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김치 HACCP 개정, ‘소독 공정’ 도입과 산업 재편의 신호탄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 2026-02-20 17:07:01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오요리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지난 2월 19일 ‘식품 및 축산물 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일부 개정안을 고시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배추김치 제조 공정에 ‘소독 공정’을 중요관리점(CCP)으로 추가 설정하는 업체에 정기 조사·평가 면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기준 변경을 넘어, 배추김치의 안전 관리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조치다.

해당 조치는 업체의 자율성을 높이는 규제 완화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더 엄격한 위생 관리를 유도하려는 정책적 의도가 있다. 국민 다수가 매일 비가열 상태로 섭취하는 배추김치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번 개정은 국내 식품 안전 기준을 상향하고 K-푸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분석된다.

본 기사는 이번 HACCP 개정이 배추김치 제조업체, 외식 산업, 최종 소비자에 미칠 다층적 영향을 분석하고 향후 국내 식품 안전 정책의 방향성을 전망한다. ‘소독’이라는 키워드가 김치 산업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분석한다.

HACCP, 사전 예방적 식품 안전 관리 시스템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은 식품의 원재료부터 최종 소비까지 각 단계의 위해요소를 규명하고 중점 관리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과학적 위생관리체계다. 문제 발생 후 조치하는 사후관리 방식과 달리, 위해요소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HACCP 시스템의 핵심은 ‘중요관리점(CCP, Critical Control Point)’ 설정에 있다. 식약처 정의에 따르면 CCP는 “식품의 위해요소를 예방·제어하거나 허용 수준 이하로 감소시켜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공정”을 의미한다. 가열 공정의 온도와 시간, 세척 공정의 농도 등이 대표적 예시다.

기존 배추김치 제조업체 대다수는 원·부재료의 ‘세척 공정’을 핵심 CCP로 설정해 관리해왔다. 흙, 이물질, 잔류 농약과 원재료 표면의 미생물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는 배추김치 제조 초기 단계의 위생 수준을 결정하는 기본 과정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세척만으로는 미생물학적 안전성을 완벽히 담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특히 병원성 미생물은 단순 세척만으로 완전한 제어가 어렵다. 발효를 거쳐 비가열 섭취하는 김치의 특성상, 초기 원료에 잔존하는 미생물은 최종 제품의 안전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성이 ‘소독 공정’ 도입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세척'에서 '소독'으로, 안전관리 패러다임 전환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기존 ‘세척 공정’에 더해 ‘소독 공정’을 CCP로 관리하는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가 김치 제조업체에 보내는 명확한 신호다. 단순히 씻어내는 수준을 넘어, 유해 미생물을 적극적으로 사멸시키는 단계까지 안전관리 수준을 상향하라는 요구다.

소독 공정은 통상 차아염소산나트륨 등 식품용 살균소독제를 희석한 물에 원재료를 침지하거나, 오존수·이산화염소수 등을 활용해 미생물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원재료에 존재 가능한 대장균, 황색포도상구균 등 식중독균을 효과적으로 제어해 제품의 초기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식약처가 소독 공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배추김치는 ‘국민 소비가 많고 가열처리 없이 섭취하는 특성’을 지닌 고위험군 식품으로 분류된다. 대량 생산되어 전국으로 유통되는 과정에서 한 번의 위생 사고는 큰 사회적 파장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높아진 소비자의 식품 안전 요구 수준과 K-푸드 수출 확대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엄격한 미생물학적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소독 공정’ 도입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K-김치의 품질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 단계다.

인센티브 기반 정책, 자발적 안전 강화 유도

식약처는 새로운 기준을 강제하는 대신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규제 강화가 영세 업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시장 전체의 안전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기존 규정에 따라 배추김치 HACCP 인증업체는 전년도 평가 결과와 무관하게 매년 정기 조사·평가를 받아야 했다. 제품의 특수성을 고려한 특별 관리 조항이었다. 개정안은 소독 공정을 CCP로 추가 도입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는 이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소독 공정 도입 업체가 전년도 평가에서 95% 이상 점수로 ‘우수’ 등급을 받으면 2년간 정기 평가가 면제된다. 90% 이상 95% 미만 ‘양호’ 등급은 1년간 면제 혜택을 받는다. 평가 면제 기간 동안 해당 업체는 정부 실사 대신 ‘자체 평가’로 정기 평가를 갈음한다.

