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완의 100세 건강식탁] (4) 몸은 배고플 때 몸을 청소합니다

채수완 칼럼니스트

cnc02@hnf.or.kr | 2026-08-17 15:03:14

먹을 때 저장하고, 배고플 때 꺼내 쓰는 시스템
스스로 낡은 것을 청소하고 재활용하는 ‘오토파지’
사진 = 픽사베이

[Cook&Chef = 채수완 칼럼니스트] 지난 글에서 저는 춥고 배고픈 끝에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평생 가장 맛있었던 밥 한 끼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쳤습니다.
“몸에게도 배고플 시간을 선물해 보십시오.”
그런데 왜 몸에는 배고픈 시간이 필요할까요?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 몸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저장해 둔 에너지를 꺼내 쓰기 시작합니다. 자연에서는 아주 익숙한 일입니다.

곰과 철새는 왜 살이 찔까요?

겨울잠을 앞둔 곰은 몸에 지방을 쌓습니다. 먼 여행을 앞둔 철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수 있을 때 저장하고, 겨울잠이나 긴 비행이 시작되면 꺼내 씁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조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음식이 있을 때 남은 에너지를 저장해야 다음 굶주림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조금 역설적으로 말하면,
“Nature wants us fat.” 자연은 우리 몸이 살찌기를 원합니다.
살이 찔 수 있는 능력이 한때는 살아남는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생존을 위한 몸은 그대로인데, 굶주림은 사라졌습니다.
냉장고에는 늘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여전히 저장하려 하는데, 저장한 것을 꺼내 쓸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몸이 저장해 둔 에너지를 얼마나 놀랍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382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1973년 의학 논문에는 심한 비만이었던 27세 남성이 382일 동안 음식 없이 지낸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382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으며 외래에서 의료진의 관찰을 받았습니다.
물은 마셨고, 몸에 필요한 비타민과 미네랄 등은 공급받았습니다.
음식이 들어오지 않자 몸은 저장해 두었던 지방을 꺼내 에너지로 사용했습니다.
물론 이런 장기 단식은 위험할 수 있으며 일반인이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우리 몸은 저장하는 법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저장한 것을 꺼내 쓰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시간에 몸이 하는 일은 이것뿐일까요?

세포 안에도 청소와 재활용이 있습니다

세포 안에서는 매일 오래되고 손상된 물질이 생깁니다.
우리 몸은 이것을 그냥 쌓아 두지 않습니다. 낡고 손상된 것은 분해하고, 다시 쓸 수 있는 재료는 재활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토파지(Autophagy)입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세포 안의 청소와 재활용 시스템입니다.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는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로 201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청소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쌓입니다. 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소와 재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낡고 손상된 물질이 쌓여 세포가 정상적으로 일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기능의 이상은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 당뇨병, 감염과 면역 이상, 암 등 여러 질병과 관련되어 연구되고 있습니다.
오토파지는 세포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세포가 자기 안을 청소하고, 쓸 수 있는 것을 다시 사용하는 몸속 재활용 시스템입니다.

채우는 것만이 건강은 아닙니다

우리는 건강을 생각하면 무엇을 더 먹을지부터 생각합니다. 좋은 음식과 영양소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몸에는 저장한 것을 꺼내 쓰고, 세포 안의 낡은 것을 정리하고 재활용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오래 굶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에게 몇 시간의 공복이 가장 좋은지는 아직 하나의 숫자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합니다.
먹을 때가 있으면 비울 때도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식탁에는 좋은 음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빈 식탁도 필요합니다.

■채수완 박사의 한 줄 처방
먹을 때가 있으면 비울 때도 있어야 합니다. 몸에게도 비우고 정리할 시간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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