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탐구] 한여름 궁중이 빚은 만두, 규아상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07-21 15:11:45
[Cook&Chef = 서진영 기자]만두는 대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떠오르는 음식이다. 뜨거운 장국에 넣어 끓이거나 김이 오르는 찜통에서 갓 꺼내 먹는 겨울 만두가 친근하지만, 조선 궁중에는 무더운 계절에 즐기던 만두도 있었다. 여름에 풍성하게 나는 오이와 쇠고기, 표고버섯으로 소를 마련하고 해삼을 닮은 모양으로 빚어 담쟁이잎 위에서 쪄낸 규아상이다.
규아상은 미만두라고도 불린 궁중의 여름 찐만두다. 절인 오이와 쇠고기, 표고버섯을 익혀 소로 넣고, 얇은 만두피를 반으로 접어 등에 잔주름을 잡으면 해삼처럼 길고 울퉁불퉁한 형태가 완성된다. 만들어 놓은 모양이 해삼을 닮아 해삼만두라 했고, 해삼을 이르던 옛말 ‘미’를 붙여 미만두라고도 불렀다.
『조선왕조 궁중음식』에서는 규아상을 궁중에서 여름에 먹던 찐만두로 설명한다. 오이와 표고버섯, 쇠고기로 소를 마련해 해삼 모양으로 빚고 찜통 아래에 담쟁이잎을 깔아 찌는데, 소의 재료를 모두 익혀 넣으므로 잠깐만 쪄도 된다.
해삼의 형상을 담은 궁중 만두
규아상의 해삼 모양은 음식의 이름과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형태다. 만두피를 반으로 접은 뒤 가장자리에 촘촘한 주름을 잡아 해삼의 길쭉한 몸과 울퉁불퉁한 표면을 표현했으며, 이 모양에서 해삼만두와 미만두라는 이름도 비롯됐다.
해삼은 예부터 귀한 해산물로 대접받았고 궁중 잔치와 상차림에도 자주 올랐다. 규아상은 해삼을 재료로 사용한 음식이 아니라, 그 생김새를 만두에 옮긴 음식이다. 귀한 식재료의 형상을 밀가루 피와 섬세한 주름으로 표현함으로써 맛뿐 아니라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격식까지 갖추었다.
이러한 모양은 규아상을 다른 여름 만두와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네모난 피의 네 귀를 가운데로 모아 반듯하게 빚는 편수와 달리 규아상은 둥근 피를 반으로 접고 가장자리에 잔주름을 잡아 유연한 곡선을 살렸다. 자연물의 생김새를 음식에 옮겨 한 접시 안에서 계절과 품격을 함께 표현한 궁중 조리의 미감을 보여준다.
규아상의 주름을 고르게 살리려면 만두피를 얇고 일정하게 밀어야 하며, 소의 수분도 충분히 조절해야 한다. 오이에서 물이 많이 나오면 피가 젖어 주름이 풀리거나 찌는 동안 터질 수 있으므로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부터 빚는 솜씨까지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해삼 모양은 장식에 머물지 않고 만두피와 소의 상태, 조리자의 숙련도를 함께 보여주는 형식이다.
여름 오이로 완성한 산뜻한 맛
규아상의 중심 재료는 여름 오이다. 수분이 풍부한 오이는 쇠고기와 밀가루 피가 주는 묵직한 맛을 덜어주며, 푸른 향과 아삭한 식감으로 여름 만두다운 산뜻함을 보탠다. 한입 베어 물면 오이가 가볍게 씹히고, 뒤이어 쇠고기와 표고버섯의 감칠맛, 잣의 고소함이 어우러진다.
규아상에는 오이의 씨가 든 무른 속살보다 단단한 겉부분을 도톰하게 벗겨 가늘게 채 썬 것을 사용한다. 채 썬 오이는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를 짠 뒤 가볍게 볶거나 익혀 소에 섞는다. 수분이 많은 오이를 그대로 넣으면 만두소가 질어지고 피가 쉽게 젖기 때문에, 절이고 익히는 과정을 거쳐 만두소에 알맞은 상태로 다듬은 것이다.
수분이 풍부한 오이는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식사에 촉촉한 질감과 청량한 맛을 더한다. 규아상 한 접시만으로 여름철 수분 섭취를 모두 채울 수는 없지만, 쇠고기와 밀가루로 이루어진 만두에 오이를 넣으면 입안에 남는 무거움을 줄이고 산뜻한 맛을 살릴 수 있다.
쇠고기는 단백질과 철, 아연, 비타민 B12를 공급하고, 표고버섯은 식이섬유와 감칠맛을 올리고, 잣은 불포화지방과 고소한 풍미를 더하며, 밀가루로 만든 피는 탄수화물을 채운다. 오이와 쇠고기, 버섯, 견과류, 곡물을 한입 크기에 담은 규아상은 더위로 식욕이 줄기 쉬운 계절에 여러 재료를 고르게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다.
기름에 튀기지 않고 짧게 찐 뒤 새콤한 초간장을 곁들이는 조리법도 여름철 입맛을 살린다. 오이의 푸른 향과 초장의 산미가 고기소의 진한 맛을 가볍게 정돈하면서 담백하고 산뜻한 여름 만두의 풍미를 완성한다.
