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Column / 음식평론가 최수근 조리박물관장, 셰프의 꿈> 직장 옮기기

최수근

skchoi52@hanmail.net | 2021-05-18 08:16:54

- 멘토를 3명 정도 선정하여 나의 모든 일을 의논하는 것

[Cook&Chef 최수근 칼럼니스트] 직장은 들어가기도 어렵고 나가기도 어렵다. 나는 40년의 직장생활 동안 몇 번의 이직을 했다. 그럴 때마다 매우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 것은 하얏트호텔에서 신라호텔로 직장을 옮기던 때와 영남대에서 경희대로 옮기던 때다.

내가 직장을 옮길 때 어디로도 결정을 못하고 고민할 때 사용하던 방법은, 멘토를 3명 정도 선정하여 나의 모든 일을 의논하는 것이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의논할 사람은 부모님, 친구, 배우자 등일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도 답이 안 나올 때가 많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멘토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나의 멘토들은 긴 안목으로 보고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가야할 길에 대해 조언해준다. 물론 판단은 나의 몫이지만, 멘토들의 조언이 나의 판단에 큰 바탕이 되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먼저 도전적인 정신으로 자기 개발을 위해 직장을 옮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직장을 너무 자주 옮기면 자기 관리가 잘 안 되어 나중에 인정받아야 할 시점에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따라서 자주 옮기는 것은 좋지 않다.

 

직장을 옮김으로써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에 응당하는 좋은 경험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직장을 잘 옮겼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평가는 나중에 알 수 있다. 대략 10년 후쯤, 되돌아보았을 때, 직장을 바꾼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었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내용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면 성공했다고 본다.

젊었을 때, 우리는 봉급, 직위, 동료 및 상사와의 불화, 회사의 전망 등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다. 그만둘 때는 모두가 이유가 있지만, 나는 항상 이 직장이 내가 평생 몸담을 곳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다. 나는 과거 주방 책임자로 있을 때, 부하 직원이 이직에 대한 면담을 하면, 말리지 않고 보내는 편이었다. 그러나 보내주기 전에 새로 갈 직장의 분위기는 어떤지, 사풍은 어떠한지, 이미지나 직원, 상사의 분위기는 어떤지 꼭 물어보고 확인한 다음 보내주었다.


직장을 옮길 때, 사장이나 부사장과의 면담만으로 쉽게 직장을 옮기면 나중에 많은 후회를 한다. 특히 채용 조건 등을 꼼꼼하게 서류에 기입해야만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아무 생각 없이 옮기면, 나중에 낮은 급여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기술자의 특징 중 하나가 조리사들은 너무 순진한 면이 많아서,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어떤 회사와 계약할 때 내 마음 같은 생각으로 그들을 대하면 안 된다.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은 순진하지 않다. 왜냐하면 회사나 조직은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이익이나 효과를 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 내가 창업론을 강의할 때 보면, 주방장이 월급의 최소 10배 정도 이익을 내야만 조직이 만족한다고 한다.

 

직장을 자주 옮기는 것은 좋지 않다. 어떤 셰프는 나이가 50인데 이력서를 보니 30군데는 옮겨 다닌 것이었다. 어떤 직장은 두 달, 세 달 근무하고 다른 직장으로 바뀐 것이 신기하여 필자가 물어본 결과 본인은 옮기려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 때문에, 어떤 때는 의리 때문에 옮겼다고 한다. 자기의 선배가 자리를 옮기니 따라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방장이 바뀌면 모두 그 주방장을 따라간다. 주방이 무슨 마피아조직이냐고 나한테 이야기한 외국인 셰프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빨리 고쳐야 한다. 주방장이 바뀌면 바뀐 주방장은 내 사람이 아니라고 못살게 구는 경우도 있고, 왜 먼저 있던 주방장을 따라가지 않았냐고 하는 것이 우리 주방의 분위기다. 정말 좋지 않은 풍토인데 아직도 바뀌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봉급 10만 원 더 준다고 아무 생각 없이 옮기는 직원을 보면 좀 한심스럽기도 하다. 젊었을 때는 돈보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한 직장에서 많은걸 배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한 직장에서 조직을 이끌어 가는 방법, 메뉴 작성 방법, 식재료 관리 방법, 직원 평가 방법, 타부서와의 관계, 원가관리 방법, 경쟁사 조사방법, 서비스맨과의 관계, 업장관리 방법 등은 한 직장에서 있으면서 배우는 것이 좋다. 필자 생각에는 3년에서 5년 정도 있어야 나중에 직장을 옮겨도 경력 인정을 받는다.

 

직장을 옮기기는 나이가 어릴 때가 편하다. 봉급도 적고 직책도 없고 이 사람이 없어도 주방이 움직인다고 판단하면 금방 그만두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나이가 먹어서 주방을 그만두려면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새 직장에서의 성공 여부도 중요하고, 결혼했다면 가족의 생계도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직장 옮길 때 점집에 가서 점까지 보았는데, 결론은 본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후회하지 말아야한다.


이직한 후에 후회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는데 대개는 욕심 때문에 후회한다. 본인은 모든 혜택을 다 얻으면서 직장을 옮기려는 생각을 하는데, 세상은 만만치 않다. 꼭 한 가지는 양보를 하고 직장을 옮겨야 성공한다.

좋은 직장 자리는 시기와 때가 일치하지 않는 법칙이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 5월말까지 명퇴하면 20개월 치의 봉급과 그 외의 인센티브를 준다고 하면, 새로운 직장은 12월에 출근하게 된다. 몇 달 동안은 놀아야 하므로 손해가 나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떤 때는 전 직장에서 야근하고 새로운 직장에 가서 근무 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새로운 사람을 보충하기 전에 나가면 전 직장에 피해를 주면 안 되고, 새로운 직장에는 일할 사람이 없고 참 난처한 일이 많이 발생한다.

이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직장 상사에게 사직서를 제출할 때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직장 이름을 밝히면 호사다마라고 나쁜 일이 겹칠까 걱정이 된다. 그만두기 며칠 전에 사직서를 써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전 직장의 상사는 배신감과 모욕감 등을 느껴서 나중에 다시 만나 근무하기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 직장 상사와 여러 가지 의논을 할 정도로 친해져야 하는데 그 정도로 분위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너무 친하면 직장을 못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평생 책임자 한 사람만 보고 근무하는 직원들도 많다.


직장 그만두고 전 직장에 잘 안 가는 것도 조리사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나 역시 롯데 호텔은 자주가도 신라호텔은 안 가게 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신라에 있을 때 욕먹을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


필자는 하얏트 그만둘 때 신라호텔로 왔는데 내 이야기를 많이들 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아무것도 아닌데 그 당시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독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꼭 신라호텔에서 성공하여 지금 나에게 험담하는 셰프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 당시 그런 시련이 없었다면 평범한 주방장으로 살았을 것 같다. 내가 주위에 있는 셰프들과 비교해 보아도 다양한 도전과 다양한 일을 한 결과가 지금의 위치가 아닐까. 직장을 잘 옮기면 무조건 성공이다. 직장을 잘못 옮기면 실패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직장을 옮기려면 멋있게 옮겨야 한다.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하고 직장을 옮겨야 인생이 성공한다. 가장 멋있는 직장 옮기기는 지금 하는 일이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멋있다. 같은 분야의 직장으로 가면 말이 많다. 사람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좋은 쪽 보다는 나쁜 쪽의 이야기가 더 많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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