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해수부·농식품부 예산 동반 증액… ‘K-푸드 인프라’ 대전환의 서막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 2025-12-09 23:56:13
데이터 기반 예측과 위생의 상향 평준화, 외식업계가 준비해야 할 미래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제조리 기자] 주방의 열기는 언제나 50도를 넘나든다. 오더 프린터의 끊임없는 소리, 날카로운 칼이 도마를 울리는 리듬, 팬 위에서 단백질이 마이야르 반응으로 고소한 소리를 낸다. 셰프들은 완벽한 요리를 위해 모든 감각과 기술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식재료의 원물 상태, 유통의 안정성, 위생 문제는 셰프들의 손을 벗어난다.
최근 발표된 2026년도 정부 예산안은 이러한 주방 외적 변수를 겨냥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8,320억 원, 해양수산부 7조 3,566억 원, 농림축산식품부 20조 1,362억 원. 세 부처의 예산이 동시에 증액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외식 산업의 전 사슬을 더욱 튼튼하고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국가적 의지다.
28조 원이 넘는 이 자금은 우리 주방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식재료의 본질과 주방의 치열함을 아는 전문가의 시선으로, 이 예산 증액이 외식 현장을 어떻게 바꾸고, 식문화의 미래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심층 분석한다.
신뢰의 재구축: 식약처 예산이 다지는 주방의 안전선프로의 주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 이전에 ‘안전’이다. 단 한 번의 식품 안전사고는 수년간 쌓아 온 레스토랑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다. 식약처의 2026년도 예산 8,320억 원은 역대 최대 규모로, 올해 대비 10.9% 증가했다. 이 증액분은 외식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뢰’의 인프라를 구축한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음식점 위생등급제 확대 운영’에 5억 원이 증액된 점이다. 이는 단순히 ‘매우 우수’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아니다. 위생등급제는 주방의 식재료 보관법, 조리 기구의 소독 주기, 종사자의 위생 관리 습관 등 보이지 않는 주방의 시스템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개선을 유도한다. 예산 확대는 시스템 고도화와 더 많은 업소의 참여를 독려하는 인센티브 강화를 의미한다.
이는 셰프와 오너에게 더 높은 수준의 위생 관리를 요구하는 압박인 동시에, 자신의 주방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되는지를 소비자에게 증명할 기회다.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업소는 잠재적 리스크를 줄이고, 소비자는 안심하고 레스토랑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점을 얻게 된다. 위생등급제의 확대는 외식업계 전반의 위생 수준을 상향 평준화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식약처는 ‘식품 위해요소 발생 예측’과 같은 미래 대비형 안전관리 체계 구축에도 예산을 투입한다. 이는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특정 시기와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식중독균이나 유해물질을 사전에 예측하고 경보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여름철 특정 해역의 수온 상승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브리오균의 위험도를 예측해 수산물 취급 업소에 경고를 보내는 식이다. 셰프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식재료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해 위험 식재료 사용을 피하거나 조리법을 변경하는 등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진다.
바다와 땅의 본질을 지키다: 식재료의 원류를 강화하는 해수부와 농식품부완벽한 요리는 완벽한 식재료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진 셰프라도 원물 자체의 품질이 떨어지면 그 한계를 넘기 어렵다. 이번 해양수산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예산 증액은 ‘시작점’의 품질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두 부처의 정책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산지에서부터 주방의 문 앞까지 식재료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해양수산부의 예산 7조 3,566억 원(8.5% 증가)은 바다라는 거대한 ‘천연 저장고’를 더 깨끗하고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해양 폐기물 정화사업’에 41억 원이 증액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깨끗한 바다는 건강한 해양 생태계를 의미하며, 이는 미세플라스틱이나 중금속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수산물을 얻을 수 있는 기본 전제조건이다. 자연산 광어나 전복의 섬세한 맛은 그것이 자라난 바다의 ‘떼루아’를 반영한다. 바다를 정화하는 것은 식탁에 오를 수산물의 본질적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더 직접적인 변화는 ‘유통단계 위생안전체계 구축 사업’에 23억 원이 증액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갓 잡은 생선이 아무리 신선해도 유통 과정에서 온도가 무너지거나 비위생적으로 다뤄지면 품질은 급격히 저하된다. 이 예산은 산지 위판장부터 소비지까지 이어지는 콜드체인 시스템을 강화하고, 수산물 이력 추적을 고도화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셰프는 이제 스마트폰 앱으로 자신이 주문한 고등어가 언제, 어느 바다에서, 어떤 어선에 의해 잡혔고, 어떤 경로로 운송되었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식재료에 대한 확신과 스토리텔링의 근거가 된다.
