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Story / 필감산 셰프 (그랜드 힐튼 서울 중식당 ‘여향’) : “요리에 마음을 담다”

오미경 기자 | omkvictory@naver.com | 입력 2018-05-15 06:24:44
  • 글자크기
  • -
  • +
  • 인쇄

첫 대면에 필감산 셰프는 확실히 슈트보다 조리복이 잘 어울리는 조리사였다. 정확히 말하면 조리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어느덧 40년이 훌쩍 넘도록 몸에 새겨온 복장이지만, 옷매무새 하나도 연신 조심스러운 손길로 가다듬는 그의 모습에선 왠지 모를 애틋함도 묻어났다. 요리란 대체 그에게 어떤 의미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느낌을 갖게 하는 걸까? 그 마음을 알기 위해 필감산 셰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writer_오미경 기자 / photo_조용수 기자  

Chef Story 

 
“요리에 마음을 담다”
그랜드 힐튼 서울 중식당 ‘여향’ 필감산 셰프


“정성을 다해 고민하고 요리를 만든 나의 진심이 손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때 비로소 이 일의 참맛을 알았다”고 말하는 필감산 셰프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요리 명인이다. SBS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중국요리의 新 ‘4대 문파’ 달인으로도 소개되며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그는 뜨거운 불 앞에서 종일 음식과 씨름하는 일이 힘들 법도 하지만, “음식이 정말 맛있다”는 손님들의 말 한마디에 힘입어 40년 넘게 이 길을 달려왔다고 고백한다. 그 말이 담고 있는 무게를 알기까지는 우연을 운명으로 만든 시간이 있었다.


진정한 요리를 알기까지


“중국 요릿집을 하셨던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일이었어요. 저희 형제가 2남 3녀인데 막냇동생만 빼고는 모두 그랬죠. 그땐 중국요리의 매력이 뭔지도 모르고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손수 끼니를 챙겨 먹을 요량으로 조금씩 기술을 배웠던 거예요. 그런데 15살에 수타면을 처음 뽑았을 정도로 제가 조금 소질이 있었나 봐요. 부모님께서 기왕 배우려면 제대로 해보라고 권유하셔서 규모가 있는 가게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단지 생업전선에서 접한 간단한 음식 수준이 아니라 진짜 중국요리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호텔에 입사하면서부터는 중국요리의 무한한 매력에 본격적으로 호기심을 갖게 됐어요.”


필감산 셰프는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문을 연 1983년부터 오픈 멤버로 일을 했다. 당시 호텔엔 대만 등 외국에서 온 정통 중국요리 셰프들이 있었는데 그의 솜씨를 눈여겨 본 스승들이 많은 가르침을 준 덕분에 그는 빠르게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기회가 있을 때면 평소 스승님들께 배웠던 기술에 이런저런 저의 아이디어를 더해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보곤 했어요.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변형하고 시도해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손님들이 다시 그 요리를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요리라는 건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하고 느꼈어요. 그걸 깨달으니 이 길이 천직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월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결정한 길이니 힘듦도 스스로 견뎌야 할 몫이라 생각했지만, 요리 하나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외국인 셰프들과의 언어 소통 문제도 겪어야 했고,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데다 어릴 적부터 일해 부지런하고 성실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그는 때론 동료들의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건 차마 누군가에게 말로 털어놓기도 힘들어 혼자 어려움을 삼킨 일도 많았다. 하다못해 일하면서 급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 버릇된 탓에 위장병을 얻는 일 정도는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배움을 통해 스스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느끼는 것만큼 그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되는 일은 없었다. 중국요리를 천직으로 삼은 자신을 채찍질하며 묵묵히 길을 걸어간 필감산 셰프는 그렇게 그의 이름 석 자를 자타가 인정하는 명인의 반열에 올리게 된다.


최고의 자질은 기본에 충실한 것
2016년 9월, 필감산 셰프는 그랜드 힐튼 서울의 중식당 ‘여향’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20년 가까이 일했던 밀레니엄 서울 힐튼을 거쳐 오크우드 호텔, 서울 강남의 동보성 등을 지나며 경력을 쌓는 동안 특히 광동 요리 명인으로 인정을 받은 그는 호텔 측의 제안에 ‘여향’의 오너셰프로서 활동을 잇게 됐다. 그로부터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은 그랜드 힐튼 서울의 대표 식(食)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비결이 뭘까?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을 위한 세세하고 정성 어린 서비스’에 집중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그릇부터 메뉴 구성, 직원 교육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수정을 했고, 고객의 요청에 최대한 탄력적인 서비스로 응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업장이 끝나는 시간의 마지막 주문도 처음 주문을 받는 것 처럼 유연하게 받는 거예요. 휘트니스 클럽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경우, 간혹 시간이 늦어져 호텔 식당을 이용하기가 힘든 경우가 다반사인데 저희는 그런 점을 탄력적으로 고려해 최대한 손님들의 편의를 봐 드리고 있어요. 또한, 오픈 시간 전에 찾아오신 고객분들도 항상 매장 내부에서 편안하게 기다리시도록 안내해드려요.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은 저희 호텔의 경우 어린이 전용 식기류를 마련해 좋은 반응도 얻었어요. 작지만 이런 세세함이 ‘여향’을 찾는 손님들에게 하나의 배려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행히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매장 수익 측면에서 뚜렷한 증가수를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매출 성장의 의미를 넘어 ‘여향’이 고객의 사랑을 받는 중식당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체감하니 참 뿌듯하더라고요. (웃음)”

