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에서 가장 먼저 향을 내는 채소, 미나리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 2026-01-20 20:38:10

차가운 물 위에서 자라 한국의 봄을 알리는 맛과 건강의 신호 [사진=풍각마을, 미나리]

[Cook&Chef = 서현민 기자]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아직 남아 있는 시기, 채소의 계절은 이미 조용히 시작된다. 흙을 뚫고 올라오는 봄나물보다 먼저, 물 위에서 향으로 존재를 알리는 채소가 있다. 미나리다. 얼음장 같은 물에서도 줄기를 뻗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특유의 향을 잃지 않는다. 미나리는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가장 먼저 식탁에 오르는 채소다.

미나리는 한국 음식 문화에서 단순한 나물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예부터 미나리는 해독과 정화의 이미지로 인식돼 왔다. 기름진 고기나 진한 국물을 먹은 뒤 미나리 무침이나 미나리국을 곁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가에서 자라는 식물이라는 특성은 ‘몸속을 씻어주는 채소’라는 감각으로 이어졌고, 이 인식은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영양적인 측면에서 미나리는 겨울철 채소 가운데 존재감이 분명하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A, C가 풍부해 체내 활성산소를 줄이는 항산화 작용에 도움을 주고, 면역력 유지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칼륨 함량이 높아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 관리에 유리하며,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운동을 촉진하고 포만감을 높여 체중 관리에도 적합하다. 혈당 상승을 완만하게 하는 특성 덕분에 당뇨 관리 식단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채소다. 전통적으로 ‘피를 맑게 한다’고 표현해 온 미나리의 효능은 이러한 항산화와 순환 개선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미나리는 전국 곳곳에서 재배되지만, 특히 물이 맑고 유속이 안정적인 지역이 주요 산지로 꼽힌다. 충북 청주와 진천, 전북 완주, 경북 청도, 경남 밀양과 창녕 일대는 미나리 주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지역들은 겨울에도 수온이 비교적 안정적인 물 환경을 갖추고 있어 하우스 미나리 재배가 활발하다. 봄이 깊어지면 자연 환경에서 자란 돌미나리가 출하되며, 향과 조직감이 한층 강해진다.

미나리는 해외에서 흔히 ‘워터 그래스(water grass)’로 번역되지만, 이 표현은 미나리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셀러리나 워터크레스, 파슬리와 비교해도 향과 질감, 뒷맛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나리는 풀 향과 매운 향, 단맛과 쌉싸름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채소다. 이 복합적인 향미는 해외 식재료로 대체하기 어렵다. 실제로 미나리를 처음 접한 외국인들은 낯선 향에 잠시 멈칫하다가도, 한 번 익숙해지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사진=상하농원, 미나리오일파스타]

미나리는 조리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생으로 먹으면 향이 또렷하고, 살짝 데치면 단맛이 살아난다. 볶거나 튀기면 채소 이상의 존재감이 드러나고, 고기 요리에서는 기름기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 미나리무침과 미나리전 같은 전통 조리뿐 아니라, 미나리 페스토, 미나리 오일, 미나리 소스처럼 현대적인 활용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파스타와 리소토, 생선 요리의 허브로도 충분히 확장 가능한 재료다.

차가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향을 내는 채소. 미나리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이자, 한국 식탁이 가진 고유한 감각을 보여주는 재료다. 한 번 기억된 이 향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그 대체 불가능성에 있다.Cook&Chef /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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