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서 만나는, 따뜻한 준비의 밥상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1-12 17:47:14

입동과 소설 사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온기 사진 = 한식진흥원

[Cook&Chef = 이경엽 기자] 햇살은 아직 부드럽지만, 바람은 이미 겨울의 냄새를 품고 있다. 입동이 지나고 소설을 기다리는 이 짧은 사이, 밥상은 조금씩 무게를 더해 간다. 밭의 무와 배추는 고개를 숙이고, 부엌의 냄비에서는 김이 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김장을 담그며 서로의 손끝을 맞잡고, 추위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지난 11월 7일, 겨울의 문을 두드린다는 ‘입동(立冬)’이 지났다. 하지만 문은 아직 활짝 열리지 않았다. 첫눈이 내리고 땅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은 열흘 뒤(11월 22일)에야 당도한다. 우리는 지금, 입동과 소설 사이, 그 15일간의 ‘문턱’에 서 있다. 한식진흥원은 이 시기를 ‘추울수록 더 따뜻해지는 절기’라 표현했다. 겨울이 찾아온다는 사실보다, 그 속에서 서로를 데워주는 인간의 온기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눔과 준비로 채우는 11월의 절기

입동(立冬)은 스산한 바람 속에서도 ‘시작’을 의미한다. 이름 그대로 겨울이 ‘선다’. 땅이 얼고 물이 차가워지는 날이지만, 예로부터 사람들은 그날을 축제로 삼았다. 곳간에 햇곡식을 쌓고 마루에 고사를 지내며, 이웃에게 고사 음식을 나눴다. “치계미”라 불린 마을 잔치에선 어르신들께 미꾸라지탕을 대접했고, 도랑탕 잔치가 열리는 개울가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추위 속에서도 밥 한 그릇으로 마음을 잇던, 우리식의 따뜻한 사회안전망이었다.

소설(小雪)은 ‘작은 눈’의 절기. 첫눈이 내리며 본격적인 겨울이 열린다. 이 무렵이면 집집마다 김장통이 마당을 메운다.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속담처럼, 사람들은 겨울의 매서움을 예감하며 김장을 마무리하고 시래기와 무말랭이를 걸었다. 준비의 손길이 곧 사랑이었다.

겨울의 힘을 담은 식재료와 따뜻한 밥상

입동과 소설 사이의 식탁에는 ‘온기’와 ‘저장’의 미학이 공존한다. 한식진흥원은 이 시기, 자연이 건네는 여섯 가지 식재료를 제안했다. 귤은 겨울의 첫 향으로, 과육의 산뜻한 단맛은 목을 달래고 껍질의 진피는 비타민C의 보고다. 갓은 김장의 영혼으로, 특유의 매운 향이 밥상에 긴장감을 더한다. 여수 돌산갓은 그중에서도 부드럽다. 도토리는 숲이 내어준 묵은 지혜로, 도토리묵, 도토리온면, 도토리전은 입안에서 흙의 향을 품는다.

생강은 몸을 덥히는 뿌리다. 찬 기운을 몰아내는 강렬한 매운맛은 겨울을 견디게 하는 불씨다. 꼬막은 바다가 주는 단맛으로, 살이 통통하게 오른 11월 꼬막은 겨울 입맛을 깨운다. 마지막으로 삼치는 차가운 바다의 영양왕으로, 구이든 회든, 기름진 살결 속에 겨울의 힘이 깃든다.

이 식재료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추위를 견디는 지혜의 형태다. 겨울을 맞이하는 밥상엔 반드시 ‘뜨거운 것’이 있다. 한식진흥원이 추천한 두 가지 메뉴인 연근조림과 유자생강차는 그 온기의 상징이다.

연근조림은 연꽃의 뿌리로 지친 몸을 달래는 음식이다. 간장과 물을 부어 서서히 졸이다가 마지막에 통깨를 뿌리면, 단단한 뿌리에서 깊은 단맛이 배어난다. 유자생강차는 겨울 감기를 밀어내는 한 잔의 약차다. 유자의 향긋함과 생강의 알싸함이 어우러지며, 잔을 두 손에 감싸 쥐는 순간 마음까지 녹아내린다. 한식의 밥상은 언제나 계절을 맞는 가장 실질적인 언어였다.

입동과 소설 사이, 계절의 경계선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온기가 된다. 김장을 담그는 손, 국물을 휘젓는 국자, 불 위에서 익어가는 생강의 향이 모두 겨울을 견디는 방식이다. 한식진흥원은 이렇게 말한다. "김장으로 월동 준비를 하고 겨울 별미로 식탁을 채우면, 추울수록 더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겨울은 그렇게 온다. 차갑지만, 결코 냉정하지 않게.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