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열전 4> 벨로 드무아젤 (Velo Demoiselles), 전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 남겨진 여성들이 만들다
조용수 기자
cooknchefnews@naver.com | 2022-10-18 09:59:57
[Cook&Chef=조용수 기자] 인생은 짧지만 마실 와인은 많다. 세상에 나온 와인들 중 ‘그냥’ 만들어진 와인은 없다. 모든 와인들은 만들어지기까지 각기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나오는데 ‘졸작’도 있고 ‘걸작’도 있다. 수많은 와인들 중에 알아두면 유익한 사연들 만을 모아 매주 하나씩 소개한다. 이름하여 ‘와인열전’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만으로 와인을 만든다.
프랑스어로 ‘자전거를 탄 숙녀’라는 의미를 와인 이름에 그대로 사용한 벨로 드무아젤 (Velo De moiselles)은 와인 이름을 잘 기억할 수 있게 자전거를 탄 여성의 그림이 라벨에 있다. 친환경과 유기농 양조방식 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기농이 잘 알려지지 않은 1910년대부터 유기농 와인 생산을 고집하며 이른바 ‘자연주의’를 표방했던 와인이기 때문이다.
▲ 벨로 드무아젤 레드 |
벨로 드무아젤은 주요 와인소비국을 비롯한 50여개국의 와인 전문가들에게 신뢰도가 높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가이드 ‘길버트 앤 갤리어드(Gilbert & Gaillard)’의 와인 품평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2022)하면서 이 와인을 생산하는 양조장의 친환경 적인 양조방식은 더욱 주목받게 된다. 유기농 인증마크로 대표되는 ‘유로리프’와 ‘AB 유기농 인증마크’를 모두 획득한 ‘유기농 와인 중의 유기농’이라 할 수있다. 가격은 3만원대이다.
▲ 랑그독 루시옹 일조량이 풍부하고 춥고건조한 바람이 불어 포도재배에 최고의 환경이라 불리운다. |
와인이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 랑그독 루시옹의 대표품종이 만들다
벨로 드무아젤은 지중해 연안에서 프로방스에 이르는 프랑스 남부 랑그독 루시옹 (Languedoc-Roussillon) 지역에서 생산된다. 바다를 앞에 두고 피레네 산맥을 끼고 있어 지중해성 기후를 띄고있어 온화한 기후덕분에 포도재배에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바람이 많고 일조량이 많아 습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지역에서는 유기농 와인 생산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카베르네, 메를로, 무르베드르, 그르나슈, 시라로 대표되는 다양한 포도 품종이 생산되고 있어 이 지역의 와인 양조가들은 단일품종 생산보다는 다양한 와인을 혼합하는 양조 기술이 뛰어나다. 또한, 랑그독 루시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생산 지역으로 프랑스 와인 생산량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 저렴한 테이블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많은 포도원과 협동조합이 고품질 와인으로 품종 및 생산 방법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다.
그르나슈, 무베데르, 시라를 혼합하여 만든 벨로 드무아젤은 짙은 붉은색을 띄고 있다. 코를 대어 향을 맡으면 풍부한 베리류의 향 그리고 시라 품종 특유의 미세한 스파이시 향이 뒤이어 느껴진다. 3가지 포도품종을 섞었기 때문에 가능한 복합적인 와인의 향이다. 루시옹 지역의 와인이 가진 강한 과실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오픈한 뒤 지속적으로 과실향이 강해진다. 맛을 보면 ‘부드럽다’는 느낌을 바로 알 수 있으며 신선한 과일의 긴 여운이 느껴진다. 부드럽지만 와인이 진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탄탄한 바디감을 맛볼 수 있다. 구운 바베큐는 물론 양념이 잘된 고기스튜와도 잘 어울린다. 사퀴테리나 치즈와 먹어도 좋은 풍미를 맛볼 수 있다.
