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로컬 미식여행 33선에 오른 홍어, 국제 무대서 진미로 각인
정영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07-23 11:07:24
[Cook&Chef = 정영 기자] 한국의 미식이 지역 고유의 식재료와 역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한 사례가 있다.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에서 전해져 온 ‘홍어’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K-로컬 미식여행 33선』에 이름을 올리며, 단순한 별미를 넘어 ‘이야기가 있는 미식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흑산도 홍어의 독특함은 최근 국제 청년 행사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전남 도초도에서 열린 ‘제6회 국제 청년 섬 워크캠프’에서 열린 홍어 해체쇼는 세계 7개국 참가자 20명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홍어의 진면목을 알렸다. 이는 신안군이 추진 중인 ‘K-관광섬 흑산도’ 사업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대표 식문화의 국제화를 실험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고통 끝에 오는 단맛, 홍어가 품은 '고진감래'
흑산도 홍어는 단순히 삭힌 생선 그 이상이다. 홍어의 맛은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고사성어로 종종 설명된다. 특유의 톡 쏘는 향과 강렬한 풍미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익숙해질수록 깊이 있는 맛의 매력을 선사한다.
홍어는 서해안 연안 전역에서 잡히지만, 그중에서도 신안군 흑산도 주변 해역에서 어획된 홍어는 지방 함량이 높고 육질이 단단하여 최상품으로 평가된다. 과거 냉장기술이 없던 시절, 흑산도에서 목포까지 해산물을 나르던 도중 자연적으로 ‘숙성’된 홍어를 맛본 이들이 그 풍미에 매료되며 삭힌 홍어 문화가 정착되었다는 설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홍어는 숙성될수록 더 강한 향을 발하지만 그와 함께 깊은 단맛과 감칠맛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삭힌 홍어에 잘 익은 김치, 부드러운 수육을 곁들이는 ‘홍어삼합’은 식탁 위의 과학이라 불릴 만큼 조화롭다. 염기성 홍어와 산성 김치, 지방과 단백질의 수육이 입 안에서 하나의 맛을 완성한다.
국제 청년 행사에서 ‘해체쇼’로 매력을 전달하다
이번 도초도 국제 청년 워크캠프에서는 흑산도 홍어의 전통 식문화를 시연하는 **‘홍어 해체쇼’**가 외국인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연자는 흑산홍어썰기학교 출신 정태연 조아홍 대표로, 중급 기술자 자격증을 갖춘 전문인이었다.
그는 삭힌 홍어가 아닌 ‘생홍어’의 신선한 식감과 냄새 없는 풍미를 강조하며, 참가자들에게 시식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외국인에게 자극적인 숙성향보다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홍어의 또 다른 매력’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현장 참가자들은 홍어 특유의 질감과 감칠맛에 놀라움을 표현했고, 몇몇은 “처음 경험하는 맛이지만 인상 깊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미식 체험을 넘어, 한국 섬 지역의 독특한 식문화를 글로벌 청년 세대에게 전달한 중요한 문화외교 사례로 평가된다.
'미식은 문화다'…K-로컬 미식여행 33선에 담긴 의미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10월 28일 발간한 『K-로컬 미식여행 33선』 책자는 단순한 맛집 가이드가 아니다. 전국의 제철 식재료, 지역 전통주, 향토 음식에 담긴 역사·지리·문화적 맥락을 풀어낸 미식 인문서에 가깝다.
흑산도 홍어는 이 목록에서 “고진감래 끝에 즐기는 진미”라는 설명과 함께 소개되며, 숙성과 시간의 가치, 그리고 지역의 생존지혜가 녹아든 음식으로 재조명됐다. 과거 유통의 제약이 오히려 발효 문화를 낳고, 그 향이 또 다른 별미로 인정받는 여정 자체가 흑산도 홍어의 상징성이다.
문체부와 공사는 향후 이 책자를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다국어로 번역하여, 세계인의 미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구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통을 계승하고, 세계에 알리다
신안군은 흑산홍어썰기학교를 통해 지역 청년과 주민들이 전통 기술을 계승하고 일자리로 연결할 수 있도록 6년째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81명의 수료생 중 65명이 ‘홍어 썰기 기술자’ 자격을 취득했으며, 이는 식문화의 산업화를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김대인 신안군수 권한대행은 “홍어는 단순한 지역 음식이 아닌 남도의 정신과 생존의 지혜가 담긴 문화 자산”이라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흑산도의 미식문화를 전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흑산도 홍어는 단순한 맛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의 시간, 인간의 인내, 지역의 지혜가 함께 숙성된 결과다. 그것은 바로 ‘고진감래(苦盡甘來)’다. 앞으로 더 많은 세계인이 이 맛과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섬과 음식,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삶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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