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원, 미쉐린의 별을 설계하는 셰프

정서윤 기자

cnc02@hnf.or.kr | 2026-04-23 19:23:35

감각이 아닌 구조로 완성하는 한식 파인다이닝의 방식 사진출처 : 나무위키

[Cook&Chef = 정서윤 기자] 미쉐린 스타는 종종 셰프의 재능과 감각을 증명하는 훈장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손종원 셰프를 따라가다 보면 별은 번뜩이는 영감의 산출물이라기보다, 오래 축적된 질서와 설계가 만들어낸 성취로 읽힌다.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의 ‘이타닉 가든’과 레스케이프 호텔의 ‘라망 시크레’를 동시에 이끄는 그는 서로 다른 결의 두 레스토랑에서 모두 별을 유지하며,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는 ‘쌍별 셰프’가 아니라, 맛을 끝까지 설계하는 사람에 더 어울린다.

손종원 셰프는 스스로를 “너디(nerdy)하다. 덕후이기도 하다”고 표현한다. 그 말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 방식에 대한 설명에 가깝다. 그는 요리를 감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끝까지 파고들고 비교하고 검증하며 도달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실제로 그는 “요리는 마법이 아니고 과학이거든요. 감으로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 계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하나의 디시를 만들 때도 먼저 최종 도달점을 그린다. “닭과 밥을 비롯해 여러 재료가 어떤 식감과 맛을 내야 하는지 그 최종 도달점의 설계도를 먼저 그리죠. 그리고 그 맛을 구현하기 위한 과제를 수행하는 전 과정이 요리입니다.” 감각보다 구조, 직관보다 설계에 무게가 실린 접근이다.

이 방식은 접시 밖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음식 설명 스크립트를 직접 쓰고, 어떤 요리는 내기 전에 설명하고, 어떤 요리는 먹는 흐름을 해치지 않기 위해 뒤에 설명한다. “어떤 건 온도가 중요해서 드시고 나서 설명해요. 다 정해져 있어요.” 손님의 왼손과 오른손까지 살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처음에 나오는 카나페에는 좌우 순서가 있어요.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하면 왼쪽으로 갈수록 접시가 높아지죠. 그런데 그 순서가 왼손잡이 손님께는 불편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는 손님이 첫 잔을 어떤 손으로 드는지 확인한 뒤 그에 맞춰 배열을 바꾼다. 식기 역시 기성품 대신 음식과의 궁합을 고려해 제작한다. 손종원이 만들어내는 것은 한 접시의 요리를 넘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경험이다.


설계된 경험 위에 쌓이는 한식의 해석

그의 한식 역시 같은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는 한식을 익숙하게 풀어내기보다, 한국적인 맛의 구조를 끝까지 파고든다. 특히 나물에 대한 관심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한때는 삶아서 양념하면 된다고 여겼던 나물을, 그는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조희숙 셰프의 수업에서 아스파라거스와 셀러리를 말렸다가 불려 조리하는 방식을 접하며 기존의 인식을 넘어선 가능성을 체감했다. 익숙한 재료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이 그의 요리를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그래서 손종원의 요리는 전통을 지킨다기보다, 전통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데 무게를 둔다. 남대문 갈치골목에서 받은 인상은 하나의 코스로 재해석되고, 자하손만두에서 경험한 재료 중심의 맛은 그의 한식 접근을 바꿔놓았다. 한식을 기반으로 출발한 그의 요리는 익숙한 맛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구조를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파인다이닝을 설명하려는 셰프

그가 대중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방송 출연을 고사해왔던 그는, 파인다이닝이 극히 일부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세계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를 느꼈다. 손종원에게 요리는 눈앞에 놓인 완성품을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과정과 구조까지 함께 이해되어야 하는 경험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요리를 설명 가능한 언어로 풀어내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설계된 한 접시를 만들어내는 일과 그것을 타인에게 납득시키는 일은 결국 같은 방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손종원 셰프가 ‘시그니처’라는 말을 경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의 형태에 머무르는 순간, 그가 구축해온 구조 역시 고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Evolve’, 진화를 말한다. 하나의 완성된 형태에 안주하기보다, 계속해서 수정하고 조정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그의 방식이다.

결국 손종원이 만들어내는 것은 한 끼 식사에 머물지 않는다. 한 접시의 음식이 어떤 순서로, 어떤 온도로,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끝까지 계산해낸 성취다. 감각으로 완성된 요리가 아니라, 구조로 완성된 경험. 그의 미쉐린 스타는 재능의 번뜩임이 아니라, 설계와 반복이 만들어낸 축적의 형태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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