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Column / 최인 셰프의 스시(すし)이야기> 고대 일본의 스시

- 스시는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술이나 향신료등의 첨가물이 늘어남
- 발효스시를 현대의 많은 사람이 나레즈시 라고 함
최인 칼럼니스트 | chi33jj@naver.com | 입력 2021-10-05 18: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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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Chef 최인 칼럼니스트] 헤이안 시대의 법령시행세칙인 “엔기식‘ 927년 에 의하면 서일본 각지의 다양한 스시가 도성에 납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스시 제법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6세기 중엽의 중국에서 간행된 ’제민요술‘ 제법기사가 참고가 될 것이다. 재료에 관해서는 ’엔기식”에 기술되어 있다.

즉 간을 한 생선과 쌀과 소금이다. 중국에서의 스시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쌀과 생선만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시는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술이나 향신료등의 첨가물이 늘어났다. 즉 ‘엔기식’이 전하는 스시의 재료는 매우 오래된 옛 스시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모양이나 먹는 법에 관해서는 헤이안시대의 설화집 ‘곤쟈쿠모노가다리’ 10세기초 등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를테면 스시를 팔던 여성이 상품인 스시위에 구토를 했는데도 그것을 긁어서 떼어내고 장사를 계속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스시는 토사물과 비슷한 것으로 덮혀 있었다는 사실과 적잖이 신냄새를 풍겼을 것으로 여겨지며, 제법 오랜기간 발효시켰던 것으로 생각된다. 생선이 표면를 걸죽하게 발효한 쌀밥이 덮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밥부분을 손님에게 제공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기록에는 스시를 부식으로 밥과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게다가 에도시대 704년의 사본이지만 헤이안 시대 말엽에 쓰여졌다는 ‘유집참요초, 도쿄굴집박물관 소장’의 은어스시의 그림에도 밥알이 그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도 스시의 밥부분은 먹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발효스시를 현대의 많은 사람이 나레즈시 라고 한다. 나레라함은 발효, 숙성으로 밥부분을 먹지 않는 형태를 혼나레라고도 한다. 게다가 스시의 원형이 동남아시아의 어육보전법에서 유해한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지만 그 시대에 스시가 단순한 어육보존의 수단이라는 소주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만을 할 수 없다.  

분명히 스시라는 식품의 조리기술은 어육의 부패를 억제하고 장기보존이 유용하지만 ‘엔기식’에 의하면 불과 하루 이틀 거리인 가와치, 이가, 요시노 등의 여러곳으로부터는 스시가 도성에 공납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염장한 생선으로 충분했을 것이며, 실제로 스시의 재료로서의 염장한 생선이 가와치, 오오미 등에서 들어왔다.

스시와 염장품을 비교할 경우 신맛과 짠맛이 섞인 스시보다는 짠맛만 있는 염장품 쪽이 소재서 제맛을 감소시키는 정도가 적고, 어육 보존수단으로서 뛰어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굳이 스시를 바치게하고 일부러 염장한 생선을 도성에서 스시에 사용했다는 것은 스시가 단순한 저장식품이 아니라 염장한 생선과는 다른 맛, 즉 쌀과 생선의 발효에 의해서 나오는 신맛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요리로서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자미 식해와 멸치젓갈을 비료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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