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형의 와인소풍 / 여섯번째 나들이, 일식요리와 함께 한 3인 3병의 이야기 All That Wine & Spirits Mariage!

이철형

winepicnic4u@gmail.com | 2024-07-30 10:32:18

[Cook&Chef=이철형 칼럼니스트] 나이가 좀 든 경우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소식(小食)을 할 수 있으면서 위장에도 부담이 덜 가는 요리가 일식이다. 특히나 무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음식점에서 위생 관리가 잘 된 일식집을 찾으면 더운 음식이 거의 없기에 더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도 좋은 것 같다. 더구나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사람들이 모여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와인 한 잔을 하면 부담도 없고.

오늘은 그 3인이 각자 한 병씩 와인을 갖고 모인 모임 이야기로 와인 소풍을 떠나볼까 한다. 정년을 1년 앞둔 대학 교수인 친구가 자기가 식사를 살 것이고 자기가 와인 한 병을 가지고 나올테니 누가 화이트 한 병을 가지고 오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예약 장소라고 알려온 곳이 강남의 어느 일식집이었다. 그래서 내가 화이트 한 병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더니 다른 전직 국회의원 친구가 자기도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들고 나오겠단다. 통상 참석인원 보다 1병 작게 마셔야 건강에 좋을 텐데 싶으면서도 그래 뭐 다양하게 마셔보고 서빙하는 분께도 한잔 권하고 하면 되겠다 싶어 그냥 모두 OK를 했다.

당일 장마의 시작이다 보니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강남구청역 전철에서 내리니 비가 살짝 비친다. 약속장소를 가는데 암만 봐도 사방이 아파트다. 강남구청역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고 이 길에 무슨 음식점이 있을까 싶었는데 조금 걸어내려가니 짜잔하고 사거리 모퉁이에 나타난다. 네비게이션의 편리함을 다시 한번 느끼며 2층에 있는 일식집에 도착하여 예약자를 문의하니 방으로 안내해준다.


예약한 친구말로는 이 집이 한달전에 예약해도 잘 안되는데 어떻게 운좋게 예약이 되었단다. 장마철에 휴가철이 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단다. 한적한 곳에 위치하여 오히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귀뜸해준다. 물론 요리 솜씨도 좋고. . 여튼 운이 좋은 것이다. ^^ 더구나 비내리는 창밖에 보이는 작은 방이다. 창밖에 보이는 단 두 개 방중의 하나! 친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먼저 도착한 둘이서 나머지 한 명을 기다리며 비 때문에 길이 좀 밀리나 보다라고 생각하면 와인 칠링을 위해 버킷을 가져다 달라고 하니 가져다 준다.

오늘의 모임 주선자가 가져온 와인은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 그것도 빈티지 샴페인으로 2014년 빈티지다. 요즈음 한국에서 한참 유명하게 된 파이퍼 하이직 샴페인! 마리 앙트와네트가 최초의 홍보대사였고 마를린 먼로의 아침을 깨우던 바로 그 샴페인! 그것도 10년전 빈티지인 2014년 샴페인이다. 일단 기대가 된다. 파이퍼 하이직 빈티지 샴페인은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져간 것은 루마니아 프리미엄 와인의 교과서라고 불리우는 부두레아스카(Budureasca)의 바인 인 플레임스 샤르도네 (Vine in Flames Chardonnay) 드라이 2023 빈티지였다. 이 와인은 한국에 최초로 도착한 지 갓 1달이 지난 최신 상품이고 100%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다. 2023 빈티지는 아직 와인 품평회의 평가가 없지만 이 와인의 2020빈티지는 베를린 와인 트로피와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2021, 2022빈티지는 일본 와인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와인이다. 

칠링을 하면서 식사를 코스 요리로 주문해놓고 조금 기다리니 마지막 친구가 도착한다. 그 친구가 가져온 와인은 몰도바(Moldova) 와인으로 알브 드 푸카리 (Alb de Purcari) 2020! 와우 이런 인연이! 루마니아와 몰도바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연관이 깊은 데다가 현재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도 국경을 같이 하고 있는 나라인데. . 와인도 토착 품종이 같은 경우가 많고. . 어릴 때부터 친구라서 이런 와인 인연까지 생긴 것일까? 흔하지 않은 와인 조합이다.

몰도바 와인은 대전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심사위원으로 그리고 대전 화인 페스티발에서 그동안 많이 접해왔지만 이 브랜드는 처음이라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아마 분명히 내가 테이스팅 했음에도 너무 많이 테이스팅하느라 잊어 버린 브랜드일 수도 있지만. 품종은 50% 샤르도네(Chardonnay), 45%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5% 피노 블랑(Pinot Blanc)으로 만들었고 드라이 와인이란다. 생산자는 샤토 푸카리(Chateau Purcari)이고 2020 빈티지의 평가도 좋다. 국제 와인 품평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와인이다. 

