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ese Chef Story / 진생용 셰프 : 진가(陳家), 진가(眞價)를 발휘하다

오미경 | omkvictory@naver.com | 입력 2018-05-05 22: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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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숲길 중 이른바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가로 공원. 이곳을 따라 홍대에서 연남동 골목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깔끔하게 개조된 흰색 단독 건물 2층에 자리한 중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고수의 향기란 이런 걸까. 연남동 중심가의 여느 명소들처럼 귀를 간지럽히는 음악이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장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수수한 멋이 왠지 발길을 잡아끈다. 그곳에 묵묵히 요리로만 자신을 말해 온 진생용 셰프가 있다.

writer _오미경 기자 / photo _조용수 기자


Chinese Chef Story

 
진가(陳家), 진가(眞價)를 발휘하다 

                              중식 사대천왕 진생용 셰프
누군가는 그를 두고 ‘대가’, ‘고수’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사부’라 부르기도 한다. 말만 다를 뿐 모두 셰프로서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호칭들이다. 특급호텔에서 34년간이나 중식을 연구 및 경험하며 탄탄한 기본을 바탕으로 정통 고급요리를 특화해 온 그에게 사실 이러한 호칭은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진생용 셰프는 이 모든 표현에 손사래를 치며 오히려 자신을 낮추려 했다. 그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고, 지금도 주어진 자리에서 몫을 다하는 선배들의 동생, 후배들의 형일 뿐이라는 게 그의 자기소개 전부였다. 처음엔 지나치게 어깨에 힘을 뺀 게 아닌가도 싶었지만, 담백함 그 자체가 진생용 셰프라는 걸 이야기를 나누며 알 수 있었다.


Q. 중식 셰프들을 보면 일찌감치 일을 시작한 경우가 많던데, 본인은 좀 다른 것 같아요.
A. 네, 저는 스무 살이 넘어서 이 일을 시작했으니까 비교적 늦은 경우예요. 저의 고향이 강원도 영월인데 어릴 적에 아버지가 그곳에서 중국집을 크게 하셨어요. 동시에 우리 집이 화교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이기도 했고요. 쉽게 말해 집이 좀 사는(?) 편이었던 거죠. 그런데 갈수록 시골의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식 교육에 뜻이 있으셨던 아버지의 결정으로 서울로 오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이곳에서도 작게나마 식당을 하셨고, 저는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었어요. 비교하려는 건 아니지만 많은 중식 셰프들이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10대 때부터 일을 시작한 경우를 생각하면, 저는 공부를 꽤 오래 한 편이에요.


Q. 그럼 스무 살이 넘어서 어떻게 진로를 바꾸게 된 거예요?
A. 원래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었어요. 원광대학교 한의학과에 합격했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온 이후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형편이 많이 안 좋아져서 당시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결국, 진학을 포기하고 1년만 돈을 벌어서 내 힘으로 대학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중식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우연이 인연이 되듯 그렇게 발을 디딘 일이 천직이 되었네요. (웃음)

시작은 반 박자 늦었지만, 진생용 셰프는 서서히 요리에 대한 남다른 자질을 발견해 나갔다. 처음 명동의 ‘야래향(夜來香)’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해 남산에 있는 유명한 ‘아서원’ 근처의 또 다른 큰 가게 ‘국빈(國賓)’이라는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그는 그곳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빨리 일을 배웠고 점점 재미도 붙였다. 그리고 1982년 그의 인생에 큰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플라자호텔(現 ‘더 플라자)에 들어가면서 호텔 중식 요리를 접하게 된 것이다. 요리사로서 정석 코스를 밟는다는 건 많은 이들의 꿈이지만, 당시엔 공개적인 호텔 입사 루트가 거의 없어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더욱 소중한 기회였다. 진 셰프는 이후 조선호텔, 수원 호텔캐슬 레스토랑 등을 거쳐 34년간 호텔에 몸담으며 중식 요리 인생에 꽃을 피운다.


