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인문학] 우리는 왜 술을 ‘술’이라 부를까

신현우 기자

cnc02@hnf.or.kr | 2026-08-14 15:05:41

물속에서 불이 일어난다? ‘술’과 ‘酒’에 담긴 오래된 이야기

[Cook&Chef = 신현우 기자] 술을 빚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술독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술항아리에서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 / 사진 = 신현우 기자

쌀, 누룩, 물을 섞어놓았을 뿐인데 며칠이 지나면 작은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귀를 가까이 대면 보글보글 소리가 나기도 하고, 손을 대보면 처음보다 따뜻해져 있다. 아무도 불을 지피지 않았는데 술독 안에서는 스스로 열이 난다.

옛사람들은 이 모습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오늘날 우리는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발효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발효의 원리를 알지 못하던 시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물속에서 거품이 일고 열까지 생기니, 마치 물 안에서 불이 살아나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여기서 술의 재미있는 어원설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수불’이다.

물을 뜻하는 ‘수(水)’와 불이 합쳐져 ‘수불’, 또는 ‘수블’이라 불렸고 이것이 오랜 시간을 지나며 ‘수울’, ‘수을’을 거쳐 오늘날의 ‘술’이 됐다는 이야기다.

수불 → 수블 → 수울 → 수을 → 술

소리 내어 천천히 읽어보면 묘하게 이어지는 느낌도 있다.

특히 직접 술을 빚어보면 이 설명이 제법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가만히 있던 술덧이 어느 순간 부풀어 오르고 거품을 내며 따뜻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술독 안에서 작은 불씨라도 피어오르는 듯하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수불’이 술의 확정된 어원은 아니다.

술이라는 말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고, 지금까지도 하나의 설로 명확하게 정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술은 물과 불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옛사람들이 발효를 바라본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흥미로운 어원설 가운데 하나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자로 쓰는 酒(술 주)’는 어떨까.

‘酒(술 주)’를 자세히 보면 조금 더 재미있다.

왼쪽에는 물을 뜻하는 ‘氵’, 흔히 말하는 삼수변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酉(유)’가 붙어 있다.

酉라고 하면 가장 먼저 ‘닭 유’를 떠올리기 쉽다. 십이지에서 닭을 나타내는 글자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자의 처음 모습은 닭과는 관계가 없었다.

맑은 술을 떠내는 데 사용된 용수 / 사진 = 신현우 기자

고대 문자에서 酉(유)는 술을 담던 항아리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본다. 갑골문 속 酉(유)를 보면 입구가 좁고 몸통이 불룩한 술항아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전통주에서는 술이 익으면 술독 한가운데 ‘용수’라는 원통형 도구를 박아 맑은 술이 안으로 스며들게 한 뒤 떠냈다. 이에 酉(유)의 자형을 용수가 박힌 술독의 모습과 연결해 보는 설이다. 물론 고대의 酉(유)가 실제로 용수를 표현한 글자였다고 입증된 것은 아니다. 다만 술항아리와 그 안에 자리한 형태를 바라보면,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얻어내던 옛 양조의 풍경을 떠올려볼 수 있다. 처음 술그릇을 뜻했던 酉는 술 자체를 나타내기도 했으며, 이후 지지(地支)의 열째 글자로 빌려 쓰이면서 십이지에서 닭을 가리키게 됐다.

여기에 물이나 액체를 뜻하는 ‘氵(삼수변)’가 더해진 것이 酒(술 주)다.

말 그대로 글자만 놓고 보면 ‘술이 담긴 항아리와 그 안의 액체’가 한 글자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중국 후한 시대 허신이 지은 자전 『설문해자』에서도 酒(술 주)는 물을 뜻하는 水(물 수)와 酉(유)가 합쳐진 글자로 설명된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도 술을 이야기하기 위해 ‘물’과 ‘술단지’를 글자 안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말 ‘술’에 물속에서 불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있다면, 한자 ‘酒(술 주)’에는 술을 담아두던 오래된 항아리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하나는 발효하는 술독의 움직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다른 하나는 술을 담아두던 그릇의 모습에서 글자가 시작된다.

오늘 우리는 술을 완성된 상품으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을 열고 잔에 따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술’과 ‘酒(술 주)’라는 이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술은 처음부터 병 속에 있지 않았다.

곡식을 익히고, 누룩을 섞고, 물을 붓고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날 술독에서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 변화를 지켜봤을 것이다. 술이 익기를 기다리고, 완성된 술을 항아리에 담아두고, 다시 사람들과 나눠 마셨다.

결국 술이라는 이름 속에는 마시는 시간보다 훨씬 긴 ‘기다림의 시간’이 들어 있다.

오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술 한잔하자”라는 한마디도 어쩌면 수천 년 동안 술을 빚고 바라보고 기다려온 사람들의 시간 위에 놓여 있는 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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