이제 세 사람이 다 모였으니 와인을 마시는 순서는 프랑스, 루마니아, 몰도바의 순으로 정하고 마침 서빙되기 시작한 요리와 와인도 마시기 시작했다. 우선 파이퍼 하이직 2014 빈티지 샴페인은 10년이나 된 것임에도 그 상큼함과 날카롭다고까지 할 정도의 맑은 산도가 장마와 폭염에 찌든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감귤류와 모과, 살구의 향과 함께 생강, 감초의 향까지 나고 효모와 함께 병속에 오래 있다보니 샴페인 특유의 구운 빵의 향이 은근히 올라온다. 19개 파이퍼 하이직의 포도원중에서 87%를 그랑크뤼 포도원에서 나머지를 프리미에 크뤼 포도원에서 수확한 피노누아 55%와 샤르도네 45%를 블렌딩하여 만들었다. 병속 2차 발효를 최소 5년 이상했고 마지막에 병입구의 앙금을 제거한 후 설탕과 와인 혼합액을 보충한 후 병입상태로 다시 1년 이상 숙성시켜서 시장에 출시하다보니 빈티지로부터 빨라야 최소 7년차에나 시장에 출시되는 샴페인인 것이다. 물론 작황이 아주 좋았기에 논 빈티지와 달리 2014년에 수확한 포도로만 만들었고. 이 빈티지 샴페인이 디캔터 93점에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에서 연거퍼 금상을 수상하고 다른 대회에서도 금상들을 수상한 것에 공감이 간다.

샴페인이라고 다 같은 샴페인이 아니고 각 샴페인 양조자별로 맛과 향이 차이가 있고 논빈티지와 빈티지 샴페인간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맛과 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미, 연어, 전복 등 여러가지 회와도 당연히 어울린다. 괜히 샴페인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생선이 꽃밭과 과수원에서 노닌다고 하면 과장일까?^^

다음으로 개봉한 것이 루마니아 부두레아스카의 바인 인 플레임스 샤르도네 드라이 2023! 열대 과일향과 함께 바닐라향이 나고 오크 숙성을 해서 크리미한 느낌도 있다. 입안에서는 신선 상큼하면서도 과일향이 입안 가득 맴돌고 마시고 나면 아몬드향도 스친다. 도미회나 연어회, 참치회를 먹고 이 와인을 마시면 와인의 향이 더 확 피어 올라 마치 입안이 화려한 꽃밭이 된 듯하다. 각 회의 맛도 더 감칠맛 나게 되고. 이 와인도 앞서 언급한 대로 각종 품평회 특히 일본의 와인 품평회와 여성만이 참가하여 평가하는 사쿠라 와인 어워즈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와인의 ‘불타는 포도나무’ 라는 의미의 ‘바인 인 플레임스(Vine in Flames)’라는 브랜드에는 루마니아 역사의 전설이 숨어있다. 루마니아의 초기 왕국이었던 다키아(Dacia) 왕국 시절 부레비스타(Burebista)왕이 오딧세이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던 이 지역의 와인으로 인해 이웃 국가들의 침공이 많아지자 백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포도원을 불태웠다고 하는데 그걸 오늘날 되살려 그 잿더미를 거름삼아 부활시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마신 몰도바 와인인 알브 드 푸카리는 세가지 품종이 블렌딩되어 달콤함 과일향과 함께 오크 숙성이 주는 너트류 느낌에 약간의 꿀향도 느껴진다. 산도가 앞서 마신 두가지 와인보다 더 날카로운 느낌이어서 참치회와 먹을 때 입안의 기름진 느끼함을 확실하게 씻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마신 것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도의 날카로움이 셋 다 있지만 상대적으로 더 강한 느낌을 이 와인이 주기에. .

오늘 마신 세가지 와인 모두 산도가 상당한지만 과일향이 겹쳐지면서 전체적으로 균형감이 있고 산도가 주는 느낌이 조금씩 다르기에 각 생선회나 요리와도 다른 모습으로 어울려져서 참 즐거운 여름밤의 3인 와인회였다.화제는 와인 이야기부터 건강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맛있는 요리와 와인만큼이나 맛있는 시간이었다. 다음 3인 와인회를 9월로 기약하며 맛진 추억을 품은 채 각자의 집으로 향하며 다음의 주제는 레드로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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