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이도 분위기는 충분히 달아오른다" 소버 라이프의 모든 것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 2025-11-10 16:50:26

MZ세대가 선택한 새로운 음주 트렌드 ‘소버 라이프(Sober Life)’
폭음 대신 ‘절제’, 취함 대신 ‘취향’
사진=픽사베이

[Cook&Chef = 송채연 기자] “나 이번엔 논알코올 맥주 마실래요.”

술자리에서 이런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된 지도 꽤 오래다. ‘한 잔 더’를 외치던 풍경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하이볼 대신 콜라를, 또 누군가는 “이젠 숙취가 싫다”며 일찍 자리를 정리한다. 술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모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주인공은 바로 MZ세대다. 한때 ‘술이 있어야 진짜 어른’이라 여겨지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술 없이도 괜찮은’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이 선택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바로 ‘소버 라이프(Sober Life)’다. ‘소버(Sober)’는 영어로 ‘술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의’를 뜻한다. 단순한 금주가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기분, 그리고 관계의 균형을 고려한 절제된 음주 문화를 말한다.

전 세계를 휩쓴 절제의 물결

이 움직임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 ‘소버 옥토버(Sober October)’ 같은 금주 캠페인이 매년 트렌드처럼 이어지고 있다. 뉴욕의 ‘리슨 바(Listen Bar)’나 로스앤젤레스의 ‘바 누다(Bar Nuda)’ 같은 무알코올 바에서는 칵테일 대신 식물성 원료로 만든 힐링 음료가 인기를 끈다. 일본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청년층을 일컫는 ‘시라후족(しらふ族)’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술 없이도 분위기 좋은 공간’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무알코올 칵테일을 전문으로 하는 ‘놀로!(NoLo!)’나, 차를 칵테일처럼 재해석한 오설록의 ‘바설록’이 대표적이다. SNS에는 ‘#논알코올하이볼’, ‘#모크테일맛집’, ‘#소버라이프’ 해시태그가 쏟아진다. 과거처럼 “왜 안 마셔?”라는 질문 대신, “이거 무알코올인데 맛있다!”는 대화가 오가는 풍경이다.

MZ세대가 바꿀 연말의 풍경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 응답자 중 31%가 “전혀 마시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25%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또, 월 1~2회 정도 가볍게 즐긴다는 답변이 23%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이후 강제적인 회식 문화가 줄고,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가 확산되면서 술보다 자기관리와 정신적 여유를 중시하는 흐름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 변화는 주류 시장의 판도도 바꾸고 있다. 오비맥주의 ‘카스 0.0’, 디아지오의 ‘기네스 0.0’, 제주맥주의 무알코올 라인업 등 ‘0도수’ 제품들이 매년 출시된다.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35% 이상 성장했고, 주요 구매층의 70% 이상이 2030세대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위스키 풍미를 재현한 무알코올 음료 ‘더 페이커’와 ‘데어 제로’도 등장하며 ‘술의 대체재’ 시장이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무알코올 제품이 임산부나 운전자용으로 한정됐지만, 지금은 ‘선택의 음료’로 바뀌고 있다”며 “젊은 세대는 술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즐기려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술 없는 연말, 더 진한 온기

2025년이 한 달 여 남은 시점인 만큼 연말 술자리는 여전히 많겠지만, 그 분위기는 달라졌다. 더 이상 ‘폭탄주’가 아닌 ‘티 칵테일’이 테이블 위를 채우고, “다음 날 괜찮겠어?” 대신 “오늘 기분 어땠어?”가 화제로 오르내린다. MZ세대에게 ‘절제’는 금욕이 아니라 자기표현의 한 방식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위스키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논알코올 와인 한 잔으로 충분히 멋진 저녁을 보낸다. 중요한 건 ‘무엇을 마셨느냐’가 아니라, ‘어떤 순간을 함께했느냐’다.

‘소버 라이프’는 단순한 금주 캠페인이 아니다. 그것은 술에 기대지 않고도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건강한 관계를 선택하는 태도다. 올해 연말, 술잔을 비우는 대신 대화를 채워보는 건 어떨까. 취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밤은 그 자체로 충분히 따뜻하니까.

Cook&Chef / 송채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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