▲ 셀러 드 드무아젤의 양조조합 건물 |
최상의 자연환경, 그 이면에 숨은 전쟁의 상처가 만든 양조장
벨로 드무아젤을 만드는 ‘셀러 드 드무아젤 Cellier des Demoiselles’는 1차 세계 대전 직전에 설립된 프랑스의 와인양조 조합으로 1914년에 만들어졌다. 설립 당시 남자와 여성의 비율을 50:50으로 하였는데 전쟁의 발발로 이 양조 조합의 모든 남자가 징집되며 오직 여성들만 남게 되었다. 이때 남은 여성들은 그들이 생산하던 와인과 양조장과 포도밭을 보존하기 위해 남자 한사람도 하기 힘든 와인의 양조, 포도밭의 관리, 수확등 모든 일을 감당했고 이후에도 계속 유지 발전시켰다. 양조장의 이름은 당시 이곳을 지켜준 젊은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름 붙여졌다.
포도밭은 랑그독 루시옹의 점토질 석회암의 토양, 평원, 고원과 피레네 산맥이 내려다보이는 계곡에 자리잡았다. 높은 지대가 특징인 이 지형은 풍부한 일조량을 가지고 있으며 북쪽 포도원 너머의 춥고 건조한 바람이 지중해 방향으로 불고 있어 포도를 곰팡이로부터 보호해준다. 포도를 키우기에 최상의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양조되는 와인의 품질이 매우 높다는 것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셀러 드 드무아젤은 주변 환경과 날씨를 존중하는 것이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는 그들의 양조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그들의 유기농 양조 노하우를 공유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도 열심이다. 이러한 점은 양조조합이기 가능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매년 수확할 때마다 환경 의식을 꾸준히 개선하기 위해 환경과 관련한 새로운 계획을 추진한다. 현재 전체 협동조합은 태양열 패널을 사용하고 단열재를 개선하고 폐기물을 줄이며 최신 빈티지용 코르크를 재활용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고 보존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 조합원들 운영진들의 사진, 남성들도 있지만 이사진에는 여성들만이 담겨있어 더욱 의미가 새롭다 |
여성이 중심이 된 와인 양조와 포도밭 운영의 역사,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1914년 세계대전이 셀러 드 드무아젤 설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여성들이 직접 양조장과 보도밭을 보호한 역사는 처음이 아니란 점이 흥미롭다. 이 역사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로 양조와 포도밭관리, 수확 등의 일을 담당하던 남성들이 갑옷을 입은 기사들로 무장되어 전장으로 빠져 나가던 때 남은 여성들 특히 수녀님들이 성에 깃발을 꼽고 성 안의 모든 살림을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의 아이들까지 가르치고 포도나무를 돌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이 지역의 여성들은 전쟁 또는 외부환경으로 인해 일할 남자가 없는 상황에서 포도밭의 유지와 보존하는 방법을 미리 학습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지금은 (여성이 주도한다 해도) 특별할 것 없지만, 남성 중심의 시대에 여성들이 주도하여 설립된 당시 와인 양조조합은 하나의 민주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매우 현대적이었다. 계층 구조가 없고 누구나 운영을 위한 의견을 낼 수 있었다. 또한 조합원을 위한 도덕적, 경제적인 지원을 법제화하였다는 점도 눈 여겨 볼만하다. ‘포도주 양조업자 중 한 명이 몇 시즌 전에 다리가 부러졌다. 모두가 그의 추수를 도왔다.’는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 EU Organic Logo
일명 유로리프라 불리우는 유럽의 유기농 인증로고, 유럽 내 유기농 농산물 인증을 통일하기 위해 유럽국가들이 연합해 만든 유기농 농산물 로고이다. 유기농 원료를 95%이상 사용해야 하고, 유전자 재조합(GMO)식품을 함유하고 있지 않아야 한다. 와인 적용된 것은 2012년도 부터이다. 포도는 유기농으로 생산되어야하며 효모,정제제를 포함해 모든 첨가물이 유기농으로 생산되어야 한다.
* AB(Agriculture Biologique
1985년 프랑스 농림부에 의해 시행된 유기농 인증제도이다. 제품의 95% 이상이 유기농 원료일 때 획득할 수 있는 유기농 농업 인증 마크로 프랑스 정부에서 인정하는 기관에서 생산 및 제조가 이루어져야한다. 유로 리프와 인증기준이 동일하다. 단 프랑스에서 생산된 유기농 제품만을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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