『이조궁정요리통고』에 담긴 규아상
1957년에 출간된 『이조궁정요리통고』에는 규아상의 재료와 조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 한희순에게 궁중음식을 배운 황혜성 등이 궁중의 조리법을 정리한 책으로,
껍질을 벗겨 채 썬 오이를 소금에 절였다가 삶고, 다진 쇠고기와 표고버섯, 삶은 오이를 섞어 양념한 소를 준비하도록 했다. 밀가루로 만든 피에 소와 반으로 가른 잣을 넣어 해삼 모양으로 빚은 뒤, 채반에 담쟁이잎을 깔고 솥에서 찐다. 다 쪄낸 만두에는 찬물을 뿌리고 참기름을 발라 초장과 함께 냈다.
소의 재료를 모두 익혀 넣었기 때문에 찜통에서는 만두피가 익을 정도로 짧게 찌면 충분했다. 오랜 시간 열을 가하기보다 얇은 피를 부드럽게 익히고 빚어 놓은 모양을 살리는 과정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다 쪄낸 규아상에 찬물을 뿌리고 참기름을 바르면 만두끼리 달라붙는 것을 줄이면서 표면에 윤기를 더할 수 있다. 푸른 담쟁이잎 위에 윤기 나는 흰 만두를 올리면 색의 대비가 살아나고, 해삼을 본뜬 촘촘한 주름도 한층 또렷하게 보인다.
담쟁이잎은 얇은 만두피가 찜통이나 채반에 붙는 것을 막아주는 자연의 조리 도구였다. 넓고 평평한 잎 위에 규아상을 하나씩 놓으면 만두의 형태를 보존하기 좋고, 상에 올렸을 때는 여름의 푸른 색감까지 더할 수 있었다.
편수와 함께 즐긴 궁중의 여름 만두
『이조궁정요리통고』에 실린 편수와 규아상은 쇠고기와 오이, 표고버섯, 잣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재료 구성이 비슷하다. 편수에는 숙주와 석이, 두부가 더해져 소가 한층 풍성해지며, 규아상과는 빚는 형태에 차이가 있다.
편수는 사각형 만두피의 네 귀를 가운데로 모아 반듯하게 빚는 데 비해 규아상은 둥근 피를 반으로 접은 뒤 가장자리에 주름을 잡아 해삼의 형상을 표현한다. 편수가 선과 면이 또렷한 사각형이라면 규아상은 굴곡과 잔주름을 살린 곡선형 만두다.
『이조궁정요리통고』의 저자 중 한 명이며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황혜성은 편수와 규아상을 비슷한 계열의 여름 만두로 설명했다. 당시 소개한 규아상 조리법은 『이조궁정요리통고』와 조금 달랐다. 밀가루 대신 메밀가루를 반죽해 밤톨만큼씩 떼어낸 뒤 송편을 빚듯 가운데를 파고 편수와 같은 소를 넣었다. 쇠고기 대신 닭고기를 사용하고 밀가루 대신 메밀가루를 썼다는 차이는 있으나, 여름 오이와 고기, 버섯, 잣을 함께 넣어 빚는 구성은 유지됐다.
규아상과 편수는 같은 계절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양과 조리 방식으로 여름 만두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편수가 반듯한 형태와 풍성한 소를 갖춘 만두라면, 규아상은 해삼을 닮은 주름과 오이의 산뜻함을 살린 궁중의 찐만두라 할 수 있다.
규아상 만들기
재료
만두피 : 밀가루 2컵, 소금 1작은술, 물 6큰술
만두소 : 오이 2개, 쇠고기 우둔살 50g, 마른 표고버섯 2장, 잣 1큰술
고기 양념 : 간장 1큰술, 설탕 1/2큰술, 다진 파 2큰술, 깨소금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담쟁이잎 20장, 초간장
만드는 방법
1. 만두피 반죽하기
밀가루와 소금을 고루 섞은 뒤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한다. 표면이 매끄러워질 때까지 충분히 치댄 다음 비닐이나 랩으로 감싸 30분간 숙성한다.
2. 만두소 준비하기
오이는 길게 채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뒤 물기를 단단히 짜고, 팬에 기름을 둘러 가볍게 볶아 식힌다.
쇠고기와 불린 표고버섯은 곱게 다져 고기 양념을 넣고 버무린 뒤 팬에 볶아 충분히 식힌다.
볶은 오이와 쇠고기, 표고버섯을 고루 섞고 기름기를 닦아낸 잣을 더해 만두소를 완성한다.
3. 규아상 빚기
숙성한 반죽을 얇게 밀어 만두피를 만든다. 가운데에 소를 적당량 올리고 반으로 접은 뒤 가장자리에 촘촘한 주름을 잡아 해삼 모양으로 빚는다.
4. 찌기
찜기 바닥에 깨끗이 씻은 담쟁이잎을 넉넉히 깔고 규아상을 올린다. 김이 오른 찜기에서 5~8분간 짧게 찐다.
맛있게 즐기는 법
완성된 규아상은 식기 전에 바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간장과 식초를 1:1 비율로 섞고 잣을 띄운 초간장을 곁들이면 오이의 산뜻한 향과 쇠고기, 표고버섯의 감칠맛을 깔끔하게 즐길 수 있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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