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 바쁜 시대가 사랑한 조용한 요리사

정서윤 기자

cnc02@hnf.or.kr | 2026-05-18 17:33:02

보여주기보다 오래 지켜온 자기 일의 힘 출처 : 냉장고를 부탁해

[Cook&Chef = 정서윤 기자] 요즘은 무엇이든 빨리 보여줘야 하는 시대다. 인기가 생기면 곧장 다음 행보를 내놓아야 하고, 관심이 몰리면 더 크게 말해야 하며,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빠르게 노출해야 한다. 실력만큼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는지가 중요해졌고, 때로는 본업보다 노출의 속도가 더 큰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 시대에 최강록 셰프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랑받는다. 그는 자신을 크게 포장하지 않는다. 말은 빠르지 않고, 방송 앞에서 능숙하게 장면을 장악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오래 바라본다. 조용히 있다가도 음식 앞에서는 기준이 선명해지고, 큰 결과 앞에서도 자기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최강록의 매력은 그 대비에서 시작된다.

그를 두 번의 우승자로만 정리하면 부족하다. 2013년 <마스터셰프 코리아2> 우승, 2025~2026년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 우승은 분명 대단한 결과다. 그러나 최강록이라는 사람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결과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그는 우승 앞에서도 자신을 과장하지 않았고, 인기가 몰려와도 자기 속도를 함부로 바꾸지 않았다.

그가 <마스터셰프 코리아2> 우승 직후 남긴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평생 요리하면서 살 거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까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다.” 이 한 문장에는 최강록이라는 사람의 중심이 들어 있다. 우승은 그에게 삶의 결론이 아니라, 다시 요리할 힘을 얻은 사건이었다. 바쁜 시대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서부터 읽힌다. 그는 보여지는 결과보다, 오래 지속해야 할 자기 일을 먼저 본다.


진짜인지 묻게 한 시간

최강록의 요리 인생 시작에는 우연과 흔들림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음악을 꿈꿨고, 밴드 활동을 했다. 대학가요제를 바라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음악 입시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스페인어학과에 진학한 대학 생활도 이어지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시기에는 해병대에 자진 입대했다.

요리도 처음부터 거창한 선언으로 찾아온 일이 아니었다. 전역 후 그는 드럼과 미디 장비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돈가스집과 일식집에서 일했다. 음악을 계속하기 위한 생계의 자리가 주방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음식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미스터 초밥왕>을 보며 초밥에 끌렸고, 스시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뒤 스물네 살에 캘리포니아롤을 내세운 가게를 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 청년이 만화를 계기로 요리에 빠져든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식당은 만화 속 장면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동업은 어려웠고, 경험은 부족했다. 회전초밥집을 운영할 때도 손님들은 생각보다 음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맛만 묻지 않았다. 그의 경력과 출신을 물었고, 그 질문 앞에서 최강록은 자신이 내는 음식이 정말 진짜인지 되묻게 됐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그는 실패를 회피하지 않았다. 자기 음식이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느꼈고, 그 질문은 바로 일본 유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도쿄에서 일본어를 익히고, 츠지조리사전문학교에서 기본기부터 다시 배웠다. 이미 가게를 해본 사람이 다시 학생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자존심보다 요리가 앞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이후의 시간이 곧장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귀국 후 일본요리 아카데미에서 일했고, 다시 일본식 반찬가게를 열었지만 큰 적자를 보고 문을 닫았다. 요리를 배웠고, 현장도 겪었고, 다시 도전했는데도 또 한 번 무너졌다. 그래서 이 실패는 그의 서사를 더 깊게 만든다. 최강록은 한 번의 성공이 있어서 요리를 붙든 사람이 아니다. 요리 안에서도 여러 번 무너졌고, 그럼에도 음식을 향해 걸어간 사람이다.

