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펼쳐진 우리의 자화상, 개인 소비 40%로 본 한국인의 ‘먹는 즐거움’

길라떼 기자

cnc02@hnf.or.kr | 2026-01-07 19:18:43

건강, 효율, 글로벌, 개인화 키워드로 분석한 현대인의 식문화 지형도
CJ제일제당 조사로 본 미식 트렌드의 심층 해부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길라떼 기자] 늦은 밤, 잠 못 이루고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은 먹음직스러운 음식 영상 위에서 멈춘다. 지글거리는 소리, 선명한 색감의 향연,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듯한 맛의 감각.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비단 허기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이자, 가장 확실한 행복이며, 나를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언어다.

CJ제일제당이 10대부터 70대까지 2000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식(食) 라이프스타일 조사 결과는 이러한 일상의 단상을 명확한 데이터로 증명한다. 한국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보는 유튜브 콘텐츠도, 가족 공동 생활비를 제외하고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개인 생활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먹거리’였다. 그 비중은 무려 40%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소비를 넘어선다. 음식은 이제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자, 가장 적극적인 투자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먹는지로 자신을 정의하고, 누구와 어떻게 먹는지를 통해 관계를 맺으며, 한 끼의 식사를 통해 고된 하루의 위안을 얻는다. 지금 우리의 식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우리 사회의 어떤 변화와 욕망을 담고 있을까.

40%의 미학,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

개인 소비의 40%라는 수치는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패션, 뷰티, 여행 등 개인의 만족을 위한 다른 모든 항목을 제치고 음식이 최우선 순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왜 우리는 이토록 먹는 것에 진심이 되었을까. 이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불확실한 미래 대신 오늘의 작은 즐거움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가 한 끼의 맛있는 식사,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의 미식 경험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과거의 식사가 ‘결핍의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면, 현재의 식사는 ‘경험의 창출’에 가깝다. 우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음식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미각적 쾌감을 탐닉하며, 그 순간을 SNS에 공유하며 타인과 소통한다. CJ제일제당의 조사에서 유튜브 콘텐츠 소비 1위가 음식으로 나타난 것은 이를 방증한다. 우리는 먹는 행위 자체만큼이나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나누는 것을 즐긴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 패턴을 더욱 섬세하고 다각적으로 만들었다. 똑같은 예산이라도 어떤 날은 가성비 좋은 한 끼로 해결하지만, 다른 날은 특별한 미식 경험을 위해 과감히 투자한다. 이 모든 선택의 기준은 ‘나의 만족’이다. 먹는 행위가 생존의 영역에서 자기표현과 라이프스타일의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우리의 식탁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식문화 지형도, ‘D.E.E.P’하게 들여다보기

CJ제일제당은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2026년 한국 식문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D.E.E.P’을 제시했다. 이는 건강 식단의 일상화(Daily Wellness), 요리 과정의 단순화(Efficiency), 식사 메뉴의 글로벌화(Exotic), 식사 행태의 개식화(Personal)를 의미한다. 이 네 가지 키워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현대인의 복합적인 욕망과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먼저, ‘건강 식단의 일상화(Daily Wellness)’는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의 유별난 관리가 아니다. 조사 응답자의 53%가 고혈압, 비만 등 질병을 경험했고, 86%가 식단 조절을 통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건강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건강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직접 요리한 집밥(45%)’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무려 68%의 응답자가 ‘간편식이나 밀키트도 건강한 음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요리 과정의 단순화(Efficiency)’라는 두 번째 키워드와 곧바로 연결된다. 바쁜 현대인에게 시간은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이다. 응답자의 65%는 ‘식사 준비에 시간을 크게 들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건강한 식단을 원하지만, 그를 위해 복잡하고 긴 과정을 감내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간편식과 밀키트는 ‘건강한 편리함’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으며 진화하고 있다. 20~30대 응답자의 45%가 간편식에 신선한 재료를 추가하는 행위 역시 ‘요리’라고 인식하는 것처럼, 요리의 개념 자체가 효율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식탁 위에서 만나는 세계, 그리고 나 자신

