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허위·과장 광고 규제, 정부의 전방위 대응책 확정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 2025-12-24 18:17:29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오요리 기자] 인공지능(AI)이 생성한 가상의 의사가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을 보증하고, 유명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이 특정 식당 방문을 유도한다. 이는 더 이상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AI 기술 고도화를 악용한 허위·과장 광고가 식품 및 외식업계를 중심으로 확산하며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이러한 광고는 디지털 정보 해독 능력이 낮은 취약 계층을 표적으로 삼아 경제적 피해는 물론 건강까지 위협한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정보의 즉각적 확산성은 피해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우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정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다. 지난 12월 10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 제7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AI 등을 활용한 시장 질서 교란 허위·과장광고 대응 방안'이 확정됐다. 이번 대책은 AI 광고의 생성·유통·사후 제재 전 단계를 포괄하는 종합 규제안이다.
첫 단추는 투명성 확보: 'AI 생성물 표시' 의무화
정부 대책의 첫 축은 유통 전 사전 방지, 즉 투명성 확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는 플랫폼 전반에 'AI 생성물 표시제' 도입을 추진한다. 이는 AI로 콘텐츠를 제작·편집해 게시하는 정보제공자에게 AI 생성물임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용자의 임의적 표시 삭제나 훼손 행위도 금지된다. 플랫폼 사업자는 이용자의 의무 준수를 위한 표시 방법을 제공하고 관련 의무를 고지하는 등 관리 책임을 진다. 소비자가 광고를 접하는 순간부터 실제와 AI 조작물을 명확히 구분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 1월 시행 예정인 'AI 기본법'에 따라 AI 사업자에게 부과될 생성물 표시 의무의 현장 안착을 위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소비자 기만 행위를 최소화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외식업계 역시 이 규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AI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음식 이미지를 생성해 홍보하거나, 가상 셰프 캐릭터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 모두 'AI 생성물'임을 명시해야 할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 알 권리 보장과 함께 마케팅 콘텐츠 신뢰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확산 차단을 위한 속도전: 24시간 내 심의·긴급 차단
AI 허위·과장 광고의 특징은 빠른 확산 속도다.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통 단계에서 '속도'에 초점을 맞췄다. 방미통위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는 문제 광고의 신속 차단을 목표로 법 개정을 추진한다.
핵심은 식품·의약품, 화장품 등 AI 허위·과장 광고가 빈번한 분야를 '서면심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다. 서면심의 대상이 되면 심의 요청 후 24시간 내 결론을 내는 '패스트트랙'이 적용된다. 현재 마약류에 한정된 식품의약품안전처 전용 방미심위 심의 신청 시스템도 이들 품목으로 확대된다.
이는 외식업계에서 특정 메뉴가 검증되지 않은 효능을 광고할 경우, 과거보다 훨씬 신속하게 차단 가능함을 의미한다. 소비자 피해 확산 전 조기 개입 수단이 마련된 셈이다.
국민 생명이나 재산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면 더욱 긴급한 조치가 이뤄진다. 관계 부처 요청 시 방미통위가 플랫폼 사업자에게 '긴급 시정요청'을 내려 방미심위 최종 결정 전이라도 임시 차단이 가능하다. 선 조치 후 심의 방식으로 소비자 보호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위법성 판단 기준 명확화: 가상인간과 가짜 전문가
이번 대책의 또 다른 핵심은 AI 광고의 위법성 판단 기준을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사업자의 자발적 준수를 유도하고, 위법 행위 발생 시 신속한 제재를 가능하게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반 상품 광고에서 AI 추천 주체가 '가상인간'임을 명시하지 않으면, 소비자를 속이거나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부당한 표시·광고'로 규정했다. 가상인간임을 숨기는 행위 자체가 소비자의 합리적 구매 결정을 방해하는 기만적 요소라고 판단했다.
식품·의약품 분야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AI가 생성한 '의사'나 '약사' 등 전문가가 특정 식품의 효능을 보증하는 광고를 그 자체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광고'로 간주한다. AI로 만든 가짜 의사라도 소비자는 실제 전문가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해석이다.
이는 외식업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유명 영양학자나 셰프의 모습을 AI로 생성해 특정 메뉴의 효능이나 맛을 보증하는 형태의 광고는 이제 명백한 위법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AI 생성물' 표시를 넘어 전문가 사칭을 통한 보증 행위 자체가 금지되는 것이다.
경제적 제재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과징금 상향
정부는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대폭 강화한다. 불법 광고를 통한 경제적 이익 추구 유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과 과징금 상향이 핵심이다.
방미통위와 공정위는 정보통신망에서 악의적으로 허위·조작 정보를 유통하는 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한다. 인플루언서 등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명백한 의도를 갖고 정보를 유통한 경우가 적용 대상이다.
현행 표시·광고법상 허위·과장 광고 과징금 수준도 상향 조정된다. 현재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최대 2% 또는 최대 5억 원이다. 이는 공정거래법상 일반 불공정거래행위 과징금 상한선(관련 매출액의 4%)보다 현저히 낮다.
공정위는 이 기준을 최소 두 배 이상, 즉 일반 불공정거래행위 수준 이상으로 상향할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업자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의미"라며 강력한 법 집행 의지를 밝혔다. 불법 광고 이익보다 적발 시 손실이 더 크다는 인식을 시장에 명확히 심기 위한 조치다.
외식업계, AI 마케팅의 기회와 규제
이번 정부 대책은 AI 기술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외식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규제 적응 부담으로 작용하나, 장기적으로는 건전한 시장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AI 마케팅 활동 전반에 대한 세심한 법규 검토가 필수가 됐다. 가상인간 모델 홍보, AI 챗봇 추천, AI 생성 이미지·영상 콘텐츠 제작 등 모든 영역에서 'AI 생성물 표시 의무'와 '부당 광고'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위반 시 강화된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 위험에 직면한다.
반면, 정직한 정보를 바탕으로 마케팅을 펼쳐온 업체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AI를 이용한 가짜 후기, 검증되지 않은 효능을 내세운 과장 광고가 퇴출되면, 소비자들은 제품 품질과 진솔한 소통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는 브랜드 신뢰도 구축과 충성 고객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결국 이번 규제는 외식업계에 '책임 있는 AI 활용'이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기술로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되, 투명성과 정직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시킨 것이다. 이는 AI 시대의 마케팅 패러다임이 기술이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재편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AI 시대의 새로운 시장 질서, 과제와 전망
이번 대책은 AI 신기술이 야기한 시장 교란에 범부처가 종합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생성-유통-제재로 이어지는 촘촘한 규제망은 소비자 피해 예방과 공정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필수 조치로 평가된다.
물론 과제는 남는다. AI 기술은 규제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한다. 고도로 정교화된 AI 생성물을 완벽히 탐지하는 기술적 한계는 여전하다. 정부의 단속 역량 강화와 함께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규제 유도, 기술 개발 지원 등 다각적 접근이 요구된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신기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AI 시대에 걸맞은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이번 대책은 시작이다. 법령과 제도를 조속히 개선하고, 플랫폼 업계 및 소비자 단체와 소통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외식업계와 소비자 모두 AI가 가져올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이번 규제는 그 흐름 속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기술이 인간을 기만하는 도구가 아닌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활용되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기술 혁신과 소비자 보호가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시장 질서 구축이 시작됐다.
Cook&Chef /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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