 

요리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아무리 좋은 요리도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고객의 요구를 단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상의 맛을 구현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늘 불(火) 앞에 서고 있다. 고객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도 그는 ‘오너’가 아닌 ‘셰프’로서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을 향한 그의 시선에도 요리에 대한 철학은 깊이 맞닿아 있었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자신이 이 자리에 왜 왔는지를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요리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역할과 노력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되새길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먼저 음식은 가족에게 해주는 것이란 생각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냥 돈을 벌기 위한 일자리의 관점에서 요리하는 것과 내 가족에게 먹일 음식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으로 불 앞에 서는 것은 결과물이 달라요. 이건 음식을 다루는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자세이기도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하려는 사람이라면 끈기를 가지고 자신의 경력을 제대로 쌓을 수 있는 노력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기만의 요리 스타일을 완성하려면 진정한 경험을 토대로 한 단계 한 단계 얼마나 정확히 숙지해서 성장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건데, 멀리 가기보단 빨리 가는 길부터 찾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볼 때면 참 안타까워요.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노력해서 단계별로 완벽하게 성숙해지면 기회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인데, 당장 이익에만 반응하기 급급해서 결국 스스로 자기 성장을 한계 짓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주방장을 위한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필감산 셰프는 강조한다.


“이를테면, 닭 한 마리를 쓰더라도 셰프가 뼈를 발골하는 과정부터 직접 해보면서 진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요리의 수준이 달라지는데, 요즘은 이미 분리된 재료를 많이 쓰니까 이런 것은 알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자격증이나 수상 경력이 수십 개면 뭐합니까? 정작 재료에서부터 진짜 자기 것을 만들지 못한다면 주방장이라고 할 수가 없죠.”
기본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최고의 자질인 셈.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자신에게도 여전히 이를 투영시키며 필드에서 요리를 개발하고 있으니 그는 어쩔 수 없는 열혈 셰프다.

마음을 담는 셰프
주방을 지키는 일 외엔 별다른 취미 활동도 갖지 않는다는 필감산 셰프지만, 예외적으로 그가 마음을 쏟는 일 한 가지는 중국요리를 좀 더 알리기 위한 활동이다. 그는 현재 (사)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 고문, 한성화교협회 이사, 한국화교조리사협회 회장 등을 맡아 다양한 각도에서 중국요리의 위상을 높일 힘을 모으고 있다.


특히 그는 대학의 조리 교육 과정에서 중식 분야의 교육이 다소 부진하다는 점에 근거해 산·학 협력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조리 전공 학생들의 중식 분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업계 인재 육성 문제의 해결하기 위한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중식의 매력을 눈앞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장 실습의 기회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협회 차원에서의 논의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지길 그는 기대했다. 그리고 남은 목표라며 밝힌 두 가지는 다시 자신에게로 향했다.


“목표중의 하나는 음식으로 마음을 나누는 봉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나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음식으로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값지게 느껴지는지 몰라요. 이건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를 내려놓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협회를 통해서가 아니라도 정말로 필요로 하는 곳에 그 재능을 나누고 싶어요. 또 한 가지는 떠나는 날까지 내 위치에서 스스로 성숙한 요리사로 남게 만들고 싶어요.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겸손하고 깨끗하게 이름 석 자 남기기. 그쯤이면 만족할 것 같아요. (웃음)”


이야기를 마치고 그가 내어준 요리를 맛볼 기회를 얻었다. 꾸밈없는 마음을 보여준 대화로 이미 배가 부른 느낌이었지만, 그의 말을 고스란히 접시에 옮겨 담은 듯한 음식을 보자 어느새 식욕이 감돈다. 역시나 쉽게 예상하면 안 될 정도로 만족스러운 맛이다. 아마도 듬뿍 쌓인 세월의 켜만큼 묵묵히 지켜 온 요리를 향한 그의 마음이 담겨진 보이지 않은 맛까지 느껴서 일것이다. 그 마음 그대로 오래도록 변치 않고 그의 이름 앞에 요리에 대한 정성과 맛이 새겨지길 기대해 본다.

[Cook&Chef 오미경 기자]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유니레버
  • 한주소금
  • 한호전
  • 대림대학교
  • 보브데니치아
  • 현대그린푸드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daum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