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을 냉동해 급식에 담다 – 경기도, ‘기후급식’의 첫걸음
정영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07-21 11:59:39
[Cook&Chef = 정영 기자] 경기도가 폭염과 이상기후로 인한 식재료 수급 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급식’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오는 8월, 제철에 수확한 시금치를 냉동 저장해 학교급식에 시범 공급하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는 단순한 냉동 식재료 유통이 아니라, ‘기후 변화에 맞서는 공공급식’이라는 새로운 정책적 실험이기도 하다. 급식 현장의 식단 편성, 조리 운영, 공급 안정성은 물론 탄소 감축까지 고려한 복합적 대응책이기 때문이다.
냉동 시금치 2톤, 학교급식 시범공급
경기도 친환경급식지원센터는 7월 21일 발표를 통해, ‘친환경 등 우수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도내 학교 2,337개교를 대상으로 냉동 시금치 2톤을 8월 중 시범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급 대상이 된 냉동 시금치는 가격이 안정적인 제철 시기에 수확된 후, 급격한 기온 변화에 대비해 냉동 보관된 것이다. 이는 2023년 이상고온으로 시금치 가격이 급등하면서 급식현장에 어려움이 발생했던 상황을 반영한 선제적 조치다. 경기도에 따르면, 2025년 여름에도 폭염 영향으로 시금치 가격이 한 달 사이 9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급식’, 조리와 유통 사이에서 새로운 접근
이 사업은 단순히 냉동식품을 학교로 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기도는 이번 시범공급이 ‘경기도형 기후급식’ 모델의 첫 실행 사례라고 밝혔다.
기후급식은 친환경농가, 학교, 농업전문가, 도 산하 농수산진흥원, 시군급식지원센터가 함께 참여한 ‘품질기준협의체’를 통해 개발됐다. 특히 ‘친환경농산물 품위기준’을 처음으로 급식에 적용한 사례이자, 기후위기 시대의 공급 전략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기도는 앞으로 이상기온과 기후재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처럼 제철 수확–냉동 저장–시기별 분산 공급의 시스템을 지속 확대할 방침이다.
농가·학교·학생 모두가 이득… 탄소 감축도 기대
경기도는 이번 냉동 시금치 공급을 통해 농가는 제철 생산물의 안정적 판로 확보와 소득 증대, 학교는 시세 급등기에도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급식 예산을 절감, 학생은 기후 변화 속에서도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공공급식을 지속적으로 이용, 사회 전반은 폐기 방지와 수송 최적화를 통한 탄소 감축 효과 확보 등 4가지 효과를 기대하며 “1석 4조의 효과를 지닌 지속가능한 정책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박종민 경기도 농수산생명과학국장은 “이번 공급은 단순한 냉동농산물 유통이 아니라, 기후 환경에 맞춘 ‘친환경농산물 품위기준’이 실제로 적용된 첫 사례”라며, “경기도는 앞으로도 ‘기후농정’이라는 비전 아래 공공급식을 통한 기후정의 실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음식의 미래는 기후로부터 시작된다...'못난이 감자' 이어 두 번째 실험
경기도는 지난 3월에도 학교급식용 규격에는 미치지 않지만 품질에 문제가 없는 ‘가정용 감자’ 18톤을 학교에 공급한 바 있다. 당시에도 식재료 다양성과 자원 순환 차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이번 냉동 시금치 정책은 그 후속 실험으로 평가된다.
기후급식은 단지 ‘얼린 시금치’의 문제가 아니다. 급변하는 기후 속에서 식재료 수급과 식단 계획, 조리 방식의 유연성이 절실해지는 가운데, 급식은 더 이상 단순한 식사가 아닌 ‘기후 적응형 공공 서비스’로 자리잡고 있다.
지속가능한 조리, 탄소중립 외식산업, 기후와 음식의 연결 고리를 고민하는 외식업계와 셰프들 또한 이 실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의 냉동 시금치가, 한국 급식의 새로운 계절을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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