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스토리] “고기 없이도, 오신채 없이도 충분한 식탁” 사찰음식 코스요리 ‘비움’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1-14 17:51:01

미쉐린 가이드 2026 선공개로 이목 집중 수라(지·수·화·풍). 사진=[비움 SNS]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전 세계 미식 트렌드를 이끄는 뉴욕에서도 한식은 주요 화두다. 글로벌 식품산업 컨설팅 기업들이 잇따라 ‘한식’을 식음료 트렌드로 지목하며, 미쉐린 스타 셰프들의 한식 기반 파인다이닝 역시 주목받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천년 전 집밥의 형태를 오늘의 식탁으로 옮긴 곳이 있다. 사찰음식 전문 다이닝 ‘비움’이다.

미쉐린 가이드 2026 서울 선공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비움’은 김대천 셰프가 이끄는 레스토랑으로, 고기와 해산물, 유제품은 물론 마늘·파·부추·달래·흥거 같은 오신채까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제철 채소와 곡물, 직접 담근 장, 그리고 시간의 힘으로 완성한 발효가 식탁을 채운다.

미쉐린 가이드는 비움에 대해 “사찰음식의 깊이를 반영한 절제되고 정제된 한식이 차분한 공간과 어우러져 편안함과 여유를 선사한다”고 평가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콘셉트 아래, 한국 자연에서 자란 채소와 셰프가 담근 전통 장으로 완성한 나물과 장아찌는 이곳의 철학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천년 전 집밥을 오늘의 식탁으로

초조반. 사진=[비움 SNS] 

비움은 사찰음식을 바탕으로 한 전통 채소 한식 레스토랑이다. 사찰음식은 발효와 나물, 채식 문화, 제철 식재료 활용이라는 한식의 중요한 뿌리를 지켜왔다. 여기에 김대천 셰프의 발효와 숙성 노하우가 더해졌다. 그는 ‘세븐스도어’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뒤, 사찰음식의 정신을 자신만의 요리로 풀어내기 위해 3년간 준비해 2024년 12월 비움을 열었다.

김 셰프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진관사에서의 경험이었다. 백양사 천진암을 시작으로 여러 사찰을 찾던 그는, 진관사에서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비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즈넉한 정원과 기와를 연상시키는 돌 슬레이트 지붕이 맞이한다. 한옥의 감수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공간은 목재와 절제된 색으로 구성돼, 자연스럽게 음식에 집중하게 만든다. 평균 두 시간 이상 이어지는 코스를 고려해 의자까지 특별 제작하는 등, 공간의 모든 요소가 식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서비스 역시 “식사하는 동안만큼은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밥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셰프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음식 설명은 짧고, 음료 추천도 요청이 있을 때만 이뤄진다. 

중정에는 실제 장독대가 놓여 있다. 김대천 셰프는 매일 아침 장독을 열고 닫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장을 닦고 상태를 살피며 곰팡이를 걷어내는 반복이 비움의 맛을 만든다.

비움의 메뉴는 런치와 디너 코스로 구성된다. ‘초조반’으로 시작해 ‘수라(지·수·화·풍)’를 거쳐 차와 다과로 마무리된다. 초조반은 조선시대 임금이 새벽에 먹던 첫 식사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떡과 제철 절임, 죽, 곡물 차가 쟁반에 놓인다. 부담 없는 맛이 몸을 깨우며 식사의 리듬을 만든다. 

수라(지·수·화·풍).사진=[비움 SNS] 

이어지는 수라는 ‘지수화풍’의 개념을 따른다. 지(地)는 연잎밥, 말린 호박나물, 고사리 등 땅에서 난 곡물과 나물로 구성된다. 수(水)는 톳두부무침, 파래초무침처럼 해조류와 땅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채수 기반의 맑고 깊은 맛을 전한다. 화(火)는 구운 표고버섯, 고추장 더덕 등 불을 사용한 요리들이 나온다. 풍(風)은 사계절을 담은 반찬들과 유기농 쌀밥 또는 잡곡밥으로 마무리된다. 제철 재료를 쓰는 만큼, 구성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불림, 말림, 데침, 굽기, 발효. 여러 과정을 거쳐 완성된 반찬들은 오신채 없이도 분명한 풍미를 지닌다. 슴슴한데 비어 있지 않고, 소박하지만 깊다. 

고기 없이도 충분한 식탁

사진=[비움 SNS] 

비움은 스스로를 파인다이닝이나 비건 레스토랑, 사찰음식점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김대천 셰프는 그저 “채소로 밥 짓는 집”이라 말한다. 많은 이들이 “고기 없이는 허하다”고 말하지만, 비움의 식탁은 고기 없이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버섯의 식감, 고사리의 풍미, 불향이 스민 만두 한입이 주는 충족감은 고기의 부재를 자연스럽게 잊게 만든다.

세계 미식의 흐름이 한식에 주목하는 지금, 비움은 화려함 대신 절제를 택한다. 자극을 덜어낼수록 맛은 더 분명해진다는 사실을, 비움은 보여준다. 천년 전 집밥을 오늘의 식탁으로 옮긴 비움의 시도는 채소 기반 한식이 나아갈 또 하나의 방향을 보여준다.

청담역 인근에 위치한 비움은 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하며,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브레이크타임이다. 매주 일·월요일은 휴무이며, 예약은 캐치테이블을 통해 가능하다.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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