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Story / 유영보 셰프, 美뉴욕고교 수학여행단 K-푸드 행사 진행
백경석
cooknchefnews@naver.com | 2023-04-15 10:29:08
기자]
데모크라시 프렙 공립학교는 뉴욕 할렘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2005년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고등학생 대상으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으며, 태권도, 부채춤 등 한국문화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한국어 성적 우수자들로 구성된 이번 수학여행단은 여행 기간 중 한식 만들기, 한복 체험, 노래방, 넌버벌 공연 관람 등 다양한 K-컬처를 체험해보고, 한국관광공사 ‘하이커 그라운드’를 방문해 K-팝, K-드라마 등 콘텐츠를 즐겼다.
본지 Cook&Chef에서 유셰프의 미식 칼럼, ‘더 에피큐리언 저니(The Epicurean Journey)’를 연재하고 있는 유영보 셰프 (슈발리에 아카데미 대표)는 데모크라시 프렙 공립학교 방문에서 한식 만들기를 통한 K-푸드 체험을 손수 진행 해 화제를 모았다. 4월 9일 일요일과 11일 화요일 총 이틀에 걸쳐 진행한 이번 행사를 통해 느꼈던 유영보 셰프의 소감을 지면으로 전해본다.
Q 행사의 의미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미국 내 K-컬처 열풍의 주역인 2005년생 Z세대들과 함께 한식을 만들고, 나누면서, 전반적인 우리나라 식문화를 논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행사였습니다. 처음에는 한식전문가나 요리학원을 놔두고, 어떻게 저에게 이런 의뢰가 들어왔을까 조금 의아했었는데요, 아마도 이 아이들의 정서와 눈높이에 맞춰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전문 셰프라서 그런게 아니었나 합니다.
사실 저도 십수 년 전에, 해외에서 이런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프렌치 양식조리사로 근무하던 시절, 대한민국 정부의 한식세계화 일환으로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한식 강사 과정 및 조리사 과정을 며칠 들었는데요, 마침 그때 제공된 교재가 집에 있길래 다시 한 번 훑어보았습니다. 재료 및 레시피가 굉장히 단순해서 좋았지만, 한 사람이 한 그릇씩 만드는 1인 조리법 보다는, 재난지역 구호활동이나 거리 페스티벌 같은 큰 행사에 적용할 수 있는 대용량 레시피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3시간도 채 안되는 짧은시간에 요알못(요리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효율적인 기술전수가 이루어 질 지 고민한 후, 저 나름의 실전교육 방식을 정했습니다.
Q 행사 진행 과정
자고로 주방이란 칼과 불을 다루는 위험한 공간입니다. 위생과 안전교육에 중점을 두고, 약간의 긴장감과 집중력을 위해 참가자 전원은 물론 함께 온 학교측 보호자(chaperone)와 행사운영도우미, 심지어 여행사 인솔자까지 모두 조리복으로 환복 시킨후 전원 수업에 동참시켜 마치 조리사들을 위한 사관학교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학습의 성공은 예습과 복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사 진행이 결정되자마자 학교측에 구체적인 강의계획서부터 보냈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미리 메뉴에 대한 배경설명과 레시피를 읽어올 수 있도록 학생용 영문 교육자료를 별도 제작하여 수업 전날 인솔자에게 미리 전달해 두었습니다. 또한 본국에 돌아가서도 이 짧은 요리수업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지속적으로 우리의 한식을 사랑해 달라는 의미에서 수업시간에 입었던 조리복을 집에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저희 슈발리에 아카데미가 지원했습니다.
Q 행사의 요리 실습내용
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던 음식은 비건잡채, 닭볶음탕, 모듬전이었는데요, 아이들의 취향과 종교식 등 특별 식습관을 반영한 메뉴였어요. 지역 특성상 무슬림 가정 아이들이 상당수 있어 모든 식자재는 종교식에 적합한 할랄프렌들리(Halal Friendly)로 준비했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아이들도 일부 있어서 잡채를 비롯한 밥, 국, 김치는 채식레시피에 기반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진지하게 잘 임해줬습니다. 물론, 본인들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잘 먹고 가 줘서 고마웠지요. 식사 시간은 파티 분위기었어요. 교육의 성과는 참가자들의 성과나 결과물로 평가된다는데,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가 성공적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개인적으로 뿌듯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식 입시교육을 받아본 학생들이라 그런지 수업 말미에 서로 오늘은 자기가 최고의 셰프였던것 같다며 저에게 점수와 등수를 매겨달라며 서열 정리를 요구하는 코믹한 진풍경도 펼쳐졌습니다.
Q 행사 진행 느낌
사실 교육 내용이나 조리 할당량이 많아 지루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살짝 놀랐어요. 아이들과 함께오신 교사분 중 한 분은 이 은헤를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다며, 뉴욕에 오면 꼭 연락을 달라 하셨고, 한국내 일정을 담당하신 대행사 대표님도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자기가 다 뿌듯해 진다며 감사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K-푸드 체험이라는 명목하에 미국 아이들과 한국식으로 밥 한끼 만들어서 먹고 헤어진 3시간 남짓의 짧은 여정이지만, 그 짧은 만남을 통해 우리는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어느새 K-컬처의 최고봉이라는 정(情)까지 들어버린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본 행사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한식 만들기 행사에 동참 해 주신 IGSE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한영통번역학과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마 이 분들이 없었다면, 이번 행사를 무사히 치루기 힘들었을 겁니다. 언어는 문화를 전파시키는 강력한 무기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행사 결과
캐나다 퀘백주(Quebec)는 북미 유일의 불어권 지역입니다. 북미에서 가장 유럽적인 치즈를 생산하는 곳으로도 유명하죠. 타지역에 비해 치즈의 내수율이 월등히 높으며, 주정부의 효자 수입원이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퀘백주는 치즈산업 육성을 위해, 프랑스에서 치즈전문가 몇 명을 영입해 지역 농민들에게 치즈 교육을 시켰습니다. 물론 이런 시도를 한 곳은 지구촌 곳곳에 많이 있었지만, 유독 퀘백에서만 기술의 전파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을 뿐 아니라, 디테일한 부분까지 프랑스 치즈와 똑같이 재생시켰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같은 언어에서 찾았어요. 보통 요리수업은 시연과 실습인데, 저는 영어로 강의하는 대신, 제 시연 부분을 과감히 줄이고 아이들의 실전 실습 시간을 확 늘렸습니다. 어차피 요리는 실전이니까요. 그리고 요리와는 무관하나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잘 알면서, 영어에 능통한 내국인 분들을 각 조에 편입시켰지요. 그 결과 모든 조에서 놀랍도록 짧은 시간안에 놀랍도록 훌륭한 한식이 뚝딱하고 탄생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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