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간장’의 정의… 식약처, 논란 속 “연내 행정 예고 예정”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6-02-05 11:06:46
식약처 “연구 용역 검토 중… 12월까지 개정안 마련 계획”
[Cook&Chef = 이경엽 기자] 지난 4일, ‘장류 식품공전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식약처의 식품공전 개정안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문을 발표하며 장류 분류 체계를 둘러싼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지가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기준과에 확인한 결과, 식약처는 현재 한국식품안전정보원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행정 예고를 마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식약처 “연구 결과 검토 단계… 연내 행정 예고 목표”
식약처 식품기준과 김혜정 연구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식품안전정보원의 연구 사업은 완료되었으나, 연구 결과를 그대로 개정에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검토 및 개정안 마련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특히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행정 예고 시점에 대해 김 연구원은 “유관 단체 및 업체들의 의견 수렴과 안 마련 과정에서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도 “올해 12월까지는 행정 예고를 진행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답해, 논란 속에서도 개정 절차를 강행할 의지를 내비쳤.
다만, 간장 분류 체계 개편과 관련된 구체적인 반영 여부에 대해서는 “정보원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긴 했으나, 현재 식약처 내부 검토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방향을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간장 분류 체계 개편은 표면적으로는 낡은 법규를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행정 절차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식품 산업의 구조, 전통과 효율성의 가치 충돌, 소비자의 알 권리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사안은 라벨의 문구 몇 개를 수정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국가가 법으로 공인하는 식품의 정의, 즉 ‘식품공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장 담그기’ 문화의 가치를 어떻게 인정할지에 대한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대다수 외식업체의 원가 구조와 K-푸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대한 기로다.
논란의 핵심: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 개정안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각 항목은 장류 산업의 지형을 바꿀 만한 휘발성을 내포한다.
첫째, 산분해간장의 지위 변경이다. 개정안은 현행 ‘장류’인 산분해간장과 효소분해간장을 ‘소스류’로 이관하고, 명칭을 ‘산분해 아미노산액’ 또는 ‘효소분해 아미노산액’으로 변경하는 안을 제안한다. 산분해간장은 콩 단백질을 염산으로 가수분해해 아미노산을 얻고, 이를 중화시켜 만든다.
전통 발효 방식과 달리 생산 기간이 2~3일에 불과하고 원가가 저렴해 시중 혼합간장의 주원료로 사용된다. 개정안의 논리는 ‘발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장류(fermented products)’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술적 타당성과 별개로 시장 파급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둘째, ‘명칭의 주객전도’를 바로잡는 문제다. 대책위는 기존의 ‘한식간장, 한식된장’ 등에서 ‘한식’이라는 수식어를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방식대로 만든 장이 ‘간장’, ‘된장’이라는 보통명사(고유명사)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애란 간장협회 이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들어온 일본식(개량식) 방식의 된장이 현재 ‘된장’이라는 이름을 차지하고, 오히려 우리 전통 된장이 ‘한식된장’이라며 별도의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상황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책위는 전통 장류는 ‘간장·된장’으로 명칭을 정상화하고, 전통 방식이 아닌 개량식 제조 방식(코지 등 사용)을 적용한 제품에 오히려 ‘양조’라는 수식어를 붙여 ‘양조된장’, ‘양조메주’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역설했다.
셋째, 혼합간장의 기준 부재다. 혼합간장은 양조간장(또는 한식간장)에 산분해간장을 혼합해 만든다. 문제는 발효간장의 최소 혼합 비율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발효간장 1%에 산분해간장 99%를 섞어도 합법적인 ‘혼합간장’으로 유통될 수 있다.
‘장류 식품공전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번 개정이 기형적 구조를 바로잡을 기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연구 보고서는 발효간장 최소 함량 기준 설정에 대해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실상 현행 유지를 제안했다. 이는 시장 왜곡을 방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대책위는 4일 성명서를 통해 식약처에 다음 6가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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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 6대 핵심 요구사항> 1. ‘한식간장·한식된장·한식메주’에서 ‘한식’ 삭제 2. 산분해간장의 ‘산분해’ 표기 유지 3. 혼합간장 발효간장 함량 50% 이상 기준 설정 4. 간장 제조기준에서 ‘중화’ 용어 삭제 5. 기타장류 유지 및 식품유형 ‘조청’ 신설 6. 혼합간장 혼합비율 주표시부 의무 표기 |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소비자 알 권리와 전통의 가치
대책위를 중심으로 한 전통 장류 업계와 소비자 단체는 강하게 반발한다. 이들은 개정안이 언어적 기만으로 소비자를 오도하고, 전통의 가치를 폄훼하며,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격렬한 반대는 산분해간장을 ‘아미노산액’으로 변경하려는 시도에 집중된다. ‘산분해’라는 용어는 화학적 공정을 연상시키며, 이 과정에서 발암가능물질 3-MCPD가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존재한다.
