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보름달을 빚어 먹다, 원소병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2-24 23:57:14

정월 대보름 상원의 병과 문화와 그 복원 [사진=한국민족대백과사전 / 원소병]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정월 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 상원(上元)에 해당한다. 상원은 한 해 들어 처음 맞는 보름달이 완성되는 시점이며, 조선 사회에서는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농경 사회의 시간 질서가 다시 정렬되는 상징적 순간이었다. 오늘날 대보름 음식이라 하면 오곡밥과 묵은 나물, 부럼, 귀밝이술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문헌을 더듬어 보면 ‘원소병(元宵餠)’이라는 병과의 존재가 확인된다. 현재는 거의 전승되지 않지만, 상원이라는 개념과 병과(餠菓)의 조리 체계를 교차해 보면, 이는 보름달을 형상화한 곡물 음식으로 이해된다.

‘원소(元宵)’는 본래 중국 원소절에서 비롯된 용어로 정월 보름밤을 뜻한다. 조선은 상원·중원·하원이라는 삼원 개념을 수용했고, 그중 상원이 가장 중요한 세시로 기능했다. 홍석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대보름 풍속이 정리되어 있으며, 상원이 공동체 의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곡밥과 약밥, 묵은 나물, 부럼 깨기, 달맞이, 다리밟기 등의 풍속이 기록되어 있다. ‘원소병’이라는 명칭이 독립 항목으로 상세히 서술되지는 않지만, 상원 절식 중 병과류가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기록은 조선 후기 조리서의 병과 체계를 통해 보완된다.

조선 후기 여성 생활 백과라 불리는 규합총서와 반가 음식 체계를 담은 시의전서를 보면 ‘병(餠)’은 단순한 찐 떡이 아니라 지짐·전병·약병을 포함하는 넓은 범주였다. 곡물을 가루로 내어 다시 빚는 2차 가공 음식이라는 점에서 병과는 상징성이 강했다. 정월 대보름이라는 절일에 둥근 병과가 놓였다는 사실은 보름달의 형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둥근 형태는 충만함과 완성, 곡식의 성숙을 상징했다. 세시 음식은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먹는 행위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사진=원소병]

동아시아 비교를 통해 맥락은 더욱 분명해진다. 중국 원소절의 탕위안(湯圓)은 찹쌀 반죽 안에 깨나 팥소를 넣어 삶는 둥근 음식이다. 보름달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개념적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조선 병과는 삶기보다는 찜과 지짐이 중심이었다. 이는 기후 조건과 상차림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조리적 변형으로 이해된다. 『규합총서』에는 참기름과 우지를 사용해 지지는 병과가 다수 등장하며, 이는 조선 후기에도 기름 사용이 일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원소병 역시 찐 뒤 기름에 살짝 지져 표면을 단단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월은 농한기이지만 혹한기 말기에 해당한다. 저장 식량 의존도가 높아지고 단백질 공급이 제한되던 시기였다. 찹쌀은 아밀로펙틴 함량이 높아 소화가 빠르고 열량 공급이 즉각적이다. 꿀이나 조청은 단당류를 보충해 빠른 에너지 회복을 돕는다. 기름에 지질 경우 열량 밀도는 더욱 증가한다. 원소병은 상징적 의미와 동시에 겨울 말기 체력 보강이라는 현실적 요구를 충족하는 음식이었다.

전승이 단절된 이유는 근대 이후 명절 간소화와 가정 내 병과 제조 노동의 축소와 맞닿아 있다. 오곡밥과 부럼은 공동체 의례와 결합해 명맥을 유지했지만, 특정 절일 전용 병과는 상업화 구조에 편입되지 못했다. 그 결과 원소병은 기록 속 병과로 남게 되었다.

그렇다면 원소병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현재 완전한 고정 레시피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조선 후기 병과 조리법을 바탕으로 한 복원 방식은 다음과 같이 구성할 수 있다.

재료는 멥쌀가루 300g 또는 찹쌀가루 300g, 끓는 물 약 180ml, 소금 2g, 팥고물 또는 꿀·조청 80g, 참기름 약 20ml이다. 팥소를 사용할 경우 삶은 팥 200g에 설탕 60g을 섞어 되직하게 졸여 둔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쌀가루에 소금을 섞고 끓는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익반죽한다. 반죽은 균일하게 치대어 표면이 매끄럽게 되도록 한다.
둘째, 반죽을 지름 4~5cm 크기로 둥글게 빚는다. 속을 넣을 경우 가운데를 눌러 팥소를 넣고 봉합한 뒤 다시 둥글게 정형한다.
셋째, 김이 오른 찜기에 면포를 깔고 12~15분간 찐다.
넷째, 찐 병을 꺼내 표면에 참기름을 바른 뒤 약한 불에서 기름을 두른 팬에 살짝 지져 겉면을 건조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보관성과 식감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다섯째, 완성된 병 위에 조청을 바르거나 꿀을 곁들여 상에 올린다.

이 조리 구조는 『규합총서』와 『시의전서』에 나타나는 병과 제조 방식과 동일한 맥락을 따른다. 찌고, 기름을 더하고, 단맛을 가미하는 구조는 조선 후기 병과의 일반적 조리 논리와 일치한다. 둥근 형태는 보름달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한다. 상 위에 놓인 원소병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상원의 시간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절식이었다.

원소병은 단순히 사라진 떡이 아니다. 그것은 곡물을 가루 내어 다시 빚는 기술, 자연 현상을 형상으로 재현하는 조형 감각, 절일을 음식으로 환원하는 사유 방식이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정월 대보름의 음식 체계는 밥과 나물, 견과류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보름달을 닮은 병과 또한 그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빚어 나누어 먹으며 상원의 밤을 맞이했다. 원소병은 보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름을 먹는 방식이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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