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 태운 레몬 한 방울의 역전... '독재자'는 킥을 만들지 못한다
민혜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2-28 11:59:59
[Cook&Chef = 민혜경 기자] "서로 상의하지 마세요. 저한테만 얘기하세요."
흑백요리사2 3라운드 2차전(5:5 대결). 흑수저 팀의 리더 '요리 괴물'은 주방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타임라인은 분 단위로 쪼개졌고, 팀원들은 기계 부품처럼 오차 없이 움직였다. 잡음 하나 없는 완벽한 '공장'이었다.
반면 백수저 팀은 시끌벅적했다. "이거 어때?", "이거 좀 넣어볼까?" 1:1 대결에서 한식의 정수를 보여줬던 임성근 셰프를 비롯해, 샘킴, 손종원, 박유남 등 양식 베테랑들이 포진한 백수저 팀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누가 봐도 조직력의 승리자는 흑수저 팀이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52 대 48, 백수저 팀의 역전승. 이 결과는 우리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왜 완벽한 통제는 어수선한 존중을 이기지 못했는가. 승부를 가른 것은 막판에 추가된 '태운 레몬(Burnt Lemon)'이라는 한 방울의 킥(Kick)이었다.
침묵의 공장: 요리 괴물의 독재가 놓친 것
1라운드(7:7 대결)에서 66 대 34로 참패한 흑수저 팀. 그 충격은 컸다. "너무 터무니없는 점수 차로 졌기 때문에 2, 3라운드 제가 다 하겠다고 했습니다." 요리 괴물의 선언이었다. 그는 1라운드의 패인을 '혼란'으로 진단했다. 위에서 지켜보던 그의 눈에 흑수저 팀의 주방은 답답했다. "일이 분업이 안 되네. 왜 둘이서 저러고 있어?" 그래서 그는 2라운드에서 완벽한 통제를 선언했다. "의견 있으면 서로 상의하지 마시고요. 저한테 얘기해 주시면 제가 정리해서 뿌리든 컷을 하든 하겠다."
요리 괴물의 리더십은 효율적이었다. 그는 "제가 조금 맡아서 리딩을 하겠다"며 의사결정 권한을 독점했다. 팀원들은 리더의 입만 바라봤고, 덕분에 조리 속도는 빨랐다. 요리 괴물은 팀원들로부터 "운전기사", "버스 기사"에 비유되며 팀을 이끌었다. 팀원들은"버스 탄다고 하죠. 약간 괴물 버스, 프리미엄 우등버스 같은 느낌. 운전기사님입니다." 라며 "오더가 너무 깔끔해요."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독이 됐다. 흑수저 팀의 메뉴는 '명란 깐풍기'였다. "직관적인 맛"을 목표로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밋밋했다. 팀원들은 각자의 파트에만 집중하느라 전체적인 맛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확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저에게는 쾌락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평했다. 통제는 실수를 차단하지만, 동시에 '의외의 발견'이라는 가능성도 차단해 버린 것이다.
시끄러운 연구실: 태운 레몬의 탄생
반면 백수저 팀의 주방은 시끄러운 '연구실' 같았다. 그들의 메뉴는 '치킨 프리카세'였다. 클래식한 프렌치 닭 요리에 명란을 섞은 매시드 포테이토를 곁들이는 구성이었다. "닭 하면 프리카세. 프렌치에 닭 요리예요. 닭을 구워서 크림화된 소스하고 같이 나가는 거." 샘킴, 손종원, 박효남 등 양식 셰프들이 모인 이 팀은 끊임없이 맛을 보며 토론했다. "명란이 있으면 매시가 훨씬 더 맛있어요. 감칠맛이 나니까."
문제는 '느끼함'이었다.
크림 소스에 명란 매시까지, 자칫하면 입안이 무거워질 수 있는 조합이었다. 이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던졌다. "레몬 웨지 이렇게 해가지고 태워가지고... 갓 짜낸 시트러스 향이 되게 좋잖아요." 산미를 더해 느끼함을 잡자는 제안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한 명의 지시가 아니었다. 팀원들의 토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다.
팀은 이를 묵살하지 않았다. "레몬이 또 킥이 되겠네." 즉각적인 테스트가 이어졌다. "샘플 하나 만들어 보죠." 그들은 즉석에서 레몬을 태워 샘플을 만들었고, 모두가 "맛있다"며 동의했다. 한 명의 독재자가 설계도대로 밀어붙이는 시스템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유연함이다. 서로의 경험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집단지성의 산물'이었다.
한 끗 차이의 승리: "클래식함 속에 위트가 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백종원 심사위원은 백수저 팀의 요리에 대해 "클래식함 속에 위트가 있다. 태운 레몬 몇 방울이 정확한 포인트였다"며 극찬했다. 안성재 심사위원 역시 "명란을 품은 꼬끼오는 두 개 다(클래식함과 위트) 가진 것 같다"며 백수저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흑수저 팀에 대해서는 "섬세함을 유지하면서 직관적이니까 이게 저에게는 쾌락적으로 다가오지 못한 것 같다"고 평했다.
반면 흑수저 팀은 막판에 "뭔가 2% 부족하다", "임팩트 부족할 것 같다"며 고추기름을 추가하는 등 우왕좌왕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리더 혼자 모든 짐을 지고 가는 구조에서는, 위기의 순간에 창의적인 해법이 나오기 힘들다.
4점의 무게: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차이
흑수저 팀은 48점, 백수저 팀은 52점. 단 4점 차이의 승부였다. 1라운드의 32점 차(66 대 34)에 비하면 극적으로 좁혀진 것이다. 요리 괴물의 '통제'가 최소한의 실수를 막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4점을 만든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요리 괴물은 훌륭한 '공장장'이었다. 그의 지휘 아래 주방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1라운드의 혼란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 라운드가 요구한 것은 각 파트의 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지휘자'였다. 공장장은 매뉴얼대로 제품을 찍어내지만, 지휘자는 연주자들의 즉흥적인 영감까지 하나의 하모니로 엮어낸다. 백수저 팀의 '태운 레몬'은 바로 그 즉흥의 산물이었다.
흑수저 팀의 한 셰프는 패배 후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너무 섬세한 맛을 추구하지 않았나." 아이러니하게도, '섬세함'을 추구한 것은 맞지만, 그 섬세함을 발견할 수 있는 '대화'가 부족했던 것이다.
흑백요리사2는 증명했다. 창의적인 결과물은 한 명의 천재적인 독재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리더의 유연함과, 동료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만났을 때 비로소 '태운 레몬' 같은 마법이 일어난다.
요리 괴물의 리더십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1라운드의 32점 차를 4점 차로 좁힌 것은 그의 통제력 덕분이다. 하지만 '이기는 리더십'과 '지지 않는 리더십'은 다르다. 효율성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백수저 팀의 '시끄러운 주방'이 보여준 승리는 그래서 더 값지다. 혁신은 상명하복의 명령이 아니라, 잡담과 토론 속에서 피어난다. "태운 레몬"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수평적 리더십이 만들어낸 승리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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