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안전망의 두 축, 양적 지원과 질적 관리의 현주소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 2025-12-13 11:43:38

생계 위기 가구 위한 '조건 없는 지원'과 집단급식소 '엄격한 위생 점검', 지속 가능한 안전망 구축 위한 두 접근법 분석 경상남도청  사진= 경상남도

[Cook&Chef = 오요리 기자] 먹거리는 생존의 기본 조건이며 인간 존엄의 최후 보루다. 이 명제는 사회가 안정적일 때는 당연하게 인식되지만, 경제 위기나 공중 보건의 위협 앞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최근 국내 두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먹거리 안전망의 상이하지만 상호보완적인 두 축을 명확히 보여준다. 경상남도는 생계 위기 도민에게 조건 없이 식료품을 지원하는 사업을, 대구시는 동절기 노로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집단급식소 위생 점검을 각각 시작했다.

두 정책은 복지와 보건으로 분류되지만, 기저에는 '누구도 먹는 문제로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경남의 사례가 먹거리의 '양적 접근권' 보장이라면, 대구의 사례는 '질적 안전성' 확보다. 이 두 축이 견고하게 맞물려야 지속 가능한 식문화와 건강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본 기사는 경남의 '그냥드림 시범사업'과 대구시의 '동절기 식중독 합동점검'을 심층 분석한다. 각 정책의 사회적 배경과 작동 방식을 살피고, 외식 산업과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해 먹거리 안전망의 미래 방향을 전망한다.

위기 가구의 마지막 버팀목, '그냥드림'

경상남도가 12월부터 김해시에서 시작한 '먹거리 기본보장(그냥드림) 시범사업'은 복지 시스템의 문턱을 낮춘 새로운 형태의 사회 안전망 실험이다. 사업의 핵심은 '조건 없는 지원'이다. 갑작스러운 실직, 질병, 부채 등으로 생계 위기에 처한 도민은 별도의 소득·재산 증빙 없이 신분증만으로 즉시 식료품을 지원받는다.

구체적으로 김해시푸드마켓에서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하루 최대 50명에게 2만 원 상당의 식료품·생필품 꾸러미를 제공한다. 꾸러미는 쌀, 라면 등 주식과 즉석식품, 생필품 3~5개 품목으로 구성되며, 1인당 연간 2~3회 이용 가능하다. 이는 긴급한 허기를 면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치이자, 고립된 위기 가구를 사회적 연결망으로 유도하는 첫 단계다.

이 사업의 본질적 목적은 단순 물품 지원을 넘어선다. 2회차 이용자부터는 의무적으로 복지 상담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기존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던 '숨은 위기 가구'를 발굴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상담 후 개인 상황에 맞춰 긴급복지지원,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공공 지원이나 민간 자원과 연계한다. 즉, '그냥드림'은 식료품을 매개로 복지 시스템의 진입로를 여는 창구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복지 제도의 한계를 보완한다. 복잡한 서류 절차와 까다로운 수급 조건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장벽으로 작용해왔다. 경상남도 복지여성국 김영선 국장이 "먹거리는 누구나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생존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이 사업은 2021년 경기도에서 시작된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를 모델로 하며, 보건복지부가 2026년 정식 도입을 검토 중인 정책의 선행 모델로서 의미가 크다.

보이지 않는 위협, 노로바이러스와의 전쟁

경남이 양적 먹거리 보장에 집중하는 동안, 대구시는 질적 안전성 확보에 행정력을 투입한다. 대구시는 12월 10일부터 내년 2월 27일까지 80일간, 지역 내 병원, 산업체 등 집단급식시설 709곳을 대상으로 동절기 식중독 예방 합동점검에 돌입했다. 이 시기 점검의 주된 표적은 노로바이러스다.

