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계 "대출 고통, 소득공제 절실"... 농식품부 "이번엔 건의 발굴 부족"
[Cook&Chef = 이경엽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국민 체감형 규제 합리화’ 54개 과제는 농촌 공간, 식품산업, 펫푸드, 에너지 전환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른다. 현장 간담회와 국민신문고, 국정감사 지적사항 등을 종합해 속도감 있게 규제를 정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체 54개 과제를 항목별로 분석한 결과, 식품 소비의 최전선이자 ‘K-푸드 생태계’의 마지막 단계인 외식업·식품접객업 분야는 단 한 건도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규제 개선은 사실상 농업·가공·수출 중심으로만 구성돼 ‘조리·서비스·식문화’ 영역은 다시 한 번 정책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54개 과제 중 ‘외식업 규제완화’는 0건
이번 규제 완화는 △에너지전환과 균형발전 △국가전략산업으로서 농업 △국가 책임 농정 전환 △사람·동물 복지 △민생 규제 합리화 등 5개 분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농지, 재생에너지, 검역, 스마트농업, 펫푸드 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농형 태양광 농지 사용기간 연장(8→23년)', '농지 내 화장실·주차장 설치 허용', '스마트농업 우수기업 제도화', '동물용 의약품 사전검토제 도입', '펫푸드별 분류체계 신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농업인이나 지역 농촌, 식품 제조 및 푸드테크 업체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조치다.
반면, 셰프·외식업 종사자·소상공인이 현장에서 겪는 인허가 부담, 위생·소방 규제 중복, 복잡한 영업 구조, 인력난·금융 접근성 문제 등은 이번 개편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정부가 ‘국민 체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에도 정작 국민 식생활의 실제 접점인 '주방'과 '식탁'은 빠져 있는 셈이다.
푸드테크·식품클러스터도 결국 ‘제조업’ 중심
일각에서는 ‘푸드테크 규제합리화 신청제’나 ‘국가식품클러스터 내 식품소분업 허용’ 등을 식품 분야 규제완화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두 제도 모두 식당·레스토랑과는 무관한 제조·재포장 업종 중심 정책이다.
'푸드테크 규제합리화 신청제'는 대체육이나 3D 푸드 프린팅 같은 신산업 기업을 위한 규제 창구 일원화 조치이며, '식품소분업의 식품클러스터 입주 허용'은 공장 중심 산업단지에 재포장·유통업체의 입주를 허용하는 조치로, 일반 외식업자와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즉, 정부가 강조하는 ‘식품’은 여전히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산업적 관점에 치우쳐 있으며, 실제 조리와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현장 기반 외식업은 정책 테이블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외식업계 "대출·이자 고통 한계… 외식비 소득공제 시급"
그렇다면 외식 현장이 실제로 호소하는 애로사항은 무엇일까. 한국외식업중앙회(이하 중앙회)에 따르면, 현장의 요구는 농식품부가 제시한 규제 개선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 놓여 있다.
중앙회 미디어홍보국 윤준영 대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배달비 문제이며, 정부에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것도 외식비 소득공제 신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 대리는 “코로나 이후 외식업 자영업자 다수가 재기에 실패했다. 대출 원리금을 갚기 위해 장사하지만 매출이 부족해 제2금융권 대출로 돌려막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소상공인의 절반 이상이 외식업 종사자인데, 정부 지원사업에서 외식업계가 배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책이 현장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즉, 외식업계가 체감하는 규제·제도 개선의 핵심은 금융 접근성, 외식비 공제, 배달비 구조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데, 이번 규제 완화는 이 부분을 단 한 가지도 다루지 못했다.
농식품부 "외식업계 건의 발굴 부족"… 구조적 한계 드러내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외식업계의 건의가 충분히 접수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박순홍 사무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특정한 이유 때문에 외식업 규제완화가 빠진 것은 아니다”라며 “현장 건의와 국민 개혁 시스템을 통해 접수된 사안을 중심으로 과제를 선정했다. 이번에는 외식업·음식점 분야에서 건의된 내용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외식업계 규제 개선 요구가 부처 시스템에 포착되지 않아 과제 선정에서 제외됐다는 의미다. 이는 정부의 규제개선 체계 자체가 외식업 현장의 고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K-푸드 시대, '주방'은 언제까지 정책의 변방인가
정부는 최근 ‘K-푸드 플러스’ 전략을 통해 냉동김밥·라면·간편식 등 가공식품 수출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 실적과는 별개로, 국내 식문화의 완성은 결국 조리·서비스·외식업 현장에서 이뤄진다.
셰프의 창의성, 식당의 품질, 소비자의 경험이 축적돼야만 ‘K-푸드 브랜드’의 지속성이 확보된다는 점에서, 외식업을 정책의 사각지대로 두는 구조는 장기적으로도 위험하다.
‘국민 체감형 규제 합리화’라는 제목과 달리, 이번 규제 패키지는 외식업계가 체감할 만한 내용이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체감형 규제 개선’을 원한다면, 이제는 농지와 공장을 넘어 주방과 식탁, 즉 국민의 일상으로 정책 시선을 옮겨야 한다. 수십만 외식업 종사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한 채 ‘K-푸드’를 말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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