Q. 호텔에서 보낸 시간이 셰프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성장을 하게 했어요?
A. 일단 기본적으로 중요한 위생 등의 조리 관념과 함께 요리 실력을 키울 수 있었죠. 그리고 조리에 대한 제 철학을 세운 것이 무엇보다 큰 일하면서 찾은 저만의 생존비법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인데, 저는 셰프는 센스가 있어야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배울 것을 요령 있게 취할 수 있고, 최선의 노력이 뒤따라야 실질적인 성장이 더해진다고 생각해요. 플라자호텔에서 있을 때, 제가 스물네 살 때부터 원가관리 일을 했어요. 그렇게 어린 요리사에게 맡기기 쉽지 않은 일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친구라 뭐든 타성에 젖지 않고 의욕적으로 일을 하고, 또 시킨 일을 잘 해낸 게 맞물렸던 것 같아요. 센스와 노력이 제가 기회를 자꾸 만들어 준거죠.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그걸 강조해요. 그리고 호텔의 체계적인 조리·연회 시스템을 경험하면서 총괄자로서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평생을 건 직업으로 삼을 만큼 크게 다가온 중식의 매력이 뭐죠?
A. 제가 느낀 중식의 매력을 한마디로 말하면 ‘진인사대천명(眞人事大天命)’이랄까요? 어느 조리 분야든 쉬운 분야는 없겠지만, 중식은 그 가운데서도 제대로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정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분야예요. 많은 셰프들이 꼽는 것처럼 재료나 조리 스타일이 워낙 방대하거든요. 그런데 노력 여하에 따라 손님의 반응도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요리기 때문에 힘든 만큼 보람도 커요. 그래서 저는 중식 요리를 해 오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면 된다.’라는 진리를 깨달았어요. 이보다 값진 매력과 깨달음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Q. ‘진가(陳家)’는 이 모든 경험과 생각의 집약체로 볼 수 있겠어요.
A. 맞아요. 그간 호텔에서 일하며 깨닫고 익힌 것들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었어요. 요리의 경우, 저는 중식하면 떠오르는 ‘기름지다’, ‘짜다’, ‘지저분하다’는 선입견을 없애고 많이 먹더라도 담백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진가(陳家)’에서 그런 요리를 내놓으려 했어요. 또한, 예전부터 전통 요리법에 고급재료를 가미해 선대 요리사들의 지혜가 담긴, 그러면서도 좀 더 깊이 있는 저만의 요리를 연구했는데 그 흔적이 묻은 메뉴가 많아요. 고급호텔 요리를 보급형 요리로 만들어 알리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음식에 신뢰를 더하기 위해 주방의 구조도 오픈 형태로 만들었어요. 운영이나 조직 관리 측면에서도 일방적인 전달보단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진가’에 맞는 체계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2015년 진생용 셰프는 일반 식사 중심 중식당이 아닌, 주점형 중식레스토랑 형태를 표방하여 ‘진가(陳家)’의 문을 열었다. 현재 경희대학교 조리학과를 졸업한 그의 둘째 아들도 함께하며 수련을 해나가고 있다. ‘진생용 표’ 요리 스타일로 구성된 여러 메뉴 중 ‘장폭팔보채’는 중식 요리의 된장과도 같은 발효 소스 춘장을 활용해 영양과 풍미를 모두 잡은 요리로 평가받고 있다. 가지와 새우의 색다른 조합에 화려한 두반장 옷을 입힌 ‘두반가지새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메뉴들은 특히 화제 속에 방영된 SBS 프로그램 ‘중화대반점’에서 진생용 셰프가 중식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출연할 당시 선보인 요리로 큰 관심을 모았다.

 

 

 

 

 

Q. 셰프들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서 중식의 인기나 위상이 많이 올라간 것 같아요.
A. 동감해요.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종편 등이 생겨나고, 콘텐츠 측면에서 언론에 셰프들의 노력이 노출될 기회가 많아지면서 업계 분위기가 다시 상승한 것 같아요. 식문화도 트렌드가 있는데, 때론 사회적 이슈나 환경적인 이유 등에 따라서 그 흐름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궁극적으론 외부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고, 중식 업계 스스로 국민 입맛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기존의 것을 반복하기보단 새로운 요리 연구와 개발이 필요하고, 셰프들도 자신만의 주특기가 있어야 독자 생존이 가능할 거예요. 혹자는 젊은 셰프들에게 끈기와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말들도 하지만, 그것은 선배들도 계속 이끌어줘야 하는 부분 아닐까요? 대신 그들에겐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감각이 있기 때문에 그걸 잘 살리면 좋은 분위기는 얼마든지 계속될 것이라고 봐요.


진생용 셰프의 꿈도 아직 이어지고 있다. ‘진가(陳家)’를 통해 또 한 번의 요리 인생 변곡점을 걷고 있는 그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진가(陳家)’를 잘 이끌어가는 동시에 식사 중심 형태의 다른 가게도 하나 더 구상해 볼 계획이다. 단, 규모는 크지 않았으면 한단다. 몸집이 커지면 요리에 정성을 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돈보다는 명예가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나아가 기회를 만들어 더 많은 자리를 통해 후배들을 만나며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것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부끄럼 없는 가르침을 줄 수 있을지 스스로를 계속 돌아봐야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깨끗한 조리복 위에 새겨진 ‘진생용’ 이름 세 글자가 마지막까지 반짝이기를 더욱 바라게 됐다.

[Cook&Chef 오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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