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일식의 문턱은 낮추고 기준은 높인 셰프
정서윤 기자
cnc02@hnf.or.kr | 2026-05-14 16:26:16
[Cook&Chef = 정서윤 기자] 정호영 셰프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방송에서 편안하게 웃고, 농담을 받아치고, 예능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사람.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대중에게 익숙해졌고, 여러 프로그램을 지나며 그는 어느새 가장 친근한 셰프 중 한 명이 됐다. 사람들은 그를 유쾌한 셰프, 방송을 잘하는 요리사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얼굴만으로 정호영을 설명하기에는 빠지는 것이 많다. 그의 친근함은 본업의 무게를 덜어낸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일식이라는 음식이 가진 태도와 기준을 오래 배웠고, 그것을 한국의 손님에게 더 편하게 전하기 위해 자기 방식으로 풀어온 사람이다. 정호영은 일식의 문턱을 낮췄지만, 일식의 기준까지 낮추지는 않았다.
그가 일식의 기준을 어떻게 지켜왔는지는 말보다 식당의 형태에서 먼저 드러난다. 그 식당의 이름이 바로 카덴이다. 우동 카덴, 이자카야 카덴, 로바다야 카덴으로 이어지는 이름은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다. 카덴은 그가 일본 오사카의 츠지조리사전문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실습실의 이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주방에서 요리하고, 홀에서 손님을 맞고, 때로는 손님 입장에서 음식을 먹어보는 경험을 반복했다. 요리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음식이 손님에게 닿기까지의 전 과정을 몸으로 익히는 자리였다.
그 이름을 자신의 식당에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덴은 정호영에게 초심의 이름이다. 일식을 처음부터 다시 배운 시간, 주방과 홀과 손님 사이의 관계를 배운 시간, 요리사는 음식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끼의 경험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배운 시간이다. 그러니 카덴이라는 이름에는 그가 일식을 대하는 태도가 들어 있다.
일식을 배운다는 것, 문화를 배운다는 것
정호영의 출발은 식당과 멀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식집과 포장마차, 함바집을 하며 오래 일했다. 어린 시절 그는 식당과 집이 붙어 있는 환경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손님과 음식, 장사의 흐름을 보며 컸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둔 것은 익숙한 한식이 아니라 일식이었다. 카운터에서 손님을 마주 보고 요리하는 모습, 계절을 음식 안에 담아내는 감각, 재료와 손님의 반응을 바로 읽어내는 태도가 그를 이끌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군복무 이후 그는 요리학원에 다녔고, 홍대 인근의 작은 이자카야에서 주방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장이 그만두며 혼자 주방을 맡는 상황도 겪었다. 하지만 그때 그는 자신의 한계를 보았다. 메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요리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더 배워야 한다는 감각이 분명해졌고, 결국 그는 일식당에서 혹독하게 기본기를 다졌다.
일식당에서의 시간은 만만하지 않았다. 긴 근무 시간과 적은 휴일, 체력적으로 버거운 현장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버텼다. 힘들어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 유학을 결심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는 그 나라의 요리는 그 나라에 가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와 문화, 식재료와 계절을 알아야 음식도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떠난 유학이었다. 처음에는 가장 낮은 반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공부로 올라섰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야키니쿠 전문점에서 일했고, 설거지부터 김치 담그기, 소스 만들기까지 맡았다.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에 더 나은 조건의 일식당에서 일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돈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수산시장 안의 생선 손질 식당에서 일했다. 비늘을 치고, 생선을 다루고, 손끝으로 재료의 상태를 익히는 시간이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요리에 오래 남았다. 그는 생선 손질, 제면, 조림, 가이세키의 계절감, 홀 서비스까지 배웠다. 일식은 그에게 기술의 목록이 아니었다. 어떤 재료를 언제 쓰는지, 어떤 색과 온도가 계절을 담는지, 손님 앞에서 셰프가 어떤 태도로 서야 하는지까지 포함하는 세계였다. 정호영이 일식을 존중한다는 말은 이론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는 그 존중을 몸으로 배웠다.
귀국 후 스시효에서 만난 안효주 셰프 역시 중요한 스승이었다. 새벽 시장에서 좋은 재료를 고르고, 식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으며, 직원에게도 좋은 음식을 먹이는 태도는 정호영에게 깊게 남았다. 그는 안효주 셰프를 보며 자신도 언젠가 직원들이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호영의 일식은 일본에서 배운 기술과 한국에서 다시 다듬은 기준이 겹쳐진 결과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일본에서 배운 기준을 그대로 옮겨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호영은 그 기준을 한국의 손님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다시 풀었다. 일식의 태도는 지키되, 손님이 다가오는 길은 더 넓혔다. 그 결과가 우동과 이자카야를 중심으로 한 카덴의 방식이었다.
