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CIOUS> 홍대의 특별한 술집, 무탁

김형종

cooknchef@daum.net | 2017-12-04 00:28:30

무탁務倬에 들면


홍대 상상마당 근방은 일 년 내내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다. 카페와 술집, 식당, 온갖 상점들이 골목 곳곳을 채우고 있기도 하다. 그곳 가운데 작지만 특별한 술집이 있다.

 
이런 곳에 술집이 있다고? 처음 방문하게 된다면 그런 건물에 술집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면 누군가 일부러 숨겨 놓은 듯 거짓말처럼 ‘무탁’은 거기 있다. 호그와트행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 9와 3/4 기둥을 통과하던 해리포터 일행이 된 기분이라면 좀 지나치려나.

 
여하간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크게 반기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태도의 주인이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친숙한 올드팝이 대화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들리고, 호화롭지 않은 인테리어가 부담스럽지 않다. 곧이어 언제 여길 와봤었나? 하는 착각이 들 만큼 어딘지 익숙한 분위기가 경계심을 풀어놓게 만든다.


소주를 한잔할 요량으로 계란과 명란젓, 치즈(필라델피아 플레인치즈, 에멘탈치즈), 그리고 햄프씨드로 만들어진 ‘치즈명란스크램블에그’를 주문했다. 바(bar)를 사이에 두고 주방은 오픈키친으로 만들어져 있어 요리하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주인이 직접 개발한 스크램블이 하나의 요리로 탄생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명란은 생크림과 1대 1로 섞어 특유의 향과 맛을 중화시켜 준비한다. 그 위에 스크램에그를 올린 다음 치즈와 햄프시드를 골고루 뿌려준 후 파슬리가루로 마무리한다. 치즈와 햄프씨드는 그렇다 치고, 스크램블에 명란젓이라니. 과연 어떤 조화를 이룰지 그 맛이 궁금해졌다. 생크림과 어우러져 특유의 향과 짠맛이 누그러진 명란이 계란의 비릿한 맛을 잡아주면서 적당히 간을 맞춘다. 햄프씨드는 식감을 살려주고, 치즈는 요리를 부드럽게 만들며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와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주종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들게 한 요리다.

 

▲ 구무탁 오너셰프

‘무탁’이라는 상호는 구무탁 오너셰프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름도 독특하지만 왜 굳이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썼을까.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가게 이름을 ‘숨어 있는 가게’라는 컨셉으로 하려 했죠. 그런데 고민을 하던 중에 ‘무탁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있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상호로 걸게 된 겁니다.”


1인 사업장으로서 손님과 교감을 나누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생각과 통하는 이름이다. 그뿐 아니라 직접 인테리어를 설계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혼자 힘으로 3개월에 걸쳐 만든 공간이 바로 무탁이다. 설명에 따르면 ‘프라모델’를 하나하나 조립해 완성하듯 자신이 직접 공간을 꾸미고 싶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건축이나 목공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지금의 무탁을 만들어냈다는 것. 슬로우 쿡(Slow Cook)을 지향하는 그에게 어울리는 스토리다.


그가 공간에 애착을 갖듯 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또 그만큼 조리를 즐긴다. 결국 요리하는 행위와 사람, 그리고 공간이 그에게는 아주 맛있는 음식인 셈이다. 처음 방문한 손님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어떤 일에서 행복을 맛보거나 그것에서 희열을 경험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그동안 해왔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일이 즐거웠다는 그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다 더 많은 사람들과 그런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고 싶었고,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조리공부를 선택하게 된다. 그는 식당 주방 보조일을 시작으로 한식, 중식, 일식, 양식은 물론 퓨전요리에 이르기까지 10여 년간 다양한 장르의 조리법을 익혔고, 2008년 일본 도쿄의 작은 한국이라 불리는 신오쿠보로 건너가 약 3년 동안 좀 더 폭넓은 조리의 세계를 경험한다.


무탁의 특징이라면 신선한 재료로 조리를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만의 스타일이 담긴 음식을 낸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조림류나 수육, 갈비찜 같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조리과정에 정성이 필요한 슬로우 쿡을 선호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리고 그는 장을 볼 때마다 재료에 따라 메뉴를 정해 메뉴판을 새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더 좋은 식재료로 해보지 못한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맛을 유지하면서 가성비까지 고려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나 예술가들도 자주 드나들기 때문이다.

 

무탁에서 주문을 한다면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뚝딱뚝딱 음식을 만드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무탁’의 분위기는 어딘가 ‘우리들의 집’을 닮아 있다.  

▲ 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새우갈릭버터구이, 명란로제떡볶이, 시금치크림커리치킨, 광어카르파초, 삼겹동파육

▲ 가지구이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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