이러한 정책은 업체에 상당한 유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기 조사·평가 대비에 투입되는 행정 비용과 인력, 시간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 확보된 자원을 제품 개발이나 설비 투자 등 생산적 활동에 재투자할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가 규제 준수 비용을 낮춰주는 대신 업체의 자발적 시스템 투자를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스마트 HACCP 연계, K-푸드 세계화 초석

이번 개정안에는 ‘스마트 해썹(Smart HACCP)’ 또는 ‘글로벌 해썹(Global HACCP)’ 등록 신청 절차 간소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소독 공정 도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K-푸드 산업 전체의 체질 개선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장기적 계획을 보여준다.

스마트 해썹은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CCP 모니터링 데이터를 실시간 자동 기록·관리하고 데이터 위·변조를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업체가 소독 공정의 온도, 농도, 시간 등을 스마트 해썹으로 관리하면, 정부가 부여한 ‘자체 평가’의 신뢰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이는 규제 완화에 따른 안전 공백 우려를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장치가 된다.

글로벌 해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전통적 HACCP이 비의도적 위해요소 관리에 집중한다면, 글로벌 해썹은 ‘식품 방어(고의적 오염 방지)’, ‘식품 사기(가짜 원료 사용 예방)’ 등 국제 통상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안전 개념까지 포괄한다. 이는 K-김치가 세계 시장에서 안전과 신뢰를 보증하는 프리미엄 식품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결론적으로 식약처의 전략은 명확하다. 배추김치를 대상으로 ‘소독 공정’이라는 높은 안전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는 업체에 ‘평가 면제’ 혜택을 부여한다. 동시에 ‘스마트·글로벌 해썹’ 전환을 유도하여 국내 식품 산업의 수준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외식업계와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

이번 HACCP 개정은 제조 현장을 넘어 외식 산업과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김치 제조업체는 소독 설비 도입에 따른 초기 투자 비용과 운영비 부담을 안게 되지만, 장기적으로 규제 대응 비용 절감, 브랜드 신뢰도 제고, 수출 판로 개척 등의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옥석 가리기로 이어질 수 있다.

변화에 동참하는 기업은 ‘소독 공정 CCP 적용’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할 것이다. 반면 현상 유지에 머무는 업체는 가격 경쟁력에 의존하거나 내수 시장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김치 시장이 ‘안전성’을 기준으로 분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규모로 김치를 소비하는 급식업체나 대형 프랜차이즈는 식자재 공급업체 선정 기준을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음식의 안전성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서, 소독 공정을 거친 HACCP 인증 김치 사용은 중요한 차별화 요소이자 리스크 관리 수단이 된다. 이는 김치 제조업체에 더 높은 위생 관리를 요구하는 시장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최종 소비자는 이번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시중 포장김치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향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제조업체의 투자 비용이 제품 가격에 일부 전가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안전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고려할 때,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 인상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을 선택할 정보와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자율과 책임, 김치 산업의 지속가능성

식약처의 이번 ‘식품 및 축산물 안전관리인증기준’ 개정은 강제 대신 자율과 인센티브로 산업 체질 개선을 유도하는 진일보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이는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사회 전체의 안전 수준을 높이는 규제 과학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성공은 현장의 수용성과 실천에 달려 있다. ‘평가 면제’가 안전 관리 해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업체 스스로 책임감 있는 ‘자체 평가’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스마트 해썹과 같은 기술적 보완 장치의 확산은 이러한 자율 규제 시스템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배추김치에서 시작된 변화의 흐름은 향후 샐러드, 신선편의식품 등 다른 비가열 섭취 식품군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K-푸드가 국내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인의 식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다. ‘소독 공정’ 도입이 한국 식품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업계와 정책 당국의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Cook&Chef /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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