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도’ 과일의 시대… 정말 더 달아졌을까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7-14 16:32:32
[Cook&Chef = 조소현 기자] 마트 과일 코너에서는 ‘당도 15브릭스 이상’, ‘18브릭스 보장’, ‘초고당도’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몇 브릭스인가’는 과일의 맛과 품질을 설명하는 주요 판매 문구가 됐다.
과거 농가나 유통 현장의 품질관리 지표에 가까웠던 당도는 이제 소비자가 과일을 고르는 기준이 되고있다. ‘고당도’가 프리미엄 과일을 상징하는 말이 된 지금, 실제 과일도 과거보다 더 달아졌을까.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과수생육·품질관리시스템을 통해 최근 10여 년간 사과와 배(신고), 복숭아, 포도(캠벨얼리), 감귤 등 주요 과일 5종의 당도 변화를 살펴봤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사과와 배, 복숭아, 포도는 조사 지역과 연도에 따라 당도가 오르내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꾸준히 높아지는 공통된 흐름은 나타나지 않았다. 감귤 역시 최근으로 올수록 일관되게 더 높은 당도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 자료만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과일의 평균 당도를 판단할 수는 없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역시 해당 자료가 조사 지점의 과실 생육과 품질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것으로 지역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과일의 당도는 품종과 산지, 기상 조건, 재배 방식 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이 장기 모니터링 자료에서는 ‘요즘 과일은 과거보다 계속 더 달아지고 있다’는 통념을 뒷받침할 공통된 상승 추세를 확인하기 어렵다.
비파괴 당도 측정기 - 당도 측정이 쉬워졌다.
브릭스(Brix)는 과즙 속에 녹아 있는 가용성 고형물의 농도를 나타내는 단위다. 과즙에는 당류뿐 아니라 유기산과 무기질 등도 녹아 있지만, 당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과일에서는 통상 당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15브릭스는 과즙 100g에 가용성 고형물이 약 15g 들어 있다는 의미다. 숫자가 높을수록 대체로 단맛이 강하지만, 과일의 당분만을 따로 측정한 수치는 아니다.
과거에는 과즙을 직접 채취해 당도를 측정해야 했다. 그러나 비파괴 당도 측정 기술이 등장하면서 과일을 자르거나 손상시키지 않고도 내부의 당도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일정 수준 이상의 당도를 충족한 과일만 골라 ‘고당도’나 ‘당도 보장’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과일 전체의 평균 당도가 크게 오르지 않았더라도 소비자가 마트에서 만나는 상품은 달아질 수 있는 이유다.
브릭스가 상품의 기준이 되다
‘고당도’에는 모든 과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하나의 기준이 없다. 과일마다 본래 당도와 산도, 수분 함량이 다른 데다 브릭스라는 숫자도 품종 개발과 생산, 유통 단계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샤인머스캣이다. 높은 당도와 씨 없이 껍질째 먹는 편리함으로 인기를 끌면서 재배면적도 빠르게 확대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전망 2025』에 따르면 전체 포도 재배면적에서 샤인머스캣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3.6%에서 2024년 43.1%로 늘었다. 농촌진흥청은 고품질 샤인머스캣 생산 목표로 당도 18브릭스 이상을 제시한다.
품종 개발 단계에서도 높은 당도는 경쟁력이 됐다. 경상북도농업기술원이 육성한 백도계 복숭아 ‘스위트하백’은 13~14브릭스의 당도를 지닌 신품종이다. 농촌진흥청은 이 품종을 당도가 높고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좋은 품종으로 소개한다.
유통 단계에서는 숫자가 상품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마트는 비파괴 당도선별 검사를 거쳐 11브릭스 이상인 수박을 ‘당도선별수박’으로, 이 가운데 12브릭스 이상은 ‘고당도 수박’으로 구분해 판매한 바 있다.
샤인머스캣의 18브릭스와 복숭아의 13~14브릭스, 수박의 11~12브릭스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국가가 정한 공통의 ‘고당도 기준’이 아니라 각각 고품질 생산 목표와 신품종의 특성, 유통업체의 상품 선별 기준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 사례가 보여주는 방향은 같다. 브릭스는 과일의 당도를 측정하는 숫자를 넘어 품종을 개발하고 품질을 관리하며 상품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다.
높은 당도가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맛은 브릭스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감귤의 소비자 선호도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당도 11브릭스, 산 함량 0.8~1.2%, 당산비 10~15 정도가 적절한 품질 기준으로 제시됐다. 단맛의 크기뿐 아니라 산미와의 균형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사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후지사과의 품질 특성과 관능평가를 비교한 연구에서 전반적인 기호도는 가용성 고형분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지만, 적정 산도와 당산비 역시 기호도와 관련이 있었다.
결국 당도는 맛에서 중요한 요소지만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같은 당도라도 산도가 다르면 느껴지는 맛이 달라지고, 여기에 향과 식감, 품종 고유의 풍미가 더해진다.
과일은 그대로인데, 기준이 달라졌다
마트 진열대에는 어느 때보다 ‘고당도’ 과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공식 장기 조사 자료에서는 주요 과일의 당도가 최근 10여 년간 공통적으로 상승했다는 흐름을 확인하기 어렵다.
달라진 것은 과일 자체라기보다 과일을 고르고 나누고 평가하는 기준이다. 측정과 선별 기술은 더 단 과일을 골라낼 수 있게 했고, 브릭스는 품종의 특성과 상품의 가치를 설명하는 숫자가 됐다.
그러나 과일의 맛은 하나의 숫자로 완성되지 않는다. 단맛과 신맛, 향과 식감, 품종 고유의 개성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하나의 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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