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의 기준점, ‘국립 한식 아카데미’ 설립이 답이다”... 국회서 3시간의 뜨거운 토론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6-02-06 23:59:30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 모델 벤치마킹... 한식의 철학과 표준 정의할 ‘컨트롤 타워’ 시급
박미영 이사장 “단순 요리 교육 넘어 한식 정체성 확립과 글로벌 트레이너 양성 주력해야”
정혜경·김경은·오세미나·최지아 등 분야별 전문가들 ‘디지털·관광·농업 융합’ 한목소리
[Cook&Chef = 이경엽 기자] “이제는 단순히 한식을 알리는 단계를 넘어, 전 세계에 한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 2월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한식의 세계화, K-푸드가 이끄는 국가 경쟁력>의 공기는 뜨거웠다. 3시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정·관계 전문가들과 미식 업계 관계자들은 한식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가 대표 교육 기관’ 설립의 당위성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번 포럼의 핵심 화두는 단연 ‘국립 한식 아카데미’의 설립이었다.
이날 행사는 이기헌(문화체육관광위), 문금주(농해수위), 김준혁(교육위), 정을호(교육위)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사단법인 문화강국네트워크(이사장 이우종)와 재단법인 한국음식문화재단(이사장 박미영)이 공동 주관하여, 상임위원회의 벽을 허물고 한식 산업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댄 자리였다. 사회는 김효선 아나운서가 맡아 진행했다.
"밥심이 곧 국력"... 정·관계, 한식 산업화에 힘 싣다
포럼의 포문을 연 것은 이우종 문화강국네트워크 이사장이었다. 이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오늘날 K-컬처를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밥심’ 아닐까 생각한다”며 한식의 문화적 힘을 강조했다. 그는 “문화예술과 한식이 서로 긍정적인 선순환 작용을 하고 있지만, 각종 규제나 법규가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는 점도 있다”며 “이번 토론회가 그런 정합성을 맞춰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축사에 나선 이기헌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은 자신의 평양냉면 경험담을 예로 들며 ‘국제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의원은 “2006년과 2018년 평양 옥류관 냉면 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시대와 트렌드에 맞춰 변화한 것”이라며 “한식 세계화의 핵심은 국제화다. 한국 음식 그 자체로만 승부하기보다 세계적 미식 트렌드와 결합해 발전해야 상업성과 정체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농산물 수출, 콘텐츠 산업과 연계해 한식이 글로벌 스탠다드 이상의 가치로 인정받도록 문체위 차원에서도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현장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공동 주최자인 문금주, 김준혁, 정을호 의원과 조규일 진주시장도 축전을 통해 힘을 보탰다. 조규일 시장은 사회자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한식은 고유한 식문화와 가치를 바탕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중요한 문화자산”이라며 “이번 포럼을 통해 한식의 경쟁력을 높일 실질적인 정책 대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기조연설 : "한식 세계화 20년, 이제는 지속 가능성을 고민할 때"
기조연설을 맡은 정혜경 호서대 명예교수는 ‘지속 가능한 K-푸드의 세계화 방안 모색’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2008년 한식 세계화 선포식부터 2026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짚으며, 현재의 화려한 성공 이면에 가려진 ‘전통 한식의 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교수는 “현재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K-푸드는 파인 다이닝부터 떡볶이, 치킨, 라면 같은 가공식품까지 스펙트럼이 넓어졌지만, 정작 우리 전통 식문화에 대한 연구와 원형 보존은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전략으로 ▲전통 식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건강과 환경을 중시하는 한식 가치의 재발견 ▲콘텐츠와의 융합을 꼽았다. 특히 정 교수는 “한식 교육 기관 설립과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 구축이 필수적”이라며 “대기업이나 파인 다이닝은 이미 잘하고 있으니, 정부 정책은 소규모 생산자, 전통 식품 보호, 영세 외식 자영업자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라학교? 민간 위탁? 안 된다... ‘국립 한식 아카데미’가 정답"
이날 포럼의 하이라이트는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의 ‘국립 한식 아카데미 설립 필요성’ 발표였다. 박 이사장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수라학교(가칭)’ 설립 계획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며, 보다 체계적이고 국가가 보증하는 교육 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이사장은 “20년 전부터 국립 한식 아카데미 설립을 주장해왔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수라학교’ 구상은 환영할 일이나, 그 명칭과 운영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수라(임금님 밥상)라는 명칭은 한식의 보편성과 대중성을 제한하는 권위적인 이름이며, 이를 민간에 위탁 운영하겠다는 발상은 과거 전주 국제한식조리학교의 실패를 답습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대안으로 박 이사장은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이탈리아의 알마(ALMA)와 같은 ‘글로벌 표준 요리 학교’ 모델을 제시했다.
