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란 아드리아, 요리의 경계를 넘어 예술과 지식의 연금술사로

이준민 기자

cnc02@hnf.or.kr | 2025-10-27 21:01:49

엘 불리의 신화, 넷플릭스 시리즈로 부활하다, 2025년 말~2026년 초 촬영 예정
요리인가, 예술인가? 독일 도쿠멘타 아트쇼 참여로 촉발된 예술계 논쟁
한식의 미래를 묻다, 10월말 서울 삼청각에서 예정된 글로벌 푸드 컨퍼런스
사진=Variety(variety.com)

[Cook&Chef = 이준민 기자] 세계 미식의 역사를 바꾼 혁명가,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à)가 다시 한번 활동의 보폭을 넓히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설적인 레스토랑 ‘엘 불리(elBulli)’의 문을 닫은 지 14년이 지났지만, 그의 영향력은 요리계를 넘어 예술, 학문, 그리고 이제는 OTT 플랫폼에까지 미치고 있다.

엘 불리의 전설, 스크린에서 되살아나다

2025년 9월 보도에 따르면, 페란 아드리아의 삶과 엘 불리의 혁신을 담은 6부작 드라마 시리즈 제작 소식이 발표되며 미식계는 다시 한번 들썩였다. 바르셀로나에 기반을 둔 카탈루냐 공영 방송사 3Cat이 제작을 주도하고, 넷플릭스가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배급권을 획득한 이 프로젝트는 2025년 말에서 2026년 초 촬영이 예정되어 있다.

이 시리즈는 1983년 인턴으로 엘 불리에 합류하여 1986년 수석 셰프로 성장하기까지, 그리고 분자 요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반열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극적으로 담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하루 15시간, 1년에 330일을 일하며 요리에 매진했던 그의 개인적 노력과, 그 과정에서 얻은 명성과 존경, 그리고 동시에 경쟁과 갈등이 고스란히 그려질 예정이다.

제작사 측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감 넘치는 스토리에 요리라는 매력적인 테마가 더해져 다양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것”이라며, 드라마 ‘더 베어(The Bear)’의 긴장감과 영화 ‘토스카나(Toscana)’의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한 셰프의 성공 신화를 넘어, 혁신이 탄생하는 과정의 고뇌와 열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 될 것이다.

예술계에 던진 출사표, 요리의 본질을 묻다

페란 아드리아의 행보는 단순히 요리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2007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전 ‘도쿠멘타(Documenta)’에 참여하며 예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스페인 예술계는 이를 두고 “예술의 평범화”라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아드리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물론 나는 피카소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많은 사람들이 내가 참여하는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내 작업을 예술이라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물론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덧붙이며, 장르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의 철학을 분명히 했다. 이는 요리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기술을 넘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철학을 담아내는 예술적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오랜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그의 도발적인 질문은 오늘날 예술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던지며, 요리의 문화적·예술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식의 전파자, 한식의 미래를 조망하다

혁신의 아이콘인 페란 아드리아는 이제 지식의 체계화와 전파에 힘쓰고 있다. 그는 2013년 ‘엘 불리 재단(elBullifoundation)’을 설립하여 요리의 역사, 기술, 창의성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옛 레스토랑 부지에 박물관 ‘elBulli1846’을 개관하여 자신의 유산을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에 따르면, 그는 2025년 10월 29일 서울 삼청각에서 예정된 ‘한식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할 예정이며, ‘미식의 미래를 설계하다’와 ‘미식의 창조적 도약’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준비 중이다.

이번 한국 방문은 그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분자 요리의 창시자가 바라보는 한식의 잠재력과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그의 통찰력 있는 분석에 국내외 미식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진공조리법 등 최첨단 기술과 재료를 동원하는 ‘분자요리’를 선보인 선구자로서, 조리할 때 원심분리기 같은 과학 실험 도구를 사용하거나 액화 질소로 진기한 식감의 디저트를 만드는 등, 20년 전에는 완전한 파격으로 여겨졌던 혁신을 주도했다.

사진=elbullifoundation(elbullifoundation.com)

엘 불리 재단의 지속적인 연구 활동

엘 불리 재단은 현재 하버드 대학교와의 ‘과학과 요리(Science and Cooking)’ 협력, 텔레포니카와의 ‘Ideas4Transformation’ 프로젝트 등 다양한 교육 및 연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Bullipedia’ 프로젝트를 통해 요리 지식의 디지털화와 체계화에 힘쓰고 있으며, 이는 미래 세대의 요리사들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또한 재단은 디지털 유산화와 가상 전시 플랫폼 개발 등 기술 융합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페란 아드리아는 이제 단순히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셰프를 넘어,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지식을 창조하고, 예술적 영감을 주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연금술사’로 진화하고 있다. 그의 한국 방문과 함께 아시아 미식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기대된다.

Cook&Chef / 이준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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