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세계를 사로잡다…K-푸드로 증명한 외교의 정수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 2025-11-03 17:04:23
K-푸드로 보여준 한국만의 소프트 파워
[Cook&Chef = 송채연 기자] 지난 1일 막을 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K-푸드’가 외교의 새로운 언어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으로 평가된다. 특히 나물비빔밥, 갈비찜, 된장캐러멜 인절미로 구성된 만찬 메뉴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한식의 품격과 철학이 담긴 외교의 무대였다.
한식의 정수를 담은 식탁, ‘한국의 가을’을 맛보다
이번 만찬의 총괄 셰프는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Edward Lee). 그는 경주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한식의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전채요리는 애호박과 당근, 표고버섯을 넣은 밀쌈과 오이선, 마채소 무쌈, 단감 잣소스를 곁들인 게살 샐러드로 가볍게 시작됐다.
이어진 메인 코스는 완도 전복과 조랭이떡을 곁들인 경주 한우 갈비찜, 곤달비 나물 비빔밥, 경주 콩 순두부탕이었다. 디저트로는 된장캐러멜 인절미와 구운 잣 파이, 지리산 국화차가 제공돼 세계 정상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환영 인사에서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APEC의 조화와 협력이 만파식적의 화음처럼 울리길 바란다”며 건배주 ‘호랑이 유자 생막걸리’를 들어 올렸다.
황남빵·떡볶이·치킨…K-푸드가 만든 외교의 장
이번 APEC은 단순한 정상회의가 아닌 K-푸드의 세계 진출 무대였다. 공식 만찬 외에도 국제미디어센터 앞 ‘K-Food Station’에서는 농심, CJ, 교촌치킨, 파리바게뜨, 청년다방 등 국내 대표 브랜드들이 참여해 세계 각국 기자단과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맛을 직접 선보였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황남빵이 인상 깊었다”고 언급한 이후, 경주의 황남빵 매장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떡볶이와 농심의 신라면, 교촌치킨의 푸드트럭, 파리바게뜨의 약과 티그레까지 경주는 며칠간 ‘한식의 수도’로 변했다.
젠슨 황의 ‘치맥 외교’, 세계가 주목하다
APEC 기간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인물은 단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였다. 그는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치맥 회동’을 가지며 “한국 치킨은 세계 최고”라고 외쳤다.
그 한마디는 CNN 등 해외 주요 언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SNS에서는 ‘Chimaek(치맥)’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트렌드 상위권에 올랐다. 이어 그는 빙그레 바나나 우유를 직접 나눠주며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그가 들고 있던 노란 병 하나가 전 세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며, 한국 식품 브랜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젠슨 황의 한 끼 식사가 치킨과 바나나 우유를 글로벌 아이콘으로 만들었다”며 “그야말로 한 끼가 이끈 미식 외교였다”고 평가했다.
된장캐러멜 한 조각이 전한 메시지
이번 APEC을 통해 한식은 단순한 ‘국가의 음식’이 아닌 문화와 기술, 스토리가 결합된 소프트파워로 재조명됐다. 비빔밥 한 그릇, 치맥 한 잔, 그리고 된장캐러멜 한 조각이 보여준 것은 ‘맛’ 이상의 가치, 즉 문화와 교감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K-푸드가 외교의 새로운 주역임을 보여준 사례”라며 “경주에서 시작된 한식의 향기가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가을을 담은 식탁, 그리고 세계 정상들의 미소. 이번 APEC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마도, 말보다 따뜻한 한 숟갈의 힘이었다.
Cook&Chef /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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