冷麵을 한글로 해석하면 '차가운 국수'다. 이 차가운 국수를 한문(漢文)으로 기록하면 冷麵이다. 메밀면을 차가운 육수에 말아 먹는 冷麵과 역시 메밀로 면발을 뽑은 국수를 차가운 육수에 말아 먹는 막국수가 뭐가 다를까?
냉면(冷麵)이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紫漿冷麪(자장냉면)자주빛 육수에 냉면을 말아 먹고'라는 '장유(張維 1587~1638)의 [계곡집(谿谷集)]에 나오는 시(詩)이다. 그가 생전에 평양에 다녀 왔는지는 몰라도 주로 중앙관직에 있었고, 외직은 나주목사를 지다.
그런데 같은 시기 조경(趙絅1586~1669)의 [용주선생유고(龍洲先生遺稿)]에도 냉면(冷麪)이 나온다. 중국 사신을 대접하는 영빈사로 온 스님에 대해 쓴 시(詩)인데, "蘭奢之中動文采(난사지중동문채)스님다운 풍채에 문채가 나타나네, 冷淘湯餠又善謔(냉도탕병우선학)냉면이나 떡국들며 우스개도 잘하니"라고 나온다.
한 사람이 스스로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왔으므로 상이 어디에 쓰려고 샀느냐고 묻자 냉면에 넣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상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냉면을 나누어 줄 때 돼지고기를 산자 만을 재쳐 두고 주지 않으며 이르기를 "그는 따로 먹을 물건이 있을 것이다."하셨다. 이 일은 측근 시신(侍臣)이 자못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냉면에는 돼기고기가 들어 갔음을 알게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다산(茶山) 정약용(鄭若鏞1762~1836)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서 "拉條冷麪菘菹碧(납조냉면숭저벽)무김치 냉면에다 배추무침 곁들였다네"라고 냉면의 고명은 물론 냉면과 배추무침을 곁들였다는 당시의 냉면이 그려질 정도로 잘 묘사하여 시(詩)로 읊었다. 그뿐만 아니라 "湯餠錯冷淘(탕병착냉도)떡국도 먹고 냉면도 먹으면서"라며 당시 떡국과 냉면을 겨울에 먹었음을 알게해 주는 시(詩)를 남겼다.
조선말기에는 비교적 냉면(冷麵)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나오는데, 당시 중인(中人)출신인 공인(貢人) 지규식(池圭植)이 1891년 1월1일부터 1911년 6월29일까지 20년 7개월에 걸쳐 쓴 일기인 [하재일기(荷齋日記)]를 보면 '종로에 내려와서 민상순에게서 돈 5냥을 가지고 와 2냥을 주고 천유와 함께 냉면을 사먹었다'거나 '2냥5전을 주고 참외를 사다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선물했는데, 냉면 한 그릇을 또 내와 배불리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라고 나온다.
[하제일기]에는 그외에도 지규식이 수차에 걸쳐 냉면을 먹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는 냉면 메니아였던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15년 미국 시카고에서 냉면을 드셨다고 1925년 연설문에 나온다.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민속전통]이라는 책에 조선의 냉면중에 북평양냉면과 남진주냉면'이 제일이라는 내용을 보고 필자는 1999년 사라진 진주냉면을 재현해 냈다. 필자는 전국을 다니며 냉면을 맛을 보며 자료 수집을 한지가 벌써 50여년이 넘었다.
이제 시작이다. 닥게리는 2021년 코로나19로 침체된 대한민국의 기를 살리고, 닥살냉면으로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리게 하고 싶다. 닥게리는 가맹점 모집을 하지 않겠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고깃집이나 여타 식당에 닥살냉면을 공급해 메뉴마케팅으로 승부를 내 그들과 함께 희망을 함께 찾고자 한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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