요리에서 멀어진 듯 보였던 참치 무역회사 시절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주방 밖으로 물러난 시간처럼 보였지만, 그의 안에는 이전의 경험들이이 남아 있었다. 술김에 냈다는 <마스터셰프 코리아2> 지원서는 그저 우연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그 우연을 가능하게 한 것은 초밥집의 실패, 일본 유학, 반찬가게의 적자, 일식에 대한 공부였다. 즉 실패했던 시간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그의 손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출처 : 냉장고를 부탁해

조용해 보이지만 좁지 않은 사람

최강록은 대중에게 어눌하고 내향적인 이미지로 기억된다. 설명하다가 멈추고, 다시 고치는 모습은 그를 독특한 캐릭터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 안에만 그를 가두면, 실제로 그가 지나온 음식의 폭을 놓치게 된다.

그는 식당네오를 운영했고, 136길 육미에도 참여했다. 양재동 소바 전문점 미우야에서는 메뉴 개발에 관여했고,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작업에도 함께했다. 메이필드 호텔스쿨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브랜드 작업에도 발을 들였다. 식당 운영, 교육, 메뉴 개발, 호텔, 브랜드 참여까지 그의 활동은 한 가지 형태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넓은 이력이 산만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중심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여러 영역을 오갔지만 자신을 음식 바깥으로 크게 확장하지 않았다. 식당을 하든, 학생을 가르치든, 메뉴를 개발하든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요리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이 점에서 최강록 셰프의 진가를 볼 수 있다. 말로 자신을 크게 설명하지 않을 뿐, 그 안에는 식당의 실패와 운영, 교육의 경험, 메뉴 개발의 감각, 호텔과 브랜드의 현장이 함께 들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은 적지만, 요리라는 일 안에서 지나온 폭은 넓다. 그래서 그의 조용함은 빈자리가 아니라 축적이라 바라 볼 수 있다.


인기 앞에서 더 드러난 기준

최강록의 태도가 가장 선명하게 보인 순간은 인기가 몰려왔을 때다. <흑백요리사> 시즌1 이후 그는 큰 화제성을 얻었다. 많은 출연자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자신을 알리던 시기였다. 대중은 그를 더 보고 싶어 했고, 그의 음식을 먹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그 흐름을 빠르게 타지 않았다.

오래 운영하던 유튜브는 멈췄고, 식당네오 역시 2024년 말 영업을 종료했다. 그의 책 판매량이 크게 올랐을 때도 비슷했다. 출판사에서 사인회를 추진하려 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장면들은 따로 놓인 에피소드가 아니다. 관심이 커졌지만, 그 관심이 곧바로 최강록의 속도를 바꾸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본다.

그래서 “물 들어올 때 노를 버린 셰프”라는 말이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행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용함은 기회를 모르는 사람의 태도로만 읽히지 않는다. 최강록은 물살이 얼마나 센지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식당을 연다는 일이 어떤 기대를 감당해야 하는지, 이름을 걸고 음식을 낸다는 일이 어떤 책임을 동반하는지 알고 있다.

<흑백요리사2>에서 다시 우승한 뒤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유명 요리 경연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다면 광고, 방송, 협업, 매장 오픈까지 수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식당을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는 당장 식당을 열지 않았다. “너무 많은 기대감은 충족시킬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은 그가 왜 물러나 있는지를 설명한다.

방송에 대한 태도도 같다. 그는 “전 전문 방송인이 아니다. 제가 쓰임이 있을 때, 잠깐 잠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최강록이라는 사람을 잘 보여준다. 그는 관심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먼저 살핀다. 바쁜 시대의 흐름은 “지금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지금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 차이가 최강록의 조용함을 약함이 아니라 기준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는 대중의 기대를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크게 의식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 식당은 화제성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음식을 내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최강록 셰프 SNS

