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스토리] “쫄깃·탱글 이런 식감 처음” 우리밀과 달걀로 빚은 난면 요리 ‘서교난면방’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2-23 18:02:54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 2025 ‘서교난면방’
이탈리안과 한식이 만나 새로운 난면 탄생 
우리밀 네 종류(강력분, 중력분, 통밀, 흑밀)를 블렌딩해 계란만 넣어 반죽한 난면과 라비올리. 사진=[서교난면방 SNS]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마포구 서교동, 조용한 골목 한편에 자리한 서교난면방은 첫인상부터 담백하다. 화려한 간판도, 요란한 연출도 없다. 대신 가게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제면실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면을 뽑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곳의 정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근 ‘생활의달인’ 방송에 물 한 방울 쓰지 않고 달걀로만 반죽한 ‘난면’을 선보이는 김낙영 셰프가 달인으로 소개되며 이곳은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실 서교난면방은 오픈한지 1년도 안 돼서 2025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된 레스토랑으로, 이탈리안 퀴진 전문으로 ‘카밀로 라자네리아’를 운영하는 김낙영 셰프의 새로운 시도다. 파스타와 라자냐를 다뤄온 그는 이곳에서 ‘난면’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한국적이면서도 이탈리안 감성이 가미된 독창적인 면 요리”라며, 김 셰프가 그 경계 위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식재료와 이탈리안 조리법의 만남 

사진=[서교난면방 SNS]

서교난면방의 난면은 물을 한 방울도 쓰지 않는다. 우리밀 네 종류(강력분, 중력분, 통밀, 흑밀)를 블렌딩해 계란만 넣어 반죽한다. 이 방식은 이탈리아 생면 파스타와 닮아 있지만, 뿌리는 한국 고조리서에 기록된 ‘난면법’이다. 15세기 『산가요록』과 『음식디미방』 속 난면법에서 힌트를 얻어, 현재의 기술과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면의 식감은 독특하다. 뚝뚝 끊기는 식감이 메밀국수보다는 힘이 있고, 일반 소면이나 중면보다 탄성이 분명하다. 은은한 통밀 향과 함께 씹을수록 고소함이 올라온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소화도 편안하다. 김낙영 셰프는 “국적을 따지기보다 맛의 본질을 즐기고 싶다”고 말한다. 이 난면은 그 철학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대표 메뉴인 ‘서교난면’은 제주 구엄닭 육수와 한우 1++ 양지 육수를 반반 블렌딩해 만든 국물이 핵심이다. 맑고 담백하지만 육향과 감칠맛이 분명하다. 구엄닭 육수를 낼 때는 샐러리와 양파, 당근 등을 함께 고아내는 이탈리안 방식을 착안해 풍미를 더했다. 일반적인 곰탕보다 가볍고, 그렇다고 허전하지도 않다. 

고명 역시 단순하지만 의미 있다. 구엄닭, 한우 수육, 라비올리, 구운 제철 채소가 올라간다. 구엄닭은 촉촉한 식감과 함께 일반 닭에 비해 진하다. ‘한우난면’에는 이탈리안 만두인 라비올리 두 개가 들어가는데, 국물과 어우러지며 이질감 없이 녹아든다. 구운 채소도 국물에 뭉글어지듯 녹아들지 않고 존재감을 뿜어내며 각각의 맛을 즐길 수 있었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 난면을 들면, 이곳이 왜 ‘이탈리안 셰프의 국숫집’이라 불리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가지튀김과 라구소스. 사진=[서교난면방 SNS]

서교난면방에서 빠지지 않는 사이드는 가지튀김과 라구소스다. 튀김옷 없이 가지를 그대로 튀겨내 담백하고, 라구 역시 과하지 않다. 테이블마다 하나씩 주문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이곳에 오면 서교난면과 함께 꼭 먹어야 할 음식 있다. 구엄닭으로 만든 ‘피편’이다. 피편은 구엄닭의 껍질과 살을 배합해 눌러 만든 일종의 편육이다. 한입 먹자마자 감탄이 쏟아지는 맛이다. 녹진하고 감칠맛, 기름맛의 조합이 누구도 실망하지 않을 맛있는 맛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한우 우족과 양지로 만든 우족편도 인기다. 기름을 최대한 걷어 내어 담백하고 고소한 콜라겐이 풍부하다. 서교난면방은 구엄닭 피편이 자주 솔드아웃돼 새롭게 만든 메뉴라고 설명했다. 푹 익은 양파, 마늘을 곁들이는 버크셔K 앞다리살 제육, 새우젓.청양고추를 올려 먹는 냉제육 등 신메뉴, 계절메뉴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식당 한편에는 작은 전기밥솥 두 대가 놓여 있다. 레몬즙이 들어간 레몬밥과 일반 쌀밥이다. 난면 국물에 말아 먹을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된다. 한우난면에는 쌀밥을, 구엄닭난면에는 레몬밥을 권하는 안내 문구도 붙어 있다. 

맛과 공간, 분위기 모두 ‘깨끗하고 담백’

사진=[서교난면방 SNS]

인테리어 역시 음식과 닮았다.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차분하다. 소란스럽지 않아 국물의 향과 면의 식감에 집중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슴슴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자극적인 맛을 기대하면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먹을수록 자꾸만 생각난다.

김낙영 셰프는 “과거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100% 구현해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이탈리아식의 다양한 조리 방식에 착안해 미래를 지향하는 요리”라고 말한다. 대신 식재료만큼은 우리밀과 제주 구엄닭을 고집한다. 이는 맛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인데, 외국 식재료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로컬 식재료 시장을 우선해야 장기적으로 한국의 미식 문화를 지속할 수 있다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김 셰프는 “밀가루가 많이 보급되면서 쫀득하고 탱탱한 식감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전분, 소다를 넣은 면이 깊이 자리잡았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우리밀을 재료의 특성을 고려해 기술을 기반으로 반죽해 탱탱하고 쫄깃하게, 국물이나 소스와도 잘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이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다”라며, “우리밀의 맛을 찾아 맛있게 한 그릇을 담기 위해 오늘도 정진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한국에서 소비되는 밀의 99%가 수입밀이라는 현실 속에서, 서교난면방은 묵묵히 우리밀 난면을 만든다. 제면 과정을 고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교난면방은 단순한 ‘국숫집’이 아니다. 이탈리안과 한식, 과거와 현재, 기술과 철학이 한 그릇 안에서 조용히 만난다. 서교난면방은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업하며 오후 3~5시는 브레이크타임이다. 서교난면, 가지튀김과 라구소스, 구엄닭 피편 등이 대표 메뉴이며 시그니처 디너차림(2인)은 곳의 시그니처 메뉴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코스 요리다.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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