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식 인재와 국산 콩, '수라학교'가 짊어진 두 개의 쟁반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 2026-01-26 18:02:00

사진 = 농식품부

[Cook&Chef = 오요리 기자] K-푸드의 화려한 외연 뒤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있다. 하나는 폭발적인 인기를 뒷받침할 체계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의 부재, 다른 하나는 수입 농산물에 밀려 입지를 잃어가는 국산 농산물의 현실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장관 송미령)가 발표한 한식 전문 교육기관 '수라학교' 설립 계획은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정책적 시도다. 이는 단순히 요리학교 설립을 넘어, 한식 세계화를 국내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연결하려는 복합적인 설계에 해당한다.

지난 1월 26일, 서울 한식진흥원에 조희숙(한국의집), 조은희(온지음), 김병진(비채나), 권우중(권숙수) 등 국내 대표 한식 셰프들이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과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공식화된 '수라학교' 구상은 K-푸드 수출의 질적 성장을 견인하고, 국산 콩 소비 촉진이라는 농업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중의 목표를 담고 있다.

수라학교는 한식 교육을 통해 글로벌 미식 네트워크의 허브를 구축하고, 그 네트워크로 국산 농산물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 기사는 수라학교 설립의 배경과 계획, 그리고 해당 프로젝트가 외식 산업과 농업 생태계, 소비자에 미칠 다층적 영향을 분석한다.

K-푸드 열풍의 명암: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심화'로

한식의 세계적 인기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K-팝과 K-콘텐츠의 성공은 한식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23년 농식품 수출액은 91억 6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라면, 과자, 김치 등 가공식품이 수출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 성과 이면에는 과제가 존재한다. 현재 K-푸드 열풍은 가공식품과 일부 대중적 메뉴에 편중되어 있다. 이는 한식의 철학보다 단편적 이미지로 소비될 위험을 내포한다. 뉴욕, 파리 등에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는 소수의 사례에 불과하다.

대다수 해외 한식당은 현지화된 메뉴와 제한된 조리법의 틀에서 운영되며 한식의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기에 역부족인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한식의 정수를 이해하고 현지 식재료와 창의적으로 융합할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한식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하나의 미식 장르로 자리 잡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나 일본의 스시 장인 교육 시스템처럼, 한식 역시 공신력 있는 교육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수년간 이어져 왔다.

온지음 조은희 셰프가 간담회에서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인력 양성 문제에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하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절박함을 방증한다. 수라학교 설립은 이 '질적 심화'에 대한 업계의 요구에 정부가 내놓은 공식적인 응답이다.

사진 = 농식품부

정교한 이원화 전략: '대중화'와 '고급화' 동시 추진

농식품부가 제시한 수라학교의 청사진은 '투 트랙(Two-track)' 전략으로 요약된다. 이는 한식의 저변을 넓히는 대중화와 미식 시장의 정점을 공략하는 고급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첫 번째 트랙인 일반 '수라학교'는 올해 하반기 민간 전문기관 위탁 방식으로 시작한다. 주요 대상은 한식에 관심 있는 외국인과 해외 현직 셰프다. 이 과정의 핵심은 '실무 역량 강화'로, 발효 원리, 향토 음식, 현대 조리 기법 등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육 목표는 졸업생이 현지에서 즉시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컨설팅할 수 있도록 실용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식재료 수급부터 메뉴 구성, 주방 운영까지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교육을 통해 전 세계에 한식 전문가를 양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두 번째 트랙은 2027년 설립 목표인 '프리미엄 수라학교'다. 이곳은 소수 정예의 최상급 인재를 양성하는 한식의 '사관학교'를 지향한다. 세계 미식 트렌드를 선도할 차세대 리더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다.

프랑스의 '폴 보퀴즈 인스티튜트'나 스페인의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처럼, 조리 기술을 넘어 음식 철학과 미학, 레스토랑 경영까지 교육하는 최고 수준의 기관을 모델로 삼는다. 국내외 최정상급 셰프를 교수로 초빙해 세계적 요리학교와 경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이원화 전략은 넓은 저변과 최상위 리더를 동시에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한식 세계화의 동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가속화하려는 정부의 치밀한 계산이 담겨 있다.

교육과 농업의 연계: 왜 '콩'인가

수라학교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이유는 요리 교육기관 설립을 넘어 국내 농업 현안인 '국산 콩 소비 부진' 문제 해결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송미령 장관이 간담회에서 '콩'을 강조한 것은 수라학교가 농업 정책과 연동되는 핵심 플랫폼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국산 콩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콩 자급률은 23.7%에 불과하다. 장류·두부용으로 한정해도 30%를 넘지 못한다. 가장 큰 원인은 가격 경쟁력이다. 대량 생산되는 수입 콩에 비해 국산 콩은 생산 단가가 높다.

여기에 1인 가구 증가와 식습관 서구화로 전통 장류 소비가 정체되면서 국산 콩 농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콩은 된장, 간장 등 한식의 근간인 '장(醬)' 문화의 핵심 원료다. 국산 콩 기반의 약화는 우리 식문화 정체성의 위기와 직결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수라학교와 스타 셰프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정부는 국내외 셰프들이 국산 콩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혁신적 레시피를 개발하고, 이를 수라학교 커리큘럼에 포함해 전파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콩을 활용한 비건 스테이크, 글루텐프리 디저트, 된장을 이용한 소스 등 새로운 메뉴 개발이 가능하다. 이 레시피들은 수라학교를 통해 세계 각국의 셰프에게 전수되어 국산 콩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할 것이다. 이는 국산 콩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산업 파급효과와 해결 과제

수라학교의 성공적 안착은 외식, 식품, 농업계 전반에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닌다. 해외 한식당은 체계적 교육을 이수한 검증된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수라학교 졸업생'이라는 인증은 현지 고객에게 신뢰를 줄 것이다.

식품 산업계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국산 콩 기반의 혁신 레시피는 프리미엄 밀키트, HMR, 소스 등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K-푸드 수출 품목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다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더 다채롭고 깊이 있는 한식을 경험하게 된다. 국내 소비자들은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활용한 혁신적인 요리를 접할 기회를 얻는다. 이는 우리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고 건강한 식문화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긍정적 전망이 현실화되기까지는 해결할 과제가 많다. 첫째, 지속가능한 운영 모델 확보다. 장기적으로 민간 후원, 유료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재정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 둘째, 커리큘럼의 유연성이다. 글로벌 미식 트렌드를 신속히 반영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국산 콩 소비 연계 정책의 실효성 문제다. 레시피 개발과 더불어 계약재배 확대, 생산비 절감 기술 보급 등 농가에 대한 실질적 지원 정책이 병행되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수라학교의 성공은 한식이 K-콘텐츠의 후광 효과를 넘어 고유한 미식의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정부와 업계의 협력이 '글로벌 한식 인재'와 '국산 콩'이라는 두 과제를 해결하는 역사적 첫걸음이 될지 주목된다.

Cook&Chef /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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