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 건강노트] 동지 팥죽에서 일상 밥상까지, 팥에 주목해야하는 이유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2-13 11:36:28

혈당·혈관·부기까지, 한 그릇에 담긴 붉은 씨앗의 힘
단맛을 덜어낼수록 선명해지는 ‘진짜 팥’의 효능
사진 = 픽사베이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12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동짓날의 팥죽, 겨울 거리의 붕어빵, 호빵 속 달콤한 팥소…. 팥은 한국인의 계절과 추억을 함께 통과해온 곡물이다. 동시에 옛사람들은 붉은 색이 액운을 막는다고 믿어 동지 팥죽이나 팥고사떡을 만들어 귀신과 질병을 쫓으려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의례 음식’이 현대 영양학의 시선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팥은 단순히 단팥빵의 재료가 아니라, 혈당·혈관·부종·피로·피부까지 두루 관여하는, 꽤나 정교한 기능성 곡물에 가깝다.

천천히 소화되는 탄수화물, 혈당 스파이크를 낮춘다

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분(탄수화물)의 구조다. 팥 속 전분은 섬유질 세포로 단단히 둘러싸여 있어, 물에 삶아도 쉽게 풀처럼 녹지 않는다. 실제로 팥죽을 끓일 때 보면 콩처럼 되직하게 풀어지지 않고, 알갱이가 끝까지 모양을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구조 덕분에 소화 효소가 전분에 닿는 속도가 늦어지고, 그만큼 식후 혈당이 천천히 상승한다. 흰쌀밥을 단독으로 먹었을 때와 팥밥을 먹었을 때의 혈당 곡선이 다르게 그려지는 이유다. 팥밥을 먹고 나면 포만감이 오래 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팥에는 비타민 B군도 풍부해 탄수화물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도와준다. 밥만 먹을 때보다 에너지 대사가 부드럽게 돌아가 피로감이 덜하고, 식후 나른함이나 졸음도 줄어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분은 천천히 분해되고, 비타민 B는 이를 에너지원으로 연결해주는 셈이다.

붉은 콩 한 줌이 혈관, 염증, 피부에 끼치는 영향

팥을 ‘부기를 빼는 음식’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다이어트 티나 팥차가 유행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는 과장이 섞여 있지만, 핵심 원리는 분명하다.

팥에는 바나나보다 4배 이상 많은 칼륨이 들어 있다. 칼륨은 몸속 나트륨 배출을 도와 붓기를 가라앉히고 혈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짠 음식을 많이 먹는 한국인의 식단을 생각하면, 팥은 조용하면서도 믿을 만한 ‘균형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사포닌·콜린이 더해지면 혈중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기름진 반찬이 많은 식탁에서, 흰쌀밥 대신 팥밥과 채소 반찬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사의 성격이 달라진다. 단순히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혈관에 들어가는 ‘연료의 질’을 조정하는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단, 칼륨이 과하게 쌓이기 쉬운 만성 신장질환자라면 의사와 상의해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팥의 붉은색은 단순한 색감이 아니다. 껍질에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과 다양한 폴리페놀이 농축돼 있다. 이들은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를 줄여 세포 손상과 노화 속도를 늦추고, 혈관 내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혈당 조절이 잘 안 되거나, 만성 염증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팥이 의미 있는 식재료로 평가되는 이유다.

한편 팥의 사포닌은 장 운동을 자극하고 노폐물 배출을 돕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옛날에는 곱게 간 팥가루를 세안에 사용해 피부 노폐물과 모공 속 찌꺼기를 제거하고, 주근깨·기미 완화에 도움을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팥 추출물을 활용한 팩·클렌저 등 화장품 원료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정리하자면, 팥은 ‘먹는 항산화제이자, 피부 관리 식재료’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안에서 염증과 노화를 늦추고, 밖에서는 세정과 미백 효과를 돕는 이중 역할을 해온 셈이다.

팥을 더 건강하게 먹는 법

팥의 효능을 살리려면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기본 원칙은 간단하다. 흰쌀과 섞어 팥밥을 짓거나, 오곡밥처럼 혼합곡 형태로 먹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식이섬유와 비타민 B군이 살아 있고, 식후 혈당도 완만하게 오른다.

팥죽을 끓인다면 설탕 대신 소금 한 꼬집으로만 간을 하거나, 새알심과 김·무생채·열무김치 등 짠 반찬을 매치하면 ‘디저트용 죽’이 아닌 ‘한 끼 식사용 죽’이 된다. 집에서 팥빙수를 만들 때도 연유·시럽을 덜고, 팥 자체의 단맛을 살리는 편이 좋다.

팥을 고를 땐 색이 짙은 붉은색이고 윤기가 돌며, 가운데 하얀 띠가 선명한 것을 고르면 좋은 팥을 선택할 수 있다. 알 크기가 너무 들쭉날쭉한 건 피하고, 물에 띄워봤을 때 떠오르는 콩이 많다면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국산 팥은 향과 단맛, 조리 시간에서 장점이 있어 팥죽·앙금에 특히 잘 맞는다.

주의점도 있다. 팥은 어디까지나 곡물이기 때문에, 과하게 먹으면 철분 흡수에 방해가 될 수 있고, 식이섬유와 사포닌이 장을 과도하게 자극해 설사나 복부 불편감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신장 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칼륨 과잉에 주의해야한다. 

붉은 씨앗 한 숟가락이 바꾸는 겨울 밥상

팥은 오랫동안 동짓날, 붕어빵 속, 호빵 속에만 머물러온 식재료였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혈당 스파이크를 완화하고, 혈관과 부종을 관리하고, 염증과 노화를 늦추는 데까지 관여하는 ‘티 나지 않는 조력자’에 가깝다.

올겨울엔 밥에 팥 한 숟가락을 넣어보자. 붉은 팥알 몇 숟가락이, 내 혈관과 장, 피부와 피로감에 줄 변화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계절마다 찾게 되는 동지 팥죽, 겨울 길거리 붕어빵의 추억을 그대로 품되, 일상 밥상 위의 팥도 조금 더 자주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한 해의 액운을 막는다는 옛 믿음처럼, 오늘 팥 한 숟가락이 내 몸속의 작은 부담들을 조용히 덜어줄지 모른다.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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