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잠 깨우는 다섯 가지 매운맛"... 입춘(立春) 절기 음식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6-02-04 15:40:45
Nano banana (Google)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이경엽 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의 새해 첫 관문인 '입춘(立春)'이 다가왔다. 태양의 황경이 315도에 도달하는 2월 4일 오전 5시 2분, 명리학적으로는 비로소 '뱀띠'의 해가 저물고 새로운 기운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비록 살을 에는 추위가 여전해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이 실감 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날을 진정한 봄의 시작으로 여겨 몸과 마음을 정비했다. 특히 입춘 절기 음식은 긴 겨울 동안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고, 부족했던 영양소를 보충하며 한 해의 무사태안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례였다.
봄의 미각을 깨우는 자극, '입춘오신반(立春五辛盤)'
입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오신반'이다.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나물로 만든 이 음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재료의 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겨울철 결핍되었던 신선한 비타민을 보충한다는 본질은 같다.
김정숙 전남과학대학 명예교수는 저서 『열두 달 세시풍속과 절기음식』을 통해 "입춘날 한양 근처 경기도 고을에서 움파·산갓·신감채(움에서 키운 당귀싹)·미나리싹·무싹 등으로 '오신반'을 만들어 진상하고, 선물로 주고받았다"고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산갓은 초봄 눈 녹을 무렵 움트는 싹을 채취하여 끓는 물에 데쳐 초장에 무쳐 먹는데, 그 매운맛이 일품이라 고기 요리와 곁들이기에 최적이었다고 전한다.
또한 신감채는 "은동곳처럼 깨끗하며 꿀에 찍어 먹으면 맛이 매우 좋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선조들이 아꼈던 식재료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는 이 오신반의 의의를 "엄동(嚴冬)을 지내는 동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게 한 것"이라 정의하며, 겨자와 함께 무쳐 먹는 생채 요리로서의 특징을 강조한다.
민간에서는 이를 본떠 '세생채(細生菜)'라 부르는 햇나물을 뜯어 무쳐 먹기도 했다. 파, 겨자, 당귀의 어린 싹으로 만든 '입춘채(立春菜)'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이웃 간에 정을 나누고 함께 건강을 기원하는 매개체였다.
액운을 막고 건강을 챙기는 지혜, '시래기떡'과 '무'
입춘에는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액막이'의 의미를 담은 음식도 즐겼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래기떡'이다. 김정숙 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은 "김장철에 말려 두었던 시래기를 삶아 양념하여 송편 속에 넣어 쪄서 먹으면 한 해의 병과 액운을 면해 준다"고 믿었다. 이는 겨우내 저장해 둔 식재료를 알뜰하게 활용하면서도 가족의 안녕을 비는 소박한 마음이 담긴 풍습이다.
지역별 독특한 식습관도 눈에 띈다. 함경도 북청 지역에서는 입춘날 무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이날 무를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 무를 즐겨 먹었으며, 잡곡밥 대신 흰쌀밥을 지어 먹으며 새 기분을 냈다고 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입춘 무렵 보리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임을 기념해 '보리밥'을 지어 먹으며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미리 축하했다.
함경도의 별미, '명태순대'와 등심의 기운
북쪽 지방, 특히 함경도와 함남 지역에서는 입춘을 '나이 먹는 날'로 여겼다. 이날을 기념해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명태순대'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함경도 민간에서는 명태의 속을 비우고 그 안에 갖은 양념과 재료를 채워 넣은 순대를 만들어 먹으며 입춘의 명절 분위기를 즐겼다.
함남 홍원 지역의 흥미로운 속신도 있다. 이곳 남성들은 입춘날 명태를 통째로 쪄서 먹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등심(근력)이 좋아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는 한 해 농사나 고된 노동을 앞두고 체력을 비축하려는 남성들의 실용적인 소망이 투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음식 그 이상의 의미: 점복(占卜)과 농경 의례
입춘의 음식 문화는 먹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식재료를 통해 한 해의 농사를 점치는 '점복'으로 이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맥근점(麥根占)'이다.
『열두 달 세시풍속과 절기음식』에서는 이를 "봄의 문턱에서 미리 보릿고개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풍속"이라 평한다. 농가에서는 입춘날 보리뿌리를 캐어보아 그 수에 따라 풍흉을 점쳤다.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거나 없으면 흉년이라 여겼다. 경기도 시흥이나 여주 등지에서는 중간뿌리가 다섯 개 이상이어야 풍년이라 보는 등 지역마다 세부 기준은 달랐으나, 식물의 생명력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 했던 농심(農心)은 한결같았다.
제주도에서는 더욱 화려한 '입춘굿'이 펼쳐졌다. 나무로 만든 소(木牛)에게 제사를 지내고, 호장이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시늉을 하며 풍년을 기원했다. 또한, 솥에 오곡 씨앗을 넣고 볶아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될 것이라 점치는 '곡식 볶기' 행사도 성행했다.
현대에 되새기는 입춘 절기 음식의 가치
입춘은 24절기의 첫머리이자 만물이 소생하는 지점이다. 비록 현대 사회에서 입춘방을 대문에 붙이거나 보리뿌리를 캐는 풍경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정신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입춘오신반의 매콤하고 알싸한 맛은 겨울의 나태함을 깨우는 경종이며, 시래기떡에 담긴 액막이의 염원은 가족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다. 입춘을 맞아 제철 나물과 따뜻한 보리밥 한 그릇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넘어 2026년 한 해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될 수 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을 세워 크게 길하고 경사가 많기를 바라는 그 문구처럼, 오늘 우리 식탁 위에 올린 정성 어린 입춘 절식 한 접시가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따스한 봄기운을 먼저 실어다 주길 기대해 본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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