반면 ‘아미노산액’은 영양 성분처럼 인식될 수 있다. 이 용어 뒤에 염산과 가성소다의 화학 반응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소비자는 드물다. 대책위는 이를 소비자가 유해성을 인지하기 어려운 용어로 바꿔 표기하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꼼수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저가 혼합간장의 산분해간장 비율은 70~90%에 달하지만, 소비자들은 ‘진간장’ 등의 마케팅 용어 아래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구매해왔다. ‘아미노산액’으로의 명칭 변경은 정보 비대칭을 심화시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권을 박탈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혼합간장의 기준 부재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발효간장 함량이 최소 50%를 넘어야 ‘장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기준이 없다면 사실상 ‘산분해 아미노산액 조미료’가 ‘간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교란하는 현 상황이 고착화될 것이다. 이는 저품질 제품이 고품질 제품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외식업 현장의 딜레마: 원가와 품질 사이
이 논쟁은 외식 자영업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현재 대다수 대중 한식당에서는 원가 절감을 위해 18리터 대용량 업소용 혼합간장을 사용한다. 전통 한식간장이나 100% 양조간장 대비 가격이 1/3~1/4 수준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책위 요구대로 혼합간장의 발효간장 비율이 50% 이상으로 의무화되면 간장 가격은 급등할 것이다. 가령 갈비탕 한 그릇의 간장 원가가 100원에서 300원으로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하루 100그릇 판매 시 월 6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상당한 부담이며, 메뉴 가격 500원~1000원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개정안 원안대로 산분해간장이 ‘아미노산액’으로 표기되고, 식당에서 주요 원료 표기가 의무화된다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본 업소는 아미노산액을 사용합니다’라는 표기는 소비자에게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으며, 식당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결국 외식업계는 ‘원가 상승’과 ‘품질 논란’이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서울의 한 식당 업주는 “8000원짜리 김치찌개에 6개월 숙성 간장을 기대하는 손님은 없지만, 화학간장을 쓴다고 하면 외면할 것”이라며 “가격을 올릴 수도, 비싼 간장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딜레마는 장기적으로 외식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K-푸드의 갈림길: 한식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번 논란은 K-푸드의 미래와도 연결된다. 전 세계가 한식의 발효 과학에 주목하는 지금, 무엇을 ‘진정한 한식의 맛’으로 소개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일본은 ‘쇼유(醤油)’에 대해 엄격한 JAS(Japanese Agricultural Standard) 규격을 적용한다. 100% 발효로 만든 ‘본양조(本醸造)’, 아미노산액을 소량 첨가한 ‘혼합양조(混合醸造)’, 양조간장에 아미노산액을 섞은 ‘혼합(混合)’으로 명확히 구분한다. 산분해 아미노산액 자체는 ‘쇼유’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만약 ‘Korean Soy Sauce’라는 이름으로 산분해간장 함량이 90% 이상인 제품을 주력으로 수출한다면, 한식이 가진 ‘발효의 철학’이라는 핵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이는 K-푸드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를 저하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한식의 세계화는 레시피 전파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정직함을 함께 전달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품공전의 장류 기준은 한식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헌법’과 같다. 단기적인 산업 효율성과 원가 절감의 논리에 밀려 이 기준이 흔들린다면, 어렵게 쌓은 K-푸드의 명성이 훼손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장류 식품공전 개정안은 단순한 기준 변경을 넘어 한국 식문화의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중대 분기점이다. 이 논의를 통해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 전통의 가치 계승, 외식 산업과의 상생 해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요구된다. 간장 한 방울에 담긴 이 질문에 우리 사회가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밥상의 품격과 한식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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