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 인간' 에드워드 리, 한식 외교의 정점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 2026-01-20 23:16:30

사진 = 조현 외교부 장관 인스타그램

[Cook&Chef = 제조리 기자] 지난 19일, 서울 외교부 청사의 서희홀은 평소의 정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긴장과 영예로 가득 찼다. 이곳에서 열린 '2025 APEC 정상회의 유공 정부포상 전수식'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는 조현 외교부 장관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포장을 수훈했다.

주방의 치열한 열기와 땀방울 대신 차분한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이는 한식(K-Food)이 단순한 '음식'을 넘어 국가적 '소프트파워'이자 정교한 '외교 언어'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여정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그 자신을 "비빔 인간"이라 칭한 그 순간부터 예견되었을지 모른다. 여러 문화권이 뒤섞인 자신의 정체성을 요리에 녹여냈던 그의 철학이, 이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21개국 정상들의 입맛과 마음을 사로잡고 국가적 공로로 이어진 것이다.


정상들의 식탁, 총성 없는 외교 전쟁터


APEC 정상회의 만찬은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다. 각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만찬 메뉴 하나하나는 주최국의 문화적 자부심과 철학, 외교적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 된다. 주방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다.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셰프라 할지라도,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과 식습관, 종교적 금기를 가진 세계 최고 지도자들의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고민은 깊었다. 그는 만찬 직전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정상회의가 가을에 열리니까 '가을 맛'이 뭘까 계속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의 첫 번째 과제는 '계절성'이었다. 식재료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제철의 맛이다. 그는 한국의 가을이 가진 풍요로움과 서정성을 접시 위에 고스란히 옮겨오고자 했다.


메뉴 해부: 전통과 현대를 엮어낸 맛의 변주


그의 고민의 결과물은 만찬 메뉴에 고스란히 담겼다. 에피타이저로 제공된 '단감과 잣 소스를 곁들인 게살 샐러드'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서곡과 같았다. 한국 가을의 상징인 단감의 은은한 단맛과 아삭한 텍스처, 그리고 고소하고 크리미한 잣 소스가 부드러운 게살을 감쌌다. 이는 서양식 샐러드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단감과 잣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식재료를 통해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 영리한 선택이었다.

메인 요리인 '갈비찜'과 '나물비빔밥'은 한식의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갈비찜은 오랜 시간 뭉근하게 끓여내 극강의 부드러움을 구현했을 것이며, 간장의 감칠맛과 과일의 자연스러운 단맛이 조화를 이루어 어느 나라 정상이 먹어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비빔 인간', 문화 외교의 아이콘이 되다


이번 국민포장 수훈은 에드워드 리 셰프 개인의 영예를 넘어, 요리가 문화 외교의 핵심 도구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포장 수여 이유에 대해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포상에서 가수 지드래곤의 소속사 갤럭시코퍼레이션 역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지드래곤은 APEC 특별 공연과 공식 홍보대사 활동을 통해 K-컬처의 매력을 전파했다. 정부가 APEC 성공 개최의 공로자로 '셰프'와 'K팝 아티스트'를 나란히 호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남동에서 이어질 새로운 미식의 서사


APEC 정상회의의 성공과 대통령상 수훈이라는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에드워드 리 셰프는 이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수상 소감을 밝히는 인터뷰에서 "현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지금 있는 한남동 카펠라 클럽하우스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다. APEC 만찬이라는 특별한 무대에서 소수의 세계 정상들에게만 선보였던 그의 철학과 요리가, 이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남동에 새롭게 문을 열 그의 레스토랑은 한국 파인 다이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험실이자, 그의 '비빔' 철학이 더욱 무르익어 갈 무대가 될 것이다.


한식 세계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국민포장 수훈은 한식 세계화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과거의 한식 세계화가 비빔밥, 불고기 등 특정 메뉴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한식이 가진 '철학'과 '다양성'을 알리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그의 요리는 '맵고 짠 음식'이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넘어, 계절의 맛을 존중하고, 발효의 지혜를 담으며, 담백하고 섬세한 맛의 균형을 추구하는 한식의 본질을 세계에 알렸다.

에드워드 리 셰프가 APEC 정상회의 만찬으로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제 한식의 위상과 가능성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손끝에서 '비벼진' 한국의 맛과 멋이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지, 미식계 전체가 그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그의 새로운 레스토랑이 문을 여는 날, 그곳은 단순한 미식 공간을 넘어 한식 외교의 새로운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Cook&Chef /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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