편하며, 낱개 포장된 제품은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에도 좋다. 보관 기간도 넉넉해 여행을 마친 뒤 가족이나 동료에게 전달하기에 알맞다.

맛 역시 폭넓은 사람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 버터 향이 나는 반죽과 과일 필링의 조화가 편안하며, 제품마다 반죽의 두께와 파인애플 함량, 신맛과 단맛이 달라 비교해 먹는 재미도 생긴다.

무엇보다 펑리수에는 ‘번영이 찾아온다’는 뜻이 실려 있다. 여행자는 과자 한 상자를 건네며 타이완의 맛과 함께 상대의 앞날에 좋은 일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전하게 된다.

한때 통조림에 담겨 바다를 건너던 타이완의 파인애플은 이제 네모난 과자가 되어 여행자의 가방에 실린다. 상자를 열면 버터 향과 새콤달콤한 필링이 먼저 다가오고, 그 뒤로 남부의 파인애플 밭과 가공산업의 시간, 번영을 기원해온 선물 문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펑리수는 그렇게 타이완의 농업과 산업, 언어와 풍습을 한 상자 안에 모아놓은 과자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펑리수를 건넨다는 것은 달콤한 간식을 나누는 동시에 “좋은 일이 찾아오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함께 보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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