땅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20조 1,362억 원으로 확정된 농식품부 예산(7.4% 증가)은 농업 생산의 안정성과 품질 향상에 집중한다. 2023년부터 중단되었던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 사업이 158억 원의 예산으로 재개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단순히 특정 계층을 위한 복지 정책이 아니다. 정부가 대규모로 친환경 농산물을 수매함으로써, 판로에 대한 걱정 없이 고품질 농산물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장을 농가에 제공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렇게 형성된 프리미엄 농산물 시장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비롯한 외식업계가 양질의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세 부처 예산이 만드는 시너지식약처, 해수부, 농식품부의 예산 증액은 각기 다른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외식 산업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하나의 통합된 스토리로 연결된다. 이들의 정책은 ‘더 안전하고, 더 우수하며, 더 지속가능한 식문화 생태계 구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시너지를 창출한다.
한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완도산 전복 스테이크’를 상상해보자. 해수부의 ‘해양 폐기물 정화사업’ 덕분에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최상급 전복이, ‘연근해어선 감척 사업’(70억 원 증액)을 통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채취된다. 이 전복은 해수부의 ‘유통단계 위생안전체계’와 농식품부의 ‘저온유통시설’이 결합된 콜드체인을 통해 신선도 손실 없이 레스토랑에 도착한다.
주방에서는 식약처의 ‘음식점 위생등급제’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되는 환경에서 조리된다. 만약 이 과정에서 AI 기반의 ‘식품 위해요소 예측 시스템’이 특정 지역 전복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했다면, 셰프는 사전에 해당 식재료를 메뉴에서 제외하거나 안전이 확인된 다른 산지의 식재료로 대체하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소비자의 식탁에는 비로소 맛과 안전,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가치까지 담긴 완벽한 한 접시가 오르게 된다.
이러한 전방위적 시스템 강화는 K-푸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전 세계 미식가들이 한식에 열광하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의 독창성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품질 관리 시스템이다. 농장에서부터 식탁까지, 모든 단계가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된다는 신뢰는 한식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미래를 향한 투자, 그러나 현장의 과제는 남았다정부의 대규모 예산 투자는 분명 외식 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이는 생산자와 셰프, 그리고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신호다. 생산자는 안정적인 판로와 인프라 지원을 통해 고품질 생산에 집중할 수 있고, 셰프는 더 좋은 식재료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며, 소비자는 더 안전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막대한 예산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장의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강화된 위생 기준과 식재료 이력 관리 시스템은 영세한 외식업자들에게는 또 다른 규제와 비용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정부는 단순히 제도를 도입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의 소규모 사업자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과 컨설팅, 초기 비용 지원 등을 병행해야 한다.
셰프와 조리 종사자들 역시 변화의 흐름을 주도적으로 읽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새로운 식재료 유통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강화된 위생 관리 시스템을 주방 문화로 정착시키며, 식재료의 생산 배경과 스토리를 메뉴에 녹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가 닦아 놓은 ‘인프라’라는 고속도로 위를 어떤 속도와 방향으로 달릴지는 결국 현장의 몫이다.
2026년의 예산안은 대한민국 외식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다. 치열한 주방의 열기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이 변화가 더 나은 창작 환경과 정당한 보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 거대한 투자가 단지 보고서 속의 숫자로 남지 않고, 우리 모두의 밥상을 더욱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변화로 결실을 맺을 때, K-푸드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Cook&Chef /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