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 음식, 왜 표준화가 어려운가?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 2025-11-28 23:14:10

근대 요리서부터 현대 K-푸드까지… ‘재현 불가능한 맛’이 남긴 구조적 과제 조선무쌍신요리제법 = 전통문화포털

[Cook&Chef = 서현민 기자]  1900년대 초에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한국 근대 요리서 가운데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헌 중 하나다. 저자 이용기는 기존의 전통 문헌을 그대로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정조지를 참고해 자신의 조리 경험을 더해 재해석한 방식을 취했다.

책의 각 음식 설명에는 저자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조리 관행을 반영한 기술적 서술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헌은 오늘날 말하는 ‘표준 레시피’와는 상당히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재료의 크기, 손질 방식, 조리 절차 등은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지역별 재료의 특성이나 정확한 계량 기준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고조리서나 궁중음식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맛까지 동일하게 되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반복되어 왔다(『임원경제지』, 19세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1924).

이 같은 문제는 한국만의 특수성이라기보다는 전통 요리 문헌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계지만, 한국 음식은 조리법의 다양성과 지역성, 그리고 오랜 기간 구전 위주의 전승 방식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재현의 난도가 특히 높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의 다층적인 음식 체계는 지역·가정·계절에 따라 변주가 크고, 같은 이름의 음식도 조리 원리가 다르게 전승되는 경우가 흔하다. 김치, 젓갈, 장류처럼 지역 기반이 강한 조미 체계 역시 표준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드러낸 바 있다.

반면, 국제 조리 교육기관이 구축한 표준화 모델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프랑스계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는 전 세계 여러 국가에 캠퍼스를 두고 있으나, 동일한 커리큘럼과 동일한 조리 방식 교육을 유지한다.

학교 측은 재료의 종류, 명칭, 지방 함량, 규격 등 세부적인 기준을 통일해 제공하며, 어떤 지점에서 수업을 듣더라도 “동일한 방식으로 조리하면 유사한 결과가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Le Cordon Bleu, Course Description, 2024). 예를 들어 치즈가 필요한 조리의 경우 “어떤 종류의 치즈를 사용해야 하며, 반드시 해당 규격의 제품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준이 제공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비교적 동일한 맛을 구현할 수 있다.

한국 음식에서 표준 레시피 논의가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한국 음식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종류가 매우 많고, 조리 방식이 복잡하며, 지역적 차이가 뚜렷하다. 또한 “집집마다 다른 손맛”이라는 문화적 가치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어, 단일 기준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나타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정 조리의 감소, 전승자의 고령화, 생활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전통 조리법의 실제 기술과 맛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향토음식 장인이나 전통 조리 기능보유자가 사라지면, 기록되지 않은 조리법은 사실상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유산 및 식문화 연구자들은 “외형의 모양을 남기는 수준이 아니라, 맛을 재현할 수 있는 기술적 기록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조리 온도, 시간, 계량, 장 재료의 정확한 종류, 발효 기간 등은 향후의 전승과 학습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정부 차원의 표준화 프로젝트에도 일정 부분 반영되어 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The Beauty of Korean Food』(2007)를 통해 대표 전통음식 100종을 선정해 계량표와 조리 기준을 제시했고, 최근 정부는 K-푸드 산업 확장 전략 속에서 대표 한식 레시피를 디지털 표준 형태로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농림축산식품부 보도자료, 2024). 다만 이 표준화는 산업적·교육적 최소 기준을 정하는 수준이며, 지역성과 전통의 다양한 변형을 온전히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결국 논쟁의 초점은 ‘표준화가 필요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수준의 표준을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승자 부재 속에서 기술이 소멸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단일 기준이 문화적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최신 연구와 정책 논의에서는 표준 레시피를 하나의 정답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대표 기준과 지역별 변주를 함께 기록하는 ‘다층적 표준화 모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 음식이 세계화와 전통 보존이라는 두 요구를 동시에 받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보다 정밀한 기록과 재현 가능한 조리 정보의 확보는 향후 지속 가능한 전승의 기반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Cook&Chef / 서현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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