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ese Chef Story / 왕의경 셰프(코엑스 중식당 ‘그랜드마오’) : 좋은 셰프로 남는 것, 함께 간다는 것

오미경

omkvictory@naver.com | 2018-04-26 06:43:20

그를 만나기 위해 찾은 서울 코엑스에 위치한 중식당 ‘그랜드마오’. 250석의 꽤 큰 규모에 먼저 시선이 갔다. 그리고 호탕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왕의경 총괄 셰프의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선수끼리 알아봤다는 느낌이랄까. 인터뷰어의 촉으로 볼 때 꾸밈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그의 첫 느낌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writer_오미경 / photo _ 김상근

Chinese Chef Story


좋은 셰프로 남는 것, 함께 간다는 것

코엑스 중식당 ‘그랜드마오’ 왕의경 총괄 셰프
 

 

“저는 특기라고 내세울 수 있는 요리는 없는 것 같은데요?” 뭐지? 이 당당함은. 하지만 그 말에 이내 수긍도 간다. 요리사에게 반드시 필살기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어쩌면 우리가 늘 과도한 경쟁 구도에 몰입해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발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던가. 거기에 자기 요리에 대한 열정, 요리에 임하는 정직한 자세만 갖춘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요리사의 자격은 이미 충분한 것을. 그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인연이 된 우연
Q. 중국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부모님이 중국 요리를 하셨었어요. 그 영향이었는지 대학에 다니다 말고 나와 부모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중국요리를 정말 배우려는 생각이라면 제대로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고민 끝에 부모님 가게를 나왔고, 지인이 추천해주신 감사한 기회로 신라호텔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지금이야 조리학과를 졸업해 체계적으로 호텔 조리부에 입성하는 일이 자리를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그의 경우와 같이 주변의 추천을 통해 시작하는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Q. 호텔이라면 왠지 일반 중식당보다 일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느 곳이나 힘듦은 있다고 생각해요. 호텔 중식당에서의 경험은 체계적인 조리 시스템과 품격 있는 응대 등을 배울 있는 기회였어요. 다만,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직접적인 요리 기술을 배우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곳에선 1년 정도 근무를 하고 나왔고, 이후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일반 업장에 들어가 일을 했어요.


Q. 그래도 남들은 다 가고 싶어 하는 곳인데, 포기할 때 아쉽지 않았어요?
그때 저는 기술적으로 빠르게 성장 하고 싶다는 목표가 컸어요. 그래서 그 길을 찾기 위해 선택한 것이니 아쉬움도 제 몫이었다고 생각해요. 주변엔 10대의 나이에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성인이 되어 시작한 경우는 오히려 드물었기 때문에 20대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중식 업계에 발을 들인 저로선 아무래도 성장에 대한 의욕이 컸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는 서울 명동의 전통 중식당 ‘동보성’에서 3년, 다시 서울 강남의 ‘만리장성’으로 옮겨 보낸 5년여의 세월 동안 완성형의 중국 요리 기술을 터득했다. 이후 주방 인테리어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3년째 남다른 애정으로 이끄는 곳이 ‘그랜드마오’다. 이곳은 북경오리요리를 중심으로 황비홍닭고기, 동파육, 전가복 등 오래도록 사랑받는 정통 중국 요리와 약간의 변주가 더해진 퓨전 요리를 골고루 선보이고 있다.


기본과 창작
Q. 물론 시작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해도, 계속 일을 해나가려면 그것만으론 부족하잖아요.
맞아요. 계속 할 수 있는 원천이 있어야 해요. 저에겐 그것이 바로 ‘창작의 재미’였어요. 어릴 때부터 자주 보고 먹던 음식이라서 처음에 자연스레 정을 붙여 배우게 된 건 맞지만, 배워서 익히는 그 단계를 뛰어넘으려면 ‘창작’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하나의 예술 행위와도 같은 것이 요리예요. 특히 중국 요리는 한식이나 일식, 양식과는 달리 재료의 한계도 없고 조리 스타일도 다양해서 창작의 범위가 무궁무진하죠. 그렇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재료를 고민하고, 이것저것 조합해보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다시 시도해보는 가지각색의 과정들이 저는 무척 흥미로웠어요. 지금도 재밌고요. 하하.


Q.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본인만의 요리 원칙도 그런 맥락인가요?
네. 본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즐기면서 한다는 건 가치관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니까요. 게다가 창작을 통해 느끼는 재미이니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성장 아닙니까? (웃음) 그리고 한 가지 원칙을 더한다면, ‘기본에 충실하자’는 거예요. 창작하던 개발을 하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선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올 수 없어요. 가장 당연한 것부터 착실히 하는 게 중요해요. 후배들에게도 손님에게 나가는 요리에 관한 한 엄격한 편입니다. “네가 손님에게 내어주는 요리가 아니라, 스스로 돈 내고 사 먹는 요리로 생각하라”고 강조하죠.


