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의 식탁, 실버푸드가 바꾸는 맛의 풍경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 2025-11-05 16:55:00

2030년 5조 원 시장 전망
일본, 대만에선 이미 식탁의 세대교체 이뤄져

사진 =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송채연 기자] 요즘 어르신들의 식탁 위엔 작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칼을 잡던 손이 리모컨을 쥐고, 냄비 대신 전자레인지가 식사를 완성한다. 한 끼를 위한 노력이 줄어든 대신, 음식은 더 부드럽고 섬세해졌다. ‘씹기 쉬운 밥’, ‘삼키기 편한 반찬’이란 이름의 실버푸드가 새로운 식문화로 떠오른 것이다. 고령화의 파도 속에서 식품업계는 이 시장을 ‘복지’가 아닌 ‘기회’로 읽고 있다.

‘연화식’부터 정기배송까지, 부드러움의 기술

국내 식품업계는 빠르게 성장 중인 실버푸드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1000억 원을 들여 ‘스마트 푸드센터’를 세우고, 잇몸으로도 부드럽게 씹을 수 있는 ‘연화식’ 제품을 생산한다. 소고기나 생선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포화증기오븐으로 질감을 부드럽게 조리하고, 급속 냉동 설비를 통해 영양 손실을 최소화한다. 이 회사는 이미 16종의 고령친화우수식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30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풀무원은 자체 온라인몰 ‘#풀무원’을 통해 실버푸드 정기배송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요양시설 중심이던 공급 모델을 가정용으로 확장하면서, “냉동식인데도 집밥 같다”는 평가를 얻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9% 증가했다. CJ프레시웨이는 요양시설용 브랜드 ‘헬씨누리’에 이어 네이버쇼핑 등 이커머스를 통해 개인 고객층을 확보하며 시니어 식자재 매출이 20% 넘게 성장했다.

대상웰라이프는 실버푸드 대표 브랜드 ‘뉴케어’를 기반으로 환자·고령층 영양식을 넘어 당뇨 맞춤형 식품, 간식형 제품군까지 넓혀가고 있다. 특히 ‘뉴케어 당플랜’ 시리즈는 누적 판매 1억 팩을 돌파하며 기능성 영양식 시장을 이끌고 있다.

실버푸드, ‘노인식’ 아닌 ‘모두의 음식’으로

일본과 대만은 이미 실버푸드 산업의 길을 앞서 걸었다. 일본은 2000년대 초 ‘유니버설 디자인 푸드(UDF)’ 제도를 도입해 음식의 질감과 삼킴 난이도를 4단계로 표준화했다. 포장엔 ‘조금 부드럽게’, ‘작은 사이즈’ 같은 문구를 써 고령자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도 거부감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대만은 정부 인증제 ‘Eatender’를 도입해, 식감·위생·영양 기준을 충족한 제품에 ‘실버푸드 인증 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병원이나 시설을 넘어 편의점·마트에서도 실버푸드를 판매하며 일상식으로 확장시켰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실버푸드 시장도 ‘특수식’의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노인용 식품’이 아닌 ‘건강을 위한 부드러운 식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60대 이상 소비자의 다수는 자신을 ‘노인’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실버푸드는 필요하지만, ‘노인식’이라는 단어는 매력적이지 않다. 결국 실버푸드의 진정한 성장 동력은 기술력보다 ‘언어의 온도’에 있을지 모른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그만큼 실버푸드 시장의 잠재력은 거대하다. 씹기 쉽고 삼키기 편한 식사, 영양이 가득한 한 끼는 이제 특정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보편식’의 시대 그 중심에 실버푸드가 있다.

Cook&Chef /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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