노로바이러스는 급성 위장염을 유발하며 낮은 온도에서 생존력이 강해 겨울철 식중독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2년) 발생한 노로바이러스 식중독 환자는 연평균 1,031명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95명(48%)이 12월에서 2월 사이에 발생했다. 오염된 음식이나 물, 감염자의 분비물을 통해 쉽게 전파될 만큼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특성상 집단생활이 이뤄지는 급식시설의 관리는 공중 보건에 직결된다. 조리 종사자 한 명이 감염될 경우, 수백 명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식중독 사태로 확산될 수 있다. 대구시의 점검 항목이 세밀하고 엄격한 이유다. 점검단은 소비기한 경과 제품 사용, 부패·변질 원료 사용, 비위생적 식품 취급 등 기본 사항부터 종사자 건강진단 이행, 지하수 수질 검사 여부까지 위생 관리 전반을 점검한다.

이는 단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구시는 730곳을 점검해 보존식 미보관, 소비기한 경과 제품 보관 등 4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행정처분을 내렸다. 사소해 보이는 위반이 대형 사고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노권율 대구시 위생정책과장이 "취약시설 안전 관리를 강화해 집단 식중독 발생을 예방하고, 시민이 안심할 수 있는 급식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은 예방적 조치의 중요성을 대변한다.

양적 지원과 질적 관리, 외식 산업에 미치는 영향

경남의 '그냥드림'과 대구의 위생 점검은 각각 복지와 보건 영역에 속하지만, 외식 산업과 소비자에게는 통합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먹거리의 양적·질적 안전망이 붕괴될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곳이 외식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냥드림' 사업은 기부식품을 활용해 푸드마켓, 푸드뱅크 시스템과 직결된다. 이는 식품 제조업체, 유통업체, 대형 외식업체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과 연결된다. 유통기한이 임박했지만 안전한 식품이나 과잉 생산된 식자재 기부 문화가 활성화될수록 사업은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이는 기업 이미지 제고는 물론, 재고 관리 비용 절감과 음식물 쓰레기 감축이라는 실질적 이익으로 이어진다.

반면, 대구시의 위생 점검은 단체급식과 케이터링 업계에 직접적인 규제로 작용한다. 단기적으로는 비용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강화된 위생 기준 충족을 위한 시설 개선, 종사자 교육 강화, 식자재 검수 철저 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는 산업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필수 과정이다. 한 번의 식중독 사고가 산업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고려하면, 선제적 점검은 오히려 산업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두 정책 모두 긍정적이다. 경제적 위기 시 최소한의 식생활을 보장받는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동시에 이용하는 급식 시설이 안전하게 관리된다는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신뢰는 외식 소비를 촉진하는 기반이 된다. 결국 양적 지원을 통한 사회 안정과 질적 관리를 통한 식품 안전은 외식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지속 가능한 먹거리 안전망을 향하여

경남과 대구의 사례는 한국 사회 먹거리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바로 '보편적 접근성'과 '엄격한 안전성'이라는 두 바퀴를 함께 굴리는 것이다. 한쪽만으로는 전진할 수 없다. 안전한 먹거리가 풍부해도 구매 능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반대로, 많은 음식을 지원받아도 위생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면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될 수 있다.

향후 정책은 이 두 가치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냥드림' 같은 지원 사업에 제공되는 기부식품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별도의 위생 점검 및 유통 이력 관리 시스템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집단급식소 위생 점검 시 영양 불균형 문제까지 컨설팅하여 취약계층의 식생활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먹거리 안전망은 정부 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식품 생산·유통 기업, 조리·판매 외식업계, 그리고 소비자인 시민 모두의 참여가 요구된다. 기업은 안전한 식품을 생산하고 잉여 자원을 사회에 환원하며, 외식업계는 철저한 위생 관리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소비자는 안전한 먹거리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나눔에 동참하는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

경남의 온정과 대구의 철저함은 다른 형태를 띠지만, '사람을 향한 먹거리'라는 동일한 지향점을 갖는다. 이 두 노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정교하게 다듬어질 때, 우리 사회의 먹거리 안전망은 더욱 촘촘하고 튼튼해질 것이다. 이는 배고픔과 질병을 막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 전체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투자다.

Cook&Chef /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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