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이어진 ‘절 밥’, 국가가 인정했다… ‘사찰음식’ 무형유산 지정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naver.com | 2025-05-20 11:22:34

“지금도 사찰 안에서 이어지는 살아있는 유산” 서울 진관사 사찰음식  사진 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Cook&Chef = 이경엽 기자] 고기를 쓰지 않고, 오신채(마늘·파·부추·달래·흥거)를 배제한 채 조리되는 ‘사찰음식’이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불교의 수행 철학이 깃든 절집 밥상은 이제 공동체가 지켜온 살아있는 전통으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됐다.

국가유산청은 사찰음식을 “불교의 정신을 담아 사찰에서 전승되어 온 음식”으로 정의하며, 전통적인 조리법과 철학이 현재까지도 사찰 내에서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 가치를 인정했다.

단순하지만 깊은 맛… 절제된 조리에서 나오는 풍미

사찰음식의 핵심은 절제된 조리법과 자연 식재료의 본맛을 살리는 데 있다. 육류와 어패류는 물론 강한 자극을 주는 오신채도 배제하는 대신,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 제철 채소, 해조류, 버섯 등을 활용한다.

이러한 식재료는 대부분 사찰 인근 자연에서 자급하거나, 지역 주민과 교류를 통해 얻는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것들로만 밥상을 차리는 것은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서 불교의 수행 정신과 자연 존중의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조리 과정에서는 볶고 굽기보다는 데치고 무치고 삶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기름과 양념의 사용도 절제되며, 대신 장시간 숙성된 장류나 천연 재료에서 우러난 맛이 중심이 된다. 대표적인 식재료로는 된장, 간장, 들기름, 들깨가루, 누룩 등이 있으며, 이들은 사찰 내부에서 직접 제조되기도 한다.

발우공양부터 산나물 밥상까지… 조용한 수행이 깃든 식사 문화

사찰음식은 단순히 ‘무엇을 먹는가’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먹는가’의 방식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식문화다. 대표적인 예가 ‘발우공양(鉢盂供養)’이다. 이는 개인의 식기를 차례대로 펼쳐 정갈하게 음식을 덜어 먹는 의식적인 식사법으로, 수행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발우공양은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기 전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식사 후엔 기도를 올리고 물로 그릇을 깨끗이 씻는 등 전 과정이 수행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이는 음식 섭취를 통해 몸과 마음을 맑히는 불교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또한 사찰마다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 풍습에 따라 음식의 구성과 조리법도 다양하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남부 지역의 사찰에서는 해조류를 활용한 반찬이 두드러지며, 내륙 산간 사찰에서는 산나물, 곡류 중심의 메뉴가 주를 이룬다. 이처럼 사찰음식은 한식의 지역성과 계절성을 함께 품고 있는 음식문화다.

기록으로도 증명된 유산… 민간과의 교류도 활발

사찰음식의 역사성은 다양한 고문헌에도 등장한다.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목은시고(牧隱詩藁)』와 같은 문헌에서 채식만두와 산갓김치 등 사찰의 음식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묵재일기(默齋日記)』, 『산중일기(山中日記)』의 기록을 통해 사찰이 두부, 메주 등 장류와 저장 음식의 주요 공급처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대부가와 곡식을 교환하는 등 음식을 통해 민간과 교류해 온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특정 보유자 없이, 공동체가 지켜온 음식문화

이번 국가무형유산 지정은 특정 보유자나 단체 없이 공동체 전체가 전승하는 문화로서 사찰음식을 인정한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조리 기술이 어느 한 스님이나 전문가에 의해 독점되지 않고, 사찰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나누는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문화의 건강한 전승 모델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 사찰음식의 학술적 연구와 전승 활성화 사업 등을 통해 국민과 함께 이 음식문화의 가치를 공유하고, 지속 가능한 문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사찰에서 수행자의 삶과 함께 해온 밥상은 이제 대한민국 전체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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