부담은 낮추되, 한 그릇은 가볍게 만들지 않는 방식
정호영이 처음부터 우동과 이자카야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가이세키 같은 고급 일식에도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식당으로 선택한 방향은 손님이 편하게 들어오고, 부담 없이 먹고, 충분히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는 일식이었다. 카덴의 핵심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그는 좋은 재료를 비싸게 내는 것보다, 좋은 재료를 손님이 납득할 수 있는 가격과 양으로 내는 일을 더 고민했다. 금태처럼 원가가 높은 재료를 다룰 때도 “내가 이 돈을 주고 먹어도 만족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우동 카덴 역시 누구나 편히 즐길 수 있는 식당으로 만들고자 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기준을 낮춘 것이 아니라, 손님의 만족을 기준으로 가격과 구성을 다시 본 것이다.
그가 우동을 선택한 이유도 이와 닿아 있다. 일본 유학 시절,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천 엔 이하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다 우동을 만났다. 우동은 문턱이 낮았고, 종류가 다양했으며, 면발이라는 바탕 위에 무엇을 얹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됐다. 그는 우동을 캔버스처럼 여겼다.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끝없이 예민해야 하는 음식. 그것이 우동이었다.
카덴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은 “우리는 하루에 우동 500그릇을 만들지만, 손님에게는 한 그릇의 우동”이라는 기준이다. 주방에서는 반복되는 일이지만, 손님에게는 그날 먹는 한 끼다. 요리사에게는 수백 그릇 중 하나일 수 있어도, 손님에게는 그 식당을 판단하는 단 한 그릇이다. 그래서 정호영은 직원들에게 아니다 싶은 음식은 절대 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 기준은 면을 삶는 시간에도 적용된다. 생면은 몇 초 차이로 탄력과 질감이 달라진다. 면수의 상태, 튀김의 온도, 국물의 균형, 손님에게 나가는 순간의 완성도는 모두 한 그릇 안에서 결정된다. 우동은 친근한 음식이지만, 친근하다고 해서 대충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정호영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자카야 카덴도 마찬가지다. 이자카야는 퇴근 후 편하게 들러 술 한잔과 요리를 즐기는 공간이지만, 그 안의 음식은 가볍지 않다. 제철 생선을 고정 가격으로 내는 모듬회, 손질과 튀김에 공을 들인 제주 은갈치 튀김, 전복과 무를 조리해 조화롭게 낸 요리, 옥돔의 비늘과 살의 질감을 살린 구이까지 카덴의 접시에는 일식의 기본기와 정호영의 해석이 함께 담긴다.
그는 일식을 높고 어려운 곳에만 올려두지 않았다. 대신 손님이 매일의 식사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재료를 보는 눈, 계절을 생각하는 태도, 조리의 정밀함, 손님에게 내는 한 그릇의 책임은 내려놓지 않았다. 그래서 카덴의 대중성은 가벼움이 아니라, 기준을 지킨 채 거리를 좁힌 방식이다.
그런데 대중이 먼저 만난 정호영은 이런 치열한 오너 셰프의 얼굴보다 방송 속 유쾌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정호영에게 방송은 기회이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계속 확인해야 하는 무대가 됐다.
방송의 얼굴, 주방의 뿌리
정호영은 방송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그에게 대중과 만나는 길을 열어준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여러 예능에 출연하며 그는 유쾌한 셰프, 편안한 방송인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때로 그를 고민하게 했다. 방송인으로 불리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뿌리는 언제나 “요리하는 정호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방송 촬영이 없는 날이면 가능한 한 매장 주방을 지키려 한다. 유명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서 손님이 한 번은 올 수 있다. 하지만 맛이 없으면 두 번은 오지 않는다. 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방송은 손님을 데려올 수 있지만, 식당을 오래 남게 하는 것은 결국 음식이다. 그래서 방송으로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그는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대가 커진 만큼, 한 번의 실망도 더 크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입점 제안을 고민하다 접은 일도 이 기준과 연결된다. 기존 우동 카덴의 메뉴와 품질을 그대로 구현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그 확장은 브랜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코로나 시기 배달을 두고 고민하다 포장을 택한 것도 마찬가지다. 더 빨리 팔 수 있는 방식보다, 음식의 신선도와 매장 경험을 해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오너 셰프로서의 어려움도 작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 매출이 급감했고, 인건비와 월세 같은 고정비가 무겁게 다가왔다. 여러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화려한 성과만 의미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생계, 재료의 퀄리티, 손님의 만족, 매장마다 유지해야 하는 맛의 균형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 정호영의 친근한 얼굴 뒤에는 이런 현실을 매일 감당하는 오너의 시간이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오래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을 자주 드러낸다. 예전처럼 강하게 몰아붙이는 방식만으로는 요즘 세대와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먹이고, 더 대화하고, 한쪽 눈을 감는 법도 배워간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기준은 남는다. 손님에게 나가는 음식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는 것,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가 생각하는 리더는 직원들이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흑백요리사2>는 그에게 더 큰 의미를 가졌다. 방송에서 친근해진 셰프가 다시 한 번 요리로 평가받는 자리였고, 정호영은 그 무대에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꺼내 보여줘야 했다.