박 이사장은 “이들 학교의 졸업장은 그 자체로 해당 국가 요리의 전문성을 보증하는 수표가 된다”며 “우리도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된 커리큘럼과 엄격한 기준을 가진 ‘국립 한식 아카데미’를 설립해, 이곳을 졸업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한식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표준화를 통한 조리법과 철학의 기준 정립 ▲외국인과 내국인이 함께 배우는 개방형 전문 교육 구조 ▲교육-산업-문화를 연결하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제안했다. 특히 지방 거점과 연계한 ‘허브 호텔(기숙형 실습 공간)’ 개념을 도입해 유학생들이 장기 체류하며 식재료 생산부터 조리까지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K-푸드에 블록체인 입히자"... 파격적인 생태계 전략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경은 한식문화연구소 소장은 ‘K-푸드 정책 개선을 위한 현실적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며, 한식의 산업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김 소장은 “일식은 ‘젠 스타일’, 중식은 ‘불맛’과 ‘붉은색’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이 있지만, 한식은 아직 통일된 캐릭터나 시각적 정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식의 차별화 요소로 ‘계절별 식기(유기, 사기)’와 ‘한상차림(덤 문화)’을 꼽으며 이를 스토리텔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디지털 금융과의 결합 제안이었다. 김 소장은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K-푸드, K-뷰티, K-메디컬을 아우르는 ‘K-라이프’ 생태계 안에서 편리하게 소비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서울, 부산, 제주 등 주요 도시에서 시범 사업을 통해 한식 소비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AI 맞춤형 관광 코스 추천과 연계한다면 한식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국가 기간 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김 소장은 한식진흥원의 역할 재정립을 주문하며 “현재 농식품부 산하에 있는 한식진흥원을 문체부로 이관하거나 범부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해, 단순 행사 위주가 아닌 R&D와 한식 펀더멘털 연구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빔밥은 섞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문화... 미식 관광이 견인차"
세 번째 발제자인 오세미나 전북대학교 무형유산정보연구소 연구교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관점에서 한식을 조명했다. 오 교수는 “유네스코 관점에서 음식은 상품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과 지식, 실천”이라며 “한식을 ‘잘 팔리는 상품’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어떤 문화로 설명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태국의 ‘타이 셀렉트(Thai Select)’ 인증 제도를 예로 들며 “태국은 인증에 앞서 ‘태국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화적 정의를 먼저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빔밥 역시 단순한 메뉴가 아니라 제철 재료를 활용하고, 이웃과 나누며, 남은 음식을 재활용하는 지혜가 담긴 ‘문화적 실천’으로 설명될 때 세계인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지막 발제를 맡은 **최지아 한국미식관광협회 부회장(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은 ‘미식 관광이 견인하는 한식 세계화’를 주제로 현장의 생생한 흐름을 전했다. 최 부회장은 “최근 방한하는 외국인들은 2천만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의 김밥 먹방을 보고 성지순례를 온다”며 미디어와 ‘테이스트 메이커(Taste Maker)’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불고기, 비빔밥에 국한되었던 관심이 이제는 ‘집밥’, ‘나물’, ‘김치 담그기’ 체험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미식 관광을 위해서는 프리미엄 서비스 교육과 함께, 파전이 에피타이저인지 간식인지조차 헷갈려 하는 외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정교한 교육 프로그램 설계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탁상공론 멈추고 현장의 목소리 담아야"
주제 발표 후 이어진 종합 토론은 김태희 경희대 호스피탈리티경영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토론에는 기조연설자와 발제자들 외에 ‘글 쓰는 셰프’로 유명한 박찬일 셰프와 맹명관 마케팅 아카데미 총괄 교수가 패널로 합류해 열기를 더했다.
박찬일 셰프는 현장 요리사의 시각에서 정부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한다는 ‘수라학교’라는 명칭부터가 퇴행적”이라며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사업인데, 과연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박 셰프는 “지금 미쉐린 스타를 받은 해외 셰프들이나 국내 젊은 셰프들조차 제대로 된 장 담그기, 김치 담그기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 서양 조리법은 학교에서 배우지만, 정작 한식의 핵심인 발효와 기초 조리법은 독학이나 도제식으로 배우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국립 한식 아카데미가 생긴다면 거창한 이론보다는 현장 셰프들이 목말라하는 실무 기술과 전통 지식을 전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장을 맡은 김태희 교수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오늘 논의된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커리큘럼)’와 ‘누가 가르칠 것인가(교수진)’가 핵심”이라며 “표준화된 레시피를 넘어 인문학적 가치, 식재료에 대한 이해(농업과의 연계), 과학적 조리 원리가 융합된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김경은 소장은 추가 발언을 통해 “과거 수백억 원이 투입된 전주 국제한식조리학교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 보고서 하나 없이 또다시 민간 위탁 방식의 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다”며 국가 주도의 책임 있는 운영을 재차 강조했다.
박미영 이사장 역시 “요리 학원에서 샐러리를 배추라고 가르치는 게 현실”이라며 “국립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며 식재료의 소중함부터 배우는 근본적인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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