왕의경 셰프는 자신의 요리 창작 활동에 많은 영감을 주는 것으로 대회 출전의 경험을 꼽는다. 외국 중식 셰프들과 만남을 통해 견문과 감각을 크게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요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국제대회에만 약 26회 출전했다는 그는 지난 2016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중국팽임세계대전(세계중식올림픽)에도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 바 있다.


한국 중찬문화의 내일을 위해
그가 이처럼 꾸준히 국제요리대회 등의 교류 경험을 쌓는 데에는 셰프 개인으로서의 성장의 의미 말고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한국 중화요리(중찬)의 발전을 염원하는 구성원으로서의 노력인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뜻이 한데 모여 출발한 단체가 ‘(사)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KCCEA)’다.  

Q. 관계자로서 (사)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 소개 좀 해주세요.
(사)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KCCEA)의 시작은 사실 ‘후배양성’에 의미를 둔 선배들의 작은 사모임이었어요. 역대 회장단을 거쳐 현재 구광신 회장(파크루안 총괄 셰프)님 이하 많은 협회원이 모여 활동 중인데, 궁극적으로 한국 중화요리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나아가서는 해외에 그 위상을 알려 한국의 음식문화 산업이나 관광산업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어요.


Q. 그럼 협회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
우선 기본적으로 월례 정기모임과 시연회, 요리 대회와 재능 기부 활동 등을 통해서 회원 간의 단합과 말씀드린 대로 후배들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어요. 이게 곧 한국 중화요리의 인식을 확산시키는 첫걸음이기도 해요. 사실 중식 업계는 한국인 종사자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화교들 중심으로 성장해 온 분야라 내부적으로 화합이 어려웠거든요.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 중화요리를 제대로 알리는 힘도 부족했죠. 이런 점들을 아직은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있고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근무 환경을 만들고, 셰프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규나 제도 마련 등을 위해 더욱 노력해서 내부적인 화합과 후배양성을 이끌어 가야 한국 중화요리의 내일도 있다고 생각해요. 변화의 시작 단계니 충분히 희망적이에요. 

또한, 협회에선 해외에 한국 중화요리를 알리기 위한 홍보와 음식문화 교류 활동을 여러모로 해나가고 있어요. 그 성과 중 하나는 2020년 개최되는 세계중식올림픽의 한국 유치가 확정적인 방향으로 가닥 잡혀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원래 2016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중식올림픽에서 기정사실화된 사안인데, 국제대회의 특성상 이후 외교적 차원의 문제들이 맞물리면서 결정이 지연되다가 최근 유치 확정을 받았어요. 준비 기간이 다소 짧은 상황이 고민이긴 하지만 최대한 완벽히 준비해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왕의경 셰프는 현재 본 협회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는 소속 봉사모임(엔젤쿡)의 단장을 맡아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 어린이집이나 고아원, 양로원 등을 찾아 월 1회의 정기적인 중화요리 봉사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지자체기관과의 협약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다는 것, 이로써 중화요리의 참맛까지 자연스레 알릴 수 있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했다.


Q. 아무래도 그만큼 책임감도 더 커졌을 텐데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요?
예전에 잠깐 일에 타성을 느꼈을 때 근무하던 곳에서 나와 제 개인 사업을 해본 적이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배운 것과 같은 정통 중화요리 전문점이 아니라, 배달 중심의 가게를 했었는데 배달 중심의 가게는 속도가 무척 중요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음식에 신경 쓸 여유가 많이 없더라고요. 결국,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1년 만에 접었어요. 그런데 그 경험 덕에 경영자가 겪는 고충과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이 일을 하면서 항상 ‘함께 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협회가 지향하는 목표도 그것이고, 그러려면 더 큰 책임 의식을 가지고 해야 하죠.


그리고 개인적으론 사람들이 요리를 통해 제 이름 석 자를 떠올렸을 때 ‘좋은 셰프’라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단 네 글자 안에 갖춰져야 할 요건이 참 많은 목표이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언젠가 다시 제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도 있지만, 아직은 ‘좋은 셰프’로서 갈고 닦아야 할 숙제가 더 많은 것 같네요. (웃음)”


profile.
왕의경 셰프는 북경칭화대 외식경영학을 이수하고 현재 (사)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 이사, 세계중찬명인협회 이사, (사)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 소속 봉사동아리 ‘엔젤쿡’ 단장 등을 맡고 있으며, 세계중식쟁탈전대회 금상, 세계중식올림픽(2016년 네덜란드 대회) 금상, 아시아명장요리대회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Cook&Chef 오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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