흑백요리사2, 다시 셰프로 보인 시간
<흑백요리사2>는 정호영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는 이미 스타 셰프였고, 방송에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경연 출연은 더 부담스러웠다. 대중에게 친숙한 만큼, 요리 실력에서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는 시즌1 섭외를 거절했지만, 시즌2에서는 결심했다. 방송인으로만 아는 사람들에게 일식 전문 요리사로서의 본캐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경연에서 정호영이 보여준 것은 화려한 승부욕보다, 자신이 어디서부터 배워왔는지를 다시 꺼내는 태도였다. 그가 가장 자신답게 풀어냈다고 말한 대결은 아귀 대결이었다. 방송에서는 즉석에서 진행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준비 시간 동안 아귀라는 재료를 어떻게 다룰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일본 유학 시절 수산시장 안 생선 손질 식당에서 돈을 받지 않고 일하던 때를 떠올렸다. 초심으로 돌아가, 생선을 손질하는 과정부터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귀 거치대를 만들고, 손질과 조리의 방식을 준비했다.
그 장면은 정호영의 과거와 현재가 만난 순간이었다. 방송의 미션 앞에 선 스타 셰프가 아니라, 다시 생선을 배워가던 유학 시절의 정호영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그가 <흑백요리사2>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웃고 떠드는 방송인의 얼굴이 아니라, 손질하고 고민하고 끝까지 한 접시를 밀고 가는 일식 셰프의 얼굴이다.
기술을 꺼내 보인 장면이 아귀 대결이었다면, 셰프들 사이의 존중을 보여준 장면은 샘킴 셰프와의 맞대결이었다. 오랜 방송 동료였고, 같은 팀으로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다음 미션에서 맞대결 상대가 됐다. 정호영은 이기고도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승부는 승부였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에 쉽게 웃을 수 없었다. 이 장면은 예능적 재미를 넘어, 셰프들이 서로를 어떻게 존중하는지 보여준 순간이었다.
최종 톱4라는 결과도 의미가 있었다. 그는 우승하지 못한 아쉬움을 말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쏟아냈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절실함이었다. 오래 요리한 사람에게 다시 신인처럼 떨리는 감각,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 요리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자각이 돌아왔다. <흑백요리사2>는 정호영에게 다시 경쟁을 통과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신이 왜 요리를 계속하는지 확인한 시간이었다.
한 그릇에 남는 사람
정호영 셰프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유쾌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조금 달리 보인다. 그는 일식을 어렵게 포장하지 않는다. 우동과 이자카야처럼 손님에게 친숙한 형식을 택했고, 가격과 양에서도 부담을 줄이려 했다.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레시피를 나누고, 요리를 더 많은 사람이 즐기게 하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그 친근함은 기준을 낮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기준을 지키기 위해 손님에게 더 가까운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일식의 계절감, 생선과 면의 섬세함, 손님을 대하는 태도, 한 그릇의 책임은 그대로 두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옮겼다.
정호영이 말하는 요리의 본질은 거창하지 않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내 돈을 내고 먹어도 납득할 수 있는 가격, 다시 오고 싶은 만족감, 500그릇 중 하나가 아니라 손님 앞의 단 한 그릇이라는 기준이다. 이 기준은 우동 한 그릇에도, 이자카야의 한 접시에도, 경연의 한 장면에도 이어진다.
정호영은 방송에서 유쾌한 사람이다. 하지만 주방 안의 그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일식의 태도를 붙들어온 사람이다. 카덴이라는 이름에 초심을 담고, 우동이라는 친근한 음식에 정밀함을 담고, 이자카야라는 편한 공간에 계절과 재료의 감각을 담아왔다.
그래서 정호영의 일식은 문턱은 낮지만 기준은 낮지 않다. 그가 지켜온 것은 어려운 말로 포장된 권위가 아니라, 손님이 받아드는 한 그릇 앞에서 요리사가 끝까지 가져가야 할 태도다. 유쾌함 너머 카덴에 남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이다. 친근하게 다가가되, 한 그릇의 본질은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셰프 정호영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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