효율성을 통해 확보된 시간과 에너지는 우리를 더 넓은 미식의 세계로 이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식사 메뉴의 글로벌화(Exotic)’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의 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우리의 미각은 국경을 넘어 확장됐다. 30대의 56%는 ‘해외여행에서 먹었던 음식을 한국에서도 찾는다’고 답했고, 20대의 52%는 ‘해외 요리를 위해 소스 등을 구비하고 직접 시도한다’고 밝혔다. 이제 식탁은 세계여행을 떠나는 가장 손쉬운 플랫폼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한식’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30대 이하 응답자의 61%는 치킨이나 짜장면처럼 한국에 들어와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음식도 한식의 범주로 인식했다. 이는 한식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외부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재창조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살아있는 문화임을 보여준다. 우리의 식탁에는 고추장과 된장 옆에 스리라차 소스와 발사믹 식초가 나란히 놓여있고, 김치찌개와 파스타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이 모든 흐름은 결국 마지막 키워드, ‘식사 행태의 개식화(個食化, Personal)’로 귀결된다. 건강, 효율, 취향 등 식사에 대한 가치관이 극도로 세분화되면서 ‘모두를 위한 식사’는 점점 힘을 잃고 있다. ‘평일 모든 식사를 가족과 따로 한다’는 응답이 24%에 달하는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가족 관계의 해체가 아니라,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필요를 존중하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CJ제일제당이 분류한 17가지의 식생활 ‘페르소나’는 이러한 초개인화 트렌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가족 식사를 기획하고 책임지는 ‘홈파파’, 커리어를 위해 효율적인 식사를 추구하는 ‘머니홀릭·워커홀릭’, 건강 관리에 가치를 두는 ‘웰니스 유지어터’, 규칙적인 집밥을 선호하는 ‘시니어 커플’, 배달과 편의점을 적극 활용하는 ‘틴에이저’ 등 각 페르소나는 자신만의 기준과 방식으로 식사를 디자인한다. 이제 한 지붕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고단백 식단을, 누군가는 비건식을, 또 다른 누군가는 간편식을 즐기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식탁의 변화가 말해주는 사회의 변화

식문화의 변화는 단순히 먹는 방식의 변화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동을 비추는 거울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두드러진 ‘홈파파’의 등장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남성이 요리 등 가사와 육아를 전담할 수 있다’는 응답이 73%에 달하고, ‘맞벌이를 유지하거나 계획 중’이라는 응답이 61%라는 사실은 더 이상 여성이 가사를 전담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시사한다.

‘홈파파’의 등장은 주방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이들은 효율성과 기능성을 중시하며, 레시피와 조리 도구, 간편식 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활용한다. 이들의 증가는 식품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남성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밀키트, 요리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소스류, 복잡한 과정을 생략해 주는 반조리 식품 시장의 성장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또한, ‘삼시 세끼를 꼭 챙길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70%에 달하고, 하루 평균 2.3끼를 먹는다는 결과는 전통적인 식사 규범이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시간적 구분보다 개인의 생체 리듬과 스케줄에 맞춰 식사를 해결하는 유연한 식생활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인 가구의 증가, 유연 근무제의 확산 등 사회 구조의 변화가 식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래의 식탁, 더 깊고 넓어질 미식의 세계

이러한 식문화의 ‘D.E.E.P’한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CJ제일제당이 고단백·저당·저염 등 건강을 겨냥한 제품군을 확대하고, 간편 조리를 돕는 소스류와 1~2인분 소용량 제품을 강화하며, 글로벌 메뉴와 관련 제품을 선보이는 것은 이러한 미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다. 소비자의 식생활이 개인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다변화되는 만큼, 식품 산업 역시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해답’을 제시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미래의 식탁은 더욱 개인화되고, 건강 지향적이며, 경계 없이 다채로워질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개인의 건강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식단을 추천하고, 로봇이 요리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며, 가상현실을 통해 세계 각지의 미식 경험을 안방으로 가져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것은 ‘먹는 즐거움’이 주는 위안과 행복의 가치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먹는가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과 같다. 건강한 삶, 효율적인 삶, 다채로운 경험으로 가득한 삶, 그리고 온전히 나다운 삶. 오늘 당신의 식탁 위에는 어떤 당신의 모습이 담겨 있는가. 분주한 일상 속, 잠시 멈추어 나의 식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가 먹는 것에 진심인 진짜 이유다.

Cook&Chef / 길라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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