조림을 내려놓은 결승의 선택

최강록을 대표하는 조리법은 오래도록 조림이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2>에서 그는 닭날개 고추장조림, 항정살 조림, 장어 조림 등을 선보였고, 강레오 심사위원이 “또 조려요?”라고 말할 정도로 조림은 그의 이름과 붙어 다녔다. 이후 ‘조림핑’, ‘연쇄 조림마’, ‘조림 인간’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조림이 최강록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조리법 자체에 있다. 조림은 빠르게 끝나는 음식이 아니다. 시간과 온도, 간과 기다림이 맞물려야 한다. 그가 “요리는 시간과 귀찮음이 만든 예술”이라고 말했을 때, 그 문장은 조림의 설명이면서 동시에 최강록의 태도를 설명하는 말이 됐다. 오래 걸리고, 손이 가고, 기다려야 완성되는 방식. 그의 음식과 행보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그런데 <흑백요리사2> 결승에서 그는 조림을 하지 않았다. 결승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였다. 모두가 그의 조림을 예상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는 깨두부를 곁들인 국물 요리와 빨간뚜껑 소주를 냈다. 이 선택이 중요했던 이유는 그가 가장 잘 알려진 이미지를 반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나를 위한 요리에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조림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에게 붙은 이름이 어떤 기대와 부담이 되었는지 솔직하게 꺼낸 말이다. 대중이 원하는 최강록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위한 요리에서까지 그 이미지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가 대신 고른 깨두부는 “게을러지지 말자”는 다짐 같은 음식이었다. 그는 “깨두부는 나에게 ‘게을러지지 말자’는 뜻이다”라고 했다. 나이가 들며 힘든 작업을 메뉴에서 빼는 자신을 보았고, 아직 더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는 설명도 남겼다. 오래 저어야 하고, 손이 많이 가고, 결과보다 과정이 더 고된 음식. 결승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그는 더 화려해 보이는 메뉴가 아니라, 자신을 다시 점검하게 하는 음식을 냈다.

이 장면은 앞선 모든 이야기와 연결된다. 실패 뒤에도 다시 배운 사람, 우승 뒤에도 자신을 키우려 하지 않은 사람, 인기가 몰려와도 기준을 먼저 본 사람은 결승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는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반복하기보다, 요리사로서 자신이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을 음식으로 꺼냈다.


요리사라는 이름으로 돌아가는 사람

최강록의 말투는 빠르지 않다. 문장은 자주 멈추고, 설명은 한 번에 정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말은 오래 남는다. “나야, 들기름”, “나야, 재도전”, “근데 이제 바질을 곁들인”, “저는 조림인간입니다” 같은 표현들은 잘 만든 유행어가 아니라, 그가 말하다 남긴 결처럼 퍼졌다.

그는 멋지게 말하려다 멈추고, 다시 고치고, 부족한 문장 위에 설명을 느릿하게 덧댄다. 그런데 그 빈칸이 진심처럼 읽힌다. 자신을 잘 팔지는 못하지만, 자기 일을 속이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진심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가 ‘셰프’보다 ‘요리사’로 불리고 싶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 자신을 떠올릴 때 “최강록은 요리사였어” 정도면 좋겠다는 말은 그의 모든 선택을 정리해준다. 우승자, 방송인, 밈의 주인공, 조림 인간이라는 이름이 모두 지나간 뒤에도 그가 남기고 싶은 것은 요리사라는 이름이다.

그래서 최강록은 바쁜 시대가 사랑한 조용한 요리사다. 조용해서 약한 사람이 아니라, 조용하기 때문에 더 선명해진 사람이다. 보여주기보다 오래 지켜온 자기 일이 있고, 말보다 음식으로 확인해온 시간이 있다. 세상이 자꾸 더 빠르고 큰 것을 요구할 때, 그는 자기 속도와 기준 안에서 요리사로 남는 법을 보여준다.

최강록은 자신을 자랑하듯 내보이지 않는다. 다만 실패 이후에도 다시 배우고, 인기가 몰려와도 기준을 살피고, 고된 과정을 피하려는 자신을 다시 붙잡는다. 그 조용하고 강건한 태도가 지금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힘처럼 다가온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최강록은 오래 지켜온 자기 일이 결국 사람을 가장 멀리 데려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요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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