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테이블] <장손> 제삿날의 일그러진 가족 풍경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10-01 15:02:12
틀에 눌린 네모난 두부처럼 쉽게 바스러지는 특성
[Cook&Chef = 조소현 기자] 기름에 지져지는 전 냄새,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과 회포를 푸는 북적북적한 소리들. 추석은 반가운 날이다.
만드는 사람 따로 있고 먹는 사람 따로 있는, 손 많이 가는 음식들. 관심이라고 쓰고 잔소리라고 읽는 불편한 질문들. 추석은 과연, 반갑기만 할까
영화 <장손>은 이 불편하고도 익숙한 어느 집안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오정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장손>은 3대에 걸쳐 두부 공장을 가업으로 이어온 가족의 이야기다.
제사를 맞아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장손 '성진'(강승호 역)은 두부 공장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 한마디가 나오자, 평온해 보였던 대가족의 균열이 모습을 드러낸다.
익숙해서 불편한 줄도 몰랐던
제사 준비가 한창인 집. 할아버지 '승필'(오만석 역)은 장손이 좋아하는 수박을 마루에 툭 내려놓는다. 가족들의 말은 싸그리 무시하고, 장손 '성진'이 도착했는지만 확인한 뒤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임신한 성진의 누나를 포함한 집안의 여자들은 더운 날씨 속에서 땀을 흘리며 전과 제사 음식을 준비한다. 반면 남자들은 방에서 화투나 친다. 누나가 더위를 견디지 못해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임신한 몸이라 한들 '출가외인'이라는 듯, 가족의 제사를 위해 음식을 준비는데도 더위에 힘들어하는 것조차 배려받지 못한다.
이어지는 장면, 서울에서 성진이 도착하자 할머니 '말녀'(손숙 역)는 “성진이 왔다! 에어컨 틀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성진은 여자들이 차려준 밥상을 받아 먹고, 엄마에게 물을 떠달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사 온 수박도 장손이 오자 비로소 밥상에 오른다. 젊고 건강한 장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집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대접을 받는다.
하루 종일 제삿상을 차린 여자들은 정작 조상에게 절을 올릴 때는 문지방을 넘지 못한 채 밖에 남겨진다.
몇 분 되지 않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해서 굳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법한 모습이 스크린에서 나열되자, 기시감이 듦과 동시에 낯설게 느껴진다.
<장손>은 제삿날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과 제사상을 통해 남존여비, 장손 중심의 가족 질서, 제사의 형식과 권위를 지키는 데 집착하는 모습 등 변질된 유교적 가부장제가 가족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네모난 두부처럼 틀에 눌러 만든 가족
콩을 불리고, 갈고, 끓이고, 응고시키고, 틀에 넣어 눌러 물기를 뺀다. 그렇게 반듯한 육면체로 만들어진 두부는 멀리서 보면 단단하고 온전하다. 하지만 손끝으로 조금만 힘을 주어도 쉽게 으스러진다.
영화 속 김씨 집안도 그렇다. 여러 세대의 가족들이 가부장제의 질서 아래 묶여 있고, 장손과 장남을 중심으로 역할이 정해져 있다. 밖에서 바라보면 대를 이어온 단단한 가족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랜 갈등과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다. 아주 작은 도화선이 당겨지면 울분과 원망이 터져나온다.
오정민 감독은 '가장 동양적인 재료'인 두부가 복잡하고 섬세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연약하고 쉽게 바스라지는 특성을 지닌다며, 이를 한국의 여러 세대에 걸친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재료로 설명했다.
이번 추석 우리집은 어떨까
추석을 앞두고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설문에 따르면, 명절에 겪는 가장 심각한 성차별로 남녀 모두 '여성에게만 집중되는 상차림과 가사분담(53.3%)'을 1위로 꼽았다. 기혼 여성의 70.7%가 명절 후 관절 통증(손목터널증후군 등)을 경험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비율도 명절 전(23%)보다 명절 후(64.2%)에 대폭 상승한다.
'세상이 좋아져서' 이제 여자도 가사 노동의 부담을 내려놓고 있다고는 하지만, 명절만큼은 유구한 가부장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기도 한다.
영화 <장손>을 보고 맞은 추석에는, 주워먹기 바빴던 동그랑땡 한 알이 달리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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