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자리’ 90분 대기... 이재용·정의선·젠슨 황의 ‘깐부’를 맛보다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1-04 22:05:56
[Cook&Chef = 이경엽 기자] 서울 강남 삼성동 한복판, ‘깐부치킨 삼성점’ 앞에는 11월 초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10월 말,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함께한 '치맥 회동' 이후, 이곳은 단순한 치킨집을 넘어 ‘한국식 소셜 다이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저녁 시간이 살찍 지난 7시30분에도 매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직원은 "지금 오시면 오래 기다리셔야 한다"며 "특히 '회장님 자리'는 대기 손님이 많아 1시간30분은 기다려야한다"고 안내했다.
매장 입구에는 “'회장님 자리'는 1시간만 이용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이 붙어 있었고, 그 아래로 대기 줄이 골목 끝까지 이어졌다.
‘회장님 자리’를 위한 90분의 기다림, 1시간의 경험
매장 안쪽, 세 거물이 앉았던 바로 그 4인용 테이블은 이미 '명소'가 되어 있었다. 이른바 ‘회장님 자리’를 향한 시민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매장 앞은 거대한 '포토존'을 방불케 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여기가 그 깐부치킨 맞죠?”라며 휴대폰을 들이대 사진을 찍었다. 한 직원은 “사진만 찍고 가는 분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매장에서 만난 60대 강모 씨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뉴스를 보고 일부러 찾아왔다”는 그는 “깐부치킨을 보니 ‘오징어게임’의 깐부가 생각났다. 재벌 회장들이 서민적인 치킨집에서 깐부가 됐다니, 참 상징적이지 않나.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치킨을 먹는다는 게 감명 깊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회장님 자리'에 앉아 식사한 뒤 "가격은 그대로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며 "그 자리에 앉아보니 왠지 나도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회장님과 같은 메뉴를 주세요’
기자 역시 ‘회장님과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세 거물이 주문했다는 조합 그대로, 크리스피 순살치킨, 식스팩치킨, 치즈볼 5개, 치즈스틱, 그리고 제주에일 한 잔이었다. 직원은 “요즘 가장 많이 나가는 주문이 바로 그 세트”라며 “손님들이 ‘회장님 세트’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먼저 ‘식스팩 치킨’은 통닭 형태의 순살 조각을 여섯 덩이로 나눈 깐부의 시그니처 메뉴다. 겉은 고소하게 구워진 느낌이었고, 한입 베어 무니 "구운 듯한 바삭함이 혀끝에서 부서지는"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함께 나온 ‘크리스피 순살치킨’은 젠슨 황 CEO가 직접 선택했다는 메뉴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했으며, 튀김의 밀도가 높지 않아 부드러운 육질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맵지 않고 보드라운 식감은 낯선 한국 음식을 접하는 외국인에게도 부담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동등한 대화의 공간'"
식당 한편에서 만난 33세 김수아 씨(‘수아쥬’ 생화주얼리 브랜드 대표) 역시 '회장님 세트'를 맛보고 있었다
그녀는 “식스팩 치킨은 바삭하면서 약간 매콤해서 입맛을 돋우고, 크리스피 순살치킨은 반대로 부드럽고 촉촉해서 조화가 좋았다.”며 “감자튀김도 촉촉하고 질 좋은 맛이 나서 세트 구성이 훌륭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호기심으로 왔지만, 막상 먹고 보니 왜 그들이 이 메뉴를 고른 건지 알 것 같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서로 다른 세 리더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런 메뉴를 고른 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동등한 대화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젠슨 황의 ‘치즈스틱 미소’... "우리도 오늘만큼은 회장님!"
식당 벽면에는 당시 젠슨 황 CEO가 치즈스틱을 시민들에게 건네는 장면이 캡처된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가 직접 치즈스틱을 들고 “It’s the best!”라며 웃는 장면은 이미 SNS에서 밈(meme)처럼 퍼졌다.
기자가 주문한 치즈스틱 역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했으며, 맥주와의 궁합이 완벽했다.
깐부치킨 삼성점 관계자는 “ 우리 지점은 원래부터 손님이 많았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후 손님이 더 늘어났다”며 “사장님은 인터뷰에 너무 시달리셔서 오늘은 아예 묵언수행을 하고 계신 중이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서구의 비즈니스 런치가 전략적 대화의 자리라면, 한국의 치맥 문화는 관계와 공감의 자리”라며 “깐부치킨 회동은 계급과 격식을 허문 한국형 관계 문화의 상징적 장면”이라고 분석했다.
기자는 치킨의 마지막 한 조각을 씹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왜 젠슨 황이 이 메뉴를 먹었는지 알 것 같은 맛이었다.”
매운맛도, 자극적인 향도 없었다. 대신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따뜻한 맛이 있었다. 그 맛은 한국의 치킨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관계와 감정이 녹아든 '문화'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깐부’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단어다. 경쟁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는 동반자, ‘진짜 친구’라는 뜻이다.
이재용, 정의선, 젠슨 황. 세 리더의 회동은 바로 그 ‘깐부 정신’을 상징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앉아 같은 메뉴를 앞에 둔 시민들도 같은 마음으로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한 그릇의 치킨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언어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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