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Column / 최인 셰프의 스시(すし)이야기> 나마나레의 발생 & 하야즈시(早ずし)의 탄생

- 식초를 사용한 처음부터 산미가 있는 것을 ‘하야즈시’라고 칭함
- 18세기 중엽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하야즈시는 대표적인 스시로 인정
최인 칼럼니스트 | chi33jj@naver.com | 입력 2021-10-12 1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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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Chef 최인 칼럼니스트] 혼나레는 완전히 숙성시킨 밥을 긁어내고 생선을 먹는 것에 비해 나마나레는 발효를 초기단계에 그치게 하여 밥도 함께 먹는다. 스시가 밥요리의 일종이 된 것은 이 무렵부터이다. 이것은 스시의 역사중 획기적인 일이다. 혼나레는 완전히 밥이 숙성되어 페이스트 상태가 되기 때문에 밥은 먹기가 어려웠겠지만 장기보존은 가능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나마나레는 보존성이 약하므로 먹을 수 있는 기한은 짧아져버렸다. 따라서 스시는 이미 장기보존의 목적을 상실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스시 역사에 특기해야 할 사항이라 할 수 있다.

하야즈시(早ずし)의 탄생
발효기간의 단축으로 조제시간은 비약적으로 단축시킨 나마나레이지만 다음 과제는 더욱 그 기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 곧 시큼해지는 경험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요리 이야기’ 1643년에는 밥을 넣은 은어를 꾸러미에 싸서 불에 쬐어서 스시(이찌야즈시 一夜ずし)를 만드는 법이 쓰여 있다. 물론 이렇게 해서 하루 밤사이에 스시가 만들어질 턱이 없어서 그후에 이 방법이 보급된 적은 없다.

‘요리 이야기’에 실린 이찌야스시는 소금기가 없는 은어를 사용할 것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소금기가 적으면 빨리 발효한다는 경험에 의한 것일 것이다. 일단 이치에는 맞지만 간이 안되면 생선이 부패하기 쉽다. 그래서 발효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에도시대 초기에 누룩을 섞는 방법을 썼다. 이 방법은 지금도 도후쿠와 호쿠리쿠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효초밥의 기법으로 홋카이도 아오요기의 이이즈시, 아키타의 도루묵스시, 야마가타의 가유즈시, 도야마, 이시카와의 순무스시, 후쿠이의 청어스시 등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으로 누룩의 작용으로 발효가 촉진된다. 다만 누룩을 사용한 스시가 그 이전에는 없었다고 단언 할 수는 없다.

다른 지방에서는 사께를 섞는 방법도 있었다. 술을 오래두면 식초가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식초를 섞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태여 발효가 진행되어 시큼해지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지금의 식초 사용법과 약간 차이가 있지만 만든 즉시 스시가 신맛을 풍겼다. 장기보존식품으로서의 의미는 완전히 없어져 그때까지의 개념과 전혀 다른 스시의 탄생이었다. 일부에는 발효촉진제를 사용한 개량형 나마나레를 ‘하야즈시’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번적으로는 식초를 사용한 처음부터 산미가 있는 것을 ‘하야즈시’라고 칭한다.

 

그런데 항간에는 마쓰모또 젠스케 라는 에도의 의사가 밥에 식초를 섞는 방법을 창안했다는 설이 있다. 출전은 에도막부 말기로부터 메이지 시대에 성립되었다는 수필 ‘난바강’으로 이책에 의하면 그 발명은 1673 – 1682년 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쓰모토 젠스케와 하야즈시의 관계를 나타낸 문건은 그것하나 밖에 없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식초의 사용은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도저히 한사람의 발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야즈시의 등장과 발효스시의 쇄락, ‘요리 이야기’에는 스시의 제법이 두 경로로 소개되어 있으며 신기하게도 그것은 같은 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스시의 두가지 형태를 기록하고 있다. 그 하나는 머리와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생선의 배를 가르고 뼈를 제거한 다음 배속에 밥을 채워 넣은 것으로 ‘스가타스시’로 불리워지는 스시로 고등어등 중소형 생선은 이 방법을 사용했다. 또 다른 하나는 토막낸 생선살이나 포를 뜬 생선살을 절인 것으로 연어등 큰 생선으로 스시를 만들때에 알맞은 방법이다.


이것들은 통 따위의 용기에 밥과 생선을 여러층으로 쌓아 넣는 방법과 밥과 생선을 섞어서 용기에 담아 숙성시키는 방법의 두가지가 있다. 이 두가지의 형태는 일본에 스시가 전래할 때부터 분화해 있었다고 여겨지며 일본의 스시는 스가타쓰케와 기리미쓰케의 두종류로 나누어져 발달해왔다. 그런데 식초를 사용한 하야즈시의 등장으로 약 100년이 지나자 스시의 형태는 변화했다. 그후 한 세기 동안 스시의 종류가 발효스시로부터 하야즈시로 바뀌는 기간이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하야즈시는 대표적인 스시로 인정 받게되었다. 이후 조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식초와 밥과 생선만 있으면 스시를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스시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소재 면에서도 이를테면 밥대신 비지나 고구마를 이용하는 등 유니크한 응용이 행해졌다. 이러한 시도가 서민들의 자유로운 발상의 결실이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의 스시와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갖추어졌다.

이와같이 하야즈시의 등장과 더불어 그때까지의 스시의 왕도라고 할 수 있었던 발효스시는 오오미의 후나즈시(붕어초밥)나 테와의 하타하타즈시(도루묵초밥)와 같이 이미 지역 특산물로 명성를 얻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점차 과거의 유물이 되었으며 벽지의 가정요리로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야즈시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영주들이 막부쇼군 진상품중에 나레즈시인 아유스시(은어초밥), 후나즈시(붕어초밥),다이즈시(도미초밥)등이 포함 되었다는 것은 일본인이 스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후 등장한 새로운 권력층에게 다시 진상하기도 했지만 역시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바로 권력계층으로부터 경원 당했기 때문이다. 진상초밥의 대부분은 지난날의 명성과는 달리 막부 붕괴를 계기로 소멸